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과 취미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

여풍2 2024. 3. 19. 21:38

 

세월이 가면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 글(詩) : 박인환▶ 작곡 : 이진섭▶ 노래 : 박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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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환 (朴寅煥) 

 

박인환(1926년 8월 15일 -1956년 3월 20일)은 한국 1950년대의 대표적인 모더니즘 시인이다. 1926년 강원도 인제에서 출생하였고 경성제일고보를 거쳐 평양의전을 중퇴하였다. 1946년 〈거리〉를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광복 후 서울 에서 서점을 경영하였고, 1947년부터 경향신문 기자로 미국을 시찰하였다. 1949년 동인그룹 '후반기'를 발족하여 활동하였다. 1949년 5인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을 발간하여 본격적인 모더니즘의 기수로 주목받았다.     1955년 《박인환 시선집》을 간행하였고 1956년 30세의 나이로 심장마비로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묘소는 망우리 공동묘지에 있다. 1976년에 시집 《목마와 숙녀》가 간행되었다 

 

박인희(朴麟姬) 

 

박인희(朴麟姬, 1945년 ~ )는 대한민국의 가수, 작사가, 작곡가, 방송인이다. 1970년대 대표적 통기타 가수 중 하나로 방송인으로 재능을 떨쳤다. 차분하고 청아한 음색의 소유자로 히트곡 〈목마와 숙녀〉, 〈모닥불〉,<방랑자> <세월이 가면> 등이 있다. 이해인과는 풍문여자중학교 동창이다. 1971년 숙명여자대학교 불문과 재학 중에 혼성 포크 듀엣 ‘뚜아에모아’(너와 나)의 멤버로 〈약속을 발표, 가수로 데뷔하였고 1971년9월21일 TBC가요 대상 중창단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하였다. 그해 9월에 그룹을 해체하고 DBS 《3시의 다이얼》 의 진행을 맡았으며, 이후 1981년까지 방송인으로 활동을 계속하였다. 글쓰기를 좋아하여 숙명여대 3학년 재학 중 지은 〈얼굴〉이 회자되어 《한국의 명시집》에 수록되 기도 하였으며, 1989년에는 이해인과 함께 수필집을 냈다

 

세월이가면 음악이 탄생하게된 이야기 

 

모더니즘의 깃발을 높이 들고 한국 전쟁 전후 폐허의 공간을 술과 낭만으로 누비던 박인환(1926∼1956)의 '세월이 가면'은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연인을 잃고 혹은 살아 있는 사람과 이별했던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적신 화제작이었다. 이 詩에 대하여 강계순(姜桂淳, 1937년생)은 박인환 평전 '아! 박인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아! 박인환, 문학예술사, 1983. p168~171) 을지로 입구 외환은행 본점 건물을 왼쪽으로 끼고 명동 성당 쪽으로 비스듬히 뻗어 간 길을 걷다보면 세월의 이끼가 묻어 나는 낡은 3층 건물이 나타난다. 이 건물의 2층에는 놀랍게도 딜레탕트 박인환의 흔적을 기억 이라도 하듯 '세월이 가면'이라는 간판을 내건 카페가 있다. 바로 이곳이 전후 명동에서 문인들의 사랑방 노릇을 하던 '명동 싸롱'이었다. 박인환은 이곳에서 문우들과 어울리다가 계단을 내려와 죽음 이 휩쓸고 간 세월의 쓸쓸함을 술로 달래기 위해 맞은편 대폿 집 '은성'으로 향했다.

 

지금의 유네스코회관 건물 맞은편 자리이다. 통나무 의자에 사기그릇 대폿잔, 담배연기로 꽉 찼던 이곳은 예술인들의 아지트였다. 1956년 이른 봄 저녁이었다. 은성에 모여 앉은 박인환, 이진섭, 송지영, 영화배우 나애심 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이 몇 차례 돌아가자 그들은 나애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졸랐지만 그녀는 좀체 부르지 않았다. 그 때 갑자기 박인환이 즉석에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 시를 넘겨다보고 있던 이진섭도 즉석에서 작곡을 하고 나애심은 흥얼흥얼 콧노래로 그 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깨어진 유리창과 목로주점과도 같은 초라한 술집에서 즉흥적으로 탄생한 것이 오늘까지 너무나도 유명하게 불리고 있는 '세월이 가면'이다. 한두 시간 후 나애심과 송지영은 돌아가고 임만섭, 이봉구 등 이 합석을 했다. 테너 임만섭이 그 우렁찬 성량과 미성으로 이 노래를 정식으 로 다듬어서 부르자 길가는 행인들이 모두 이 술집 문 앞으로 모여드는 기상천외의 리사이틀이 열렸다.

 

마른 명태를 앞에다 놓고 대폿잔을 기울이면서 아름다운 시 를 쓰고 작곡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며 박수를 보내는 많은 행인들. 그것은 마치 낭만적인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했다.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은 순식간에 명동에 퍼졌다. 그들은 이 노래를 명동 엘리지라고 불렀고 마치 명동의 골목 마다 스며있는 외로움과 회상을 상징하는 듯 이곳저곳에서 이 노래는 불리어졌다.

 

이 '세월이 가면'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애절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이 시를 쓰기 전날 박인환은 십 년이 넘도록 가지 못했던 그 의 첫사랑 애인이 묻혀 있는 망우리 묘지에 다녀왔다. 그는 인생을 정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랑도, 시도, 생활도 차근차근 정리하면서 그의 가슴에 남아 있던 애인의 눈동자와 입술이 나뭇잎에 덮여서 흙이 된 그의 사랑을 마지막으로 돌아보았다. 순결한 꿈으로 부풀었던 그의 청년기에 아름다운 무지개처럼 떠서 영원히 가슴에 남아있는 것, 어떤 고통으로도 퇴색되지 않고 있던 젊은 날의 추억은 그가 막 세상을 하직하려고 했을 때 다시 한 번 그 아름다운 빛깔로 그의 가슴을 채웠으리라. 그는 마지막으로, 영원히 마지막이 될 길을 가면서 이미 오래 전에 그의 곁에서 떠나간 연인의 무덤에 작별을 고하고 은밀 히 얘기하고 싶었다. 박인환은 '세월이 가면'을 쓰고 나서 한동안 흥분으로 세월을 보냈다. 부지런히 원고도 써서 몇 푼 원고료를 받지만 집에 떨어진 쌀 을 살만큼 넉넉한 것은 아니었다.

 

하염없이 쓸쓸한 얼굴로 명동 백작으로 불리던 이봉구와 '신라 의 달밤'을 잘 부르는 임궁재 등과 함께

국수한 그릇에 술잔을 비우곤 했다. 불후의 명곡 '세월이 가면'이 완성 되던 날 이진섭과 함께 어디 서 그렇게 낮술을 많이 마셨는지 얼굴이 붉어가지고 당시 단성 사에서 상영중인 '롯사노 브릿지'와 '케서린 햅번' 주연의 '여정' 을보고 싶었으나 주머니가 비어 못 보고 '세월이 가면'을 애처롭 게 술집에 앉아 불렀다. 그리고 사흘 후 친구인 김훈에게 자장면 한 그릇을 얻어먹은 박인환은 술에 만취되어 집에 와 잠을 자다가 심장마비로 31세의 아까운 인생을 마감했다.

 

세탁소에 맡긴 봄 외투도 못 찾고 두꺼운 겨울 외투를 그대로 입 은 채였다. 무슨 이유에선지 눈을 감지 못하여 부음을 듣고 맨 먼저 달려온 친구 송지영이 감겨주었다. 생전에 그렇게 좋아하던 술을 못 사주었다면서 김은성이 조니워 커 한 병을 죽어 누워 있는 박인환의 입에 부었고 다들 울었다. 그의 상여 뒤로 수많은 선후배들이 따랐고 공동묘지까지 따라 온 친구 정영교가 카멜담배와 조니워커를 그의 관 위에 부어 주었다. 모윤숙 시인이 고인의 시를 낭송 하였고 친구인 조병화 시인이 조시를 읽었다. "인환이 너 가는구나 대답이 없이 가는구나 너는 누구보다도 멋있게 살았고 멋있는 시를 쓰고..."

 

목마와 숙녀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 보아야 한다

 

등대...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 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 글(詩) : 박인환 ▶ 낭송 : 박인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