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과 방황

안부전화

여풍2 2018. 2. 26. 18:24










젊어서는 급히 출근할 때
정신없이 시계를 찿다가
아내가 집어주는
시계를 차고 회사에 간다
아침 회의를 마치고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기 위해
와이셔츠 손목 단추를 풀고 나면
시계가 두개다
캬캬캬~! 웃음이 나왔다



퇴직 후  요즘은 바쁜 것도 없는디
지하주차장에서 15층 집까지
세번 오르내린 적도 가끔 있다
차 키를 가질러
핸드폰을 가질러
지갑을 가질러
허허허~! 이제는 쓴 웃음이 나온다



아내는 TV를 보다가
갑자기 아들을 큰 소리로 부른다
아들아~!
집에 불 났나봐!
어디서 타는 냄새가 난다



나도 놀래서 튀어 나와
세명이 허겁지겁 온 방을 뒤집는다
불난 곳이 없다
아내의 손에 군고구마가 들려 있다
타는 냄새가 군고구마 냄새다
우 하하하하~! 허탈한 웃음이 나온다



그래서
치매에 좋다 하여
심심풀이로 틈만 나면
아내와 맞고를 친다
맞고도 한동안 치다 보니
주머니 돈이 쌈짓돈이라 싫증이 난다



전화번호를 외우면
치매에 좋다는 말에
문구점에서 명함만한
전화번호부를 샀다
속 마음이 묻는다
'오래 살고 싶은겨?'
허  허~!



해가 바뀔수록
수첩의 뚜께는 얇아 졌지만
남아 있는 이름들과의 관계는
더 두터워지는 느낌이다
연필로 옮겨 적을 때마다
지워지는 이름이 더 많아
옮겨 적는 수고는 덜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은 아리다
썼다 지우고 지우고 망서려지는
먼저 떠난 이름을 대할 땐 더 하다



아~!
내 이름도 언젠가
누군가의 수첩에서
기억에서
그렇게 지워지겠지



수첩의 이름 한줄로 맺어진 인연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애잔한 사연들
지워지기 전에
지우기 전에
먼 데 있는 이름들에게
오늘 부터
안부전화라도 해야겠다



 




[옮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