서울 누들로드
한국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 가운데 빠지지 않는 메뉴가 국수다. 국수는 원래 주식은 아니었다. 특히 북한 지방에서는 야식으로 즐겨 먹었으며, 지금 우리가 먹는 국수 종류 가운데는 북한에서 시작된 음식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스산한 겨울날, 끼니로 하든 간식으로 먹든, 뜨거운 국물의 국수 한 그릇 먹으면 얼었던 몸과 마음이 스르르 녹아버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국수 맛이 거기가 거기라고? 물론 맞는 말이다. 특히 그 어떤 국수집 보다, 집에서 어머니가, 할머니께서 만들어주시는 국수가 제일 맛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국수집에 가면 객지생활 하는 청년이나 중년들이 많은가 보다.
특히 춥고 고달픈 시절에 멸치국수집에 많은 사람이 몰리는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집에서 만드는 멸치국수는, 멸치와 다시마로 국물을 우려낸 뒤에 가는 면을 삶아 차가운 물에 찰싹찰싹 씻어낸 후 소쿠리에 올려 물기를 쏙 뺀 뒤, 다시 팔팔 끓는 국물에 면을 넣고, 거기에 송송 파, 달걀, 구운 김, 가늘게 썬 당근 등 고명을 올려 먹으면 입안은 물론 뱃속까지 따뜻해지며, 뒷맛도 개운해서 좋다. 특히 국수는 김치나 단무지 등 한 가지 반찬만 있어도 간단히 먹을 수 있어서 편리하다. 그러나 국수는 조금만 먹는 게 좋다. 식욕이 동했다 해서 면을 너무 많이 넣어 삶을 경우, 국수와 국물을 다 먹고 나면 뱃속에 들어간 국수가 불면서 그야말로 배가 터질 것 같은 심한 포만감에 비명을 지르게 될 수도 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국수 맛집의 공통점은 집 국수 맛과 흡사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집에서 먹었던 것 보다 훨씬 많은 양을 준다는 점도 그렇다. 세 번 째 공통점은 싼 가격이다. 3000원이 보통이고, 비싸 봤자 3500원이면 ‘오케이’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국수집에 가서 딱 7000원만 쓰고 오라는 법은 없다. 보통 국수집에서는 국수 외에 떡볶이, 김치말이 등을 판매하고 있어서, 보통 두 사람이 1만원 정도는 쓰고 오게 된다.
명동에서도 3000원이면 한 그릇 뚝딱…명동 할머니국수
1958년에 문을 연 관록의 국수집이다. 51년 동안 명동 뒷골목에서 장사를 했으니 유명해지고 싶지 않아도 유명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명동의 증권회사 직원들이 밤새 술을 마시고 다녔던 80~90년대의 명동 할머니국수집은 새벽부터 문전성시를 이뤘던 곳이다. 맑은 멸치국수가 최고의 해장국이었기 때문이다.
밤새 미친듯이 달린 사람들이 아침 일찍 명동 할머니국수집에 찾아와 국수를 시키면, 잠시의 지체도 없이 국수 한 그릇이 테이블로 올라온다. 장사에 탄력 받은 집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스피드 시스템이다. 국수를 받은 손님이 일단 두 손으로 그릇을 잡고 뜨거운 국물을 두어 번 마시면, 온 몸이 일거에 녹아 내리는 기분과 함께 살짝 졸음이 밀려오는가 싶고, 뜨끈한 면을 후르륵후르륵 소리를 내 가면서 몇 번 먹고 또 다시 국물을 마시면 뱃속은 물론 피부까지 풀리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쯤에서 한번 해줘야 하는 게 코 풀기. 몸이 녹으면 맨 먼저 콧물이 나온다 했던가? 체면 불구하고 두어 번 팽팽 거리고 나면(식당에서의 절제된 코 풀기는 결례가 아님) 이제 컨디션 조절하고 출근하는 일만 남았다.
명동 할머니국수의 또 다른 인기 메뉴는 두부국수. 멸치국수에 싱싱한 연두부를 푸짐하게 띄워주는 두부국수는 해장은 물론 한끼 해결하기에도 너끈할 정도로 든든한 식사거리다. 두부국수는 여자들이 즐겨 찾는 메뉴인데, 두부나 국수나 모두 살이 찌지 않는 웰빙식이라서 그렇다. 이제는 술 덜 깬 금융맨이 새벽바람 가르며 몰려오는 일은 예전 같지 않지만, 여전히 하루 종일 바쁘게 돌아가는 곳이 바로 명동 할머니국수다. 명동 할머니국수는 프랜차이즈로 변모, 전국에서 맛볼 수 있는 유명한 집이 되었는데, 그래도 역시 본가의 맛을 보려면 명동 뒷골목을 찾아가는 게 최고! 명동의 명동 할머니국수는 을지로입구역 외환은행 본점에서 명동성당 방향 골목으로 가다 오른쪽 첫 번째 완전 허름한 골목 안에 있다.
※메뉴 : 할머니국수 3000원, 두부국수 3500원, 비빔국수 4000원, 칼국수 4000원, 북어콩나물해장국 2500원
※문의 : 778-2705
미식가 인기 최고…남대문시장 일류분식
마흔 일곱 가지 메뉴가 준비되어 있다는 사장(으로 보이는) 아주머니의 우렁찬 목소리가 쩌렁거리는 곳이다. 굳이 저렇게 소리지르지 않아도 될 법도 한데… 그러나 마흔 일곱 가지 메뉴 가운데, 역시 일류분식의 대표메뉴는 잔치국수와 칼국수, 그리고 쫄면 등.
일류분식 잔치국수의 가장 큰 특징은 넉넉하고 다양한 고명. 물론 깊은 멸치 국물 맛은 기본이다. 멸치 국물은 무턱대고 오래 끓인다고 좋은 맛이 나는 것은 아니다. 적당한 양을 그때그때 끓여야 맑은 국물 맛이 나오는 것이다. 이 집은 담백한 국물에 적당히 찰진 면을 넣고, 그 위에 김, 달걀, 마카로니 등 기본 고명에 청양초를 송송 썰어서 올리는데, 그래서 잔치국수의 첫 맛은 시원하고 부드럽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입 안이 칼칼해지고, 국물까지 다 비우고 나면 창 밖의 겨울 바람도 무섭지 않을 정도로 몸이 든든해 진다. 맛이 좋다고 최후의 국물을 벌컬벌컥 마셨다가는 사래 들릴 수도 있으니 요주의! 일류분식은 퇴계로 남대문시장 포키아동복 건물 골목으로 들어가 10m 오른쪽에 있다.
※메뉴 : 잔치국수, 손칼국수, 쫄면, 찹쌀순대, 튀김범벅, 열무국수, 열무냉면, 모밀냉면 등
※문의 : 776-1946
주문해야 조리 시작…이태원 멸치국수
유명 국수집들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이 집 역시 특별한 상호가 없이 그냥 멸치국수라는 간판을 걸어놓은 곳이다. 사진에 볼 수 있듯이, 이태원 멸치국수는 아주 작은 집이다. 테이블 너덧 개가 전부다. 그러나 간판에서 보듯이 배달이 많은 집이다. 멸치국수 본연의 자세 그대로, 야식으로서의 기능에 충실하고 있는 것이다.
이 집 국수의 특징은, 손님이 주문을 하면 그때부터 육수와 면을 끓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태원 잔치국수는 대형 국수집에 비해 기다리는 시간이 좀 긴 편이다. 한가한 시간에는 5분에서 10분 정도다. 그렇게 해서 나온 국수의 맛이 맑고 졸깃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멸치국수는 식사 때도 바쁜 편이지만, 주말 새벽녘에 또 한번의 러시아워가 온다. 이태원에서 밤새 달린 무도 마니아들이 지난밤의 열기를 차분히 식히는 곳으로 이 집을 애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의 위치는 이태원 삼거리 지하철 녹사평역에서 남산 2~3호 터널 방향으로 직진, 경리단 입구를 지나 첫 번째 버스정류장 바로 앞에 있다. 143번, 401번, 406번이 이 정류장에 정차하며, 주차할 곳은 전혀 없는데다가 24시간 카메라 단속 중이다.
※메뉴 : 멸치국수 3000원, 비빔국수 3500원, 동치미국수 4000원, 국수사리 500원, 달걀 천원에 4개
※문의 : 790-4154
독특한 젓갈향…성북동 소문난 국수집
재개발 문제로 시끌시끌하고 있는 성북동 언덕 입구에 있는 허름한 집이다. 이 집은 다른 국수집과 비슷한 멸치 국물 맛에 평범한 고명을 올려주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고명이 있다면 젓갈 김치. 뜨거운 국물에 담긴 국수 위에 올린 차갑고 사각거리는 김치에는 젓갈이 듬뿍 들어있어서, 그 어떤 국수집에서도 경험하지 못하는 맛과 향을 갖고 있다. 김치 고명 때문인지 성북동 소문난 국수집의 국수 맛은 개운하다기 보다 감치는 맛이 있다고 해야 할까? 지하철 4호선 삼선교역에서 성북동 방향으로 500m쯤 올라오면 오른쪽으로 재개발을 반대하는 현수막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는데, 마을로 들어가는 오른쪽 골목 초입에 있다.
※메뉴 : 바지락칼국수, 별미김치칼국수, 잔치국수, 라면, 부추부침개
※문의 : 3672-6685
라이딩족의 방앗간…행주산성 원조국수집
라이딩 마니아들은 이곳 저곳 자전거 도로를 타고 다니면서 유명한 맛집을 체험하는 쏠쏠한 재미도 즐기곤 한다. 행주산성은 한강변을 달리는 라이딩족의 출발지 또는 종착지이다. 이곳에 있는 원조국수집은 이쪽으로 출행 나온 라이딩족의 필수 코스. 주말이면 국수집 옆에 보통 20~30대의 자전거들이 주차해 있고, 손님이 많을 때는 홀에는 들어가지도 못한 채, 쟁반을 받아 공터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먹기도 하는 집이다.
이 집의 가장 큰 장점은 양. 솔직히 양이 적은 사람들은 이 집의 국수 그릇 크기만 보아도 질릴 정도다. 여자 두 사람이 먹어도 충분할 만큼 엄청난 양이다. 메뉴는 딱 두 가지. 잔치국수는 멸치국물에 면을 말아주는 것이고, 비빔국수는 상추 등 야채가 듬뿍 올려있는 국수에 테이블에 있는 고추장을 넣어 스스로 비벼먹는 시스템이다. 기가 막힐 정도로 대단한 맛은 아니지만 시원하고 매콤하고 든든한 매력 때문에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이 집의 또 하나 특징은 선불제. 손님이 워낙 많은데다, 홀이 앞 뒤로 분산되어 있어서 일일이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홀에 들어가면 손님이 카운터로 가서 주문을 하면서 계산도 끝내야 한다. 멀뚱히 앉아있어도 종업원이 와서 주문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장사 잘 되는 집의 나쁜 점이기도 하지만, 어쩌냐, 맛있는 걸. 한동안 일요일에는 장사를 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일요일에도 문을 연다.
승용차로 갈 경우 파주 방향으로 달리다 방화대교 지나 1km 지점의 행주산성 입구 도로로 나가서 첫번째 만나는 왼쪽 굴다리 밑을 지나면 길 건너에 주차장이 있다. 버스는 영등포에서 화정을 다니는 82번, 영등포에서 일산을 다니는 87번, 87-3번, 이대앞에서 합정을 거쳐 일산으로 가는 921번 버스를 타고 행주산성입구에서 내리면 된다.
※메뉴 : 잔치국수 3000원, 비빔국수 3000원
※문의 : 031-972-8688(옆집 슈퍼마켓)
기필코 먹는다…명동 교자
1966년에 명동칼국수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뒤 1978년에 명동교자로 이름을 바꾼 집이다. 지금도 명동칼국수나 명동교자라는 간판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지만, 43년 전통을 가진 명동교자는 명동에만 두 곳 있을 뿐이다. 본점은 유투존 후문 바로 앞에 있고, 명동 1호점은 금강제화 후문 옆에 있다.
명동교자의 명동칼국수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맛을 본 깊고 구수한 맛. 고명 가운데 알쌈(물만두처럼 생긴)을 올리는 게 특징이다. 이 집의 또 하나의 특징은 김치다. 국수의 반찬은 김치가 필수다. 국수가 맛있는 음식임에는 틀림 없지만, 한국 사람이 체질적으로 밀가루 음식에 대한 소화력이 떨어져 소화를 돕는 김치는 꼭 같이 먹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명동교자는 예전부터 그 독특하고 아삭한 김치의 인기가 대단하다. 일반 국수 집에서 먹는, 맛은 있지만 어쩐지 시들해 보이는 김치와는 차원이 다르다. 국수 한 젓가락을 떠서 김치 한 조각을 얹어서 후루룩 한 방에 입안에 넣은 뒤 헐헐 불어가며 먹는 칼국수의 맛이란!
또한 국수를 다 먹은 뒤에는 차조밥을 말아 국물과 함께 먹으면 배가 불러 말도 못할 지경에 이르게 된다. 점심과 저녁 시간에 명동교자에 가면 언제나 10분 이상을 기다려야 맛을 볼 수 있으며, 그냥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도 한 둘이 아니다. 요즘에는 일본 사람들이 너무 많이 찾아와 더욱 복잡해 졌다.
※메뉴 : 칼국수, 만두, 비빔국수, 콩국수
※문의 : 776-5348(본점), 776-3424(명동 1호점)
담백한 육수맛…성북동 우리밀 국시집
시티라이프 서울산책 성북동 편에 소개되었던 맛집이다. 30년 가까운 맛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이 집의 국수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안동국시와 비슷한 맛을 보여주고 있다.
푹 고은 육수에 손으로 만든 칼국수를 끓여 내는 국시, 부드럽게 지져주는 생선전, 담백한 감자전, 기가 막히게 맛있는 수육과 문어, 그리고 이 두 가지를 반반씩 먹을 수 있는 ‘반반’과 ‘찹쌀동동주’를 맛볼 수 있다. 모든 음식재료는 국산을 사용하고 있으며, 주인의 깐깐한 손 맛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혜화동 로터리에서 성북동을 넘어가는 고개 꼭대기를 넘어 10m 오른쪽에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2112번을 타고 성북초등학교 앞에서 하차, 길을 건너 혜화동 고개 쪽으로 걸어가면 된다.
※메뉴 : 국시 7000원, 한우 수육 2만원, 문어 2만원, 반반 2만원, 생선전 1만5000원, 감자전 1만원, 한우설렁탕 7000원
※문의 : 745-3764
[글·사진 이영근 프리랜서]
[출처 : 매일경제 시티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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