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과 방황

엄마와 앵두

여풍2 2022. 5. 2. 20:57

☆엄마와 앵두.

나는 가난한 시골동네에서 자랐다. 봄이 되면 우리 마을은 춘궁기로 곤란을 겪었다.
보리밥은 그나마 여유 있는 사람 얘기였고. 보통은 조밥을 먹었는데 그 좁쌀도 떨어져 갈 때쯤이

가장 어려운 시기였으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계절은 호시절이라. 산과 들에 꽃이 피고. 앵두나무의 앵두는 빠알갛게 익어갔다.
우리 집엔 초가 뒷마당에 커다란 앵두나무가 있었다. 그러니까 그게 초등학교 3학년 때쯤이었을 게다.
그 해에는 가지가 끊어질 만큼 많은 앵두가 열렸는데.

어느 날 아침 등교하는 나에게 엄마가 도시락을 주면서 오늘 도시락은 특별하니 맛있게 먹으라는 것이었다.
특별해 봤자 꽁보리 밥이겠거니 하고. 점심 때 도시락을 열었는데 도시락이 온통 빨간 앵두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새 좁쌀도 떨어져 새벽같이 일어난 엄마가 땅에 떨어진 앵두를 주워 도시락을 쌌던 것이다.

창피했던 나는 도시락 뚜껑을 열어 둔 채로 책상에 엎드려 엉엉 울고 말았다.
아이들의 놀리는 소리로 교실이 떠들썩해지자 선생님이 다가 오셨다.

상황을 판단한 선생님은 "와 ~~~맛있겠다...이 도시락 내 거랑 바꿔먹자!”라며 나에게 동그란 3단

찬합도시락을 건네셨다. 1단에는 고등어조림, 2단에는 계란말이. 그리고 여러 가지 반찬과 쌀밥.

나는 창피함을 무릅쓰고 게걸스럽게 도시락을 비웠다. 먹으면서 왜 그렇게 서럽고 눈물이 나던지

선생님께서도 앵두를 하나 남김없이 드셨다.

그날 집에 와서 도시락을 내던지며 엄마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차라리 도시락을 싸지 말지 왜 창피를 줘?”
엉엉 울면서 투정을 해댔지만 엄마는 듣는 둥 마는 둥 딴소리를 하셨다.
“그래도 그 앵두 다 먹었네!”

나는 엄마가 밉고 서러워 저녁 내내 울다 잠이 들었는데 엄마가 부엌에서 설거지하는 소리에 깨어났다.
문틈으로 살짝 내다보니 내 도시락을 씻던 엄마는 옷고름으로 입을 틀어막고 어깨를 들썩이셨다.

울고 계셨던 것이다!

찢어지는 가난에 삶이 미치도록 괴로워도 그 내색을 자식에게 보이지 않으시려고

울음마저 맘껏 울지 못하셨으니 그 한이 오죽하셨을까.
자식에게 앵두 도시락을 싸줄 형편에 당신은그 앵두라도 배불리 드셨겠는가.

엄마는 가끔씩 나에게 장난처럼 물으셨다.
“우리 강아지 나중에 크면 엄마. 쌀밥에 소고기 사 줄 거지?”

이제 내 나이 마흔!
그때 나만한 아들을 키우는 나이가 되었다.
쌀밥에 소고기가 지천인 세상이고 그 정도 음식은 서민들도 다 먹는 세상이 되었건만.
그토록 먹고 싶어 하셨던 엄마는 세상에 계시지 않으니 너무나 서럽고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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