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과 방황

"늙어도 욕망 줄지 않아.. 살아있으려면 사랑하라"

여풍2 2022. 2. 5.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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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의 인터스텔라] "늙어도 욕망 줄지 않아.. 살아있으려면 사랑하라" 佛 최고 지성의 조언

파스칼 브리크네르의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라는 책을 읽었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인터뷰 책을 썼던 터라, 같은 인문학 분야에서 약진하는 이 프랑스 지성의 작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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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의 인터스텔라]

"늙어도 욕망 줄지 않아.. 살아있으려면 사랑하라" 佛 최고 지성의 조언

김지수 문화전문기자

 

삶은 터무니 없는 은총, 늙을수록 더 사랑하라
행복한 노화는 평안할 수 없어, 역동적이고 요란
창조의 샘 깊어지는 '자기 쇄신 노인' 많아져
메멘토 모리? 철학은 '죽음' 보다 '삶' 가르쳐야
반복할수록 숨은 재능 나와, 자기 복제 문제 없어
50대, 은총과 심리적 붕괴에서 파도 타는 나이

 

프랑스 대문호 파스칼 브뤼크네르(Pascal Bruckner).

나이듦에 관한 역동적인 사유를 담은 책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라는 책을 출간했다./©JF PAGA

 

파스칼 브뤼크네르의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라는 책을 읽었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인터뷰 책을 썼던 터라, 같은 인문학 분야에서 약진하는 이 프랑스 지성의 작품이 몹시 궁금했다.

책은 나이듦의 역동성에 관한 대서사시라 할 만했다. ‘어떻게 노년을 맞이할 것인가’의 톤 앤 매너에 맞게 ‘생의 구경꾼’ 같은

관조를 기대했으나, 나 자신, 읽는 내내 ‘욕망의 주인공’으로 초대되어 피가 끓는 흥분감을 주체할 수 없었다.

파스칼의 문장은 죽음보다 삶의 리듬에 맞춰 춤을 췄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연출한 그로테스크한 영화 ‘비터문’의 원작자다웠다. ‘나이듦’에 관한 그의 시니컬한 농담과 지적 통찰은 수시로 허를 찔러, 좋은 와인을 마시며 산을 오르다 간간이 사르트르와 몽테뉴의 아리아를 듣는 기분이었다.

예컨대 이런 아포리즘이 점점이 박혀 혼을 쏙 빼놓곤 했다.

 

‘생은 판에 박힌 되풀이와 놀라움이라는 이중구조를 취한다.’

 

‘시간은 희한한 우군이 되었다. 우리를 죽이지 않고 떠받친다… 과수원 같기도 하고 사막 같기도 하다.’

 

‘생이 짧으면 치열하게 살 이유가 생긴다… 이것이 카운트다운의 이점이다.’

 

‘삶은 늘 영원한 도입부요, 점진적 전개 따위는 끝까지 없다.... 우리는 시간 속에 머물되 고정 거주지는 없는 노숙자들이다.’

 

동서양의 지혜가 이토록 다르게 생동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이어령 선생이 정오의 분수처럼 죽음을 생의 한가운데로 초대해 감각하고 사유했다면,

파스칼은 사랑과 일을 노년의 한가운데로 불러들여 임종 전까지 ‘욕망할 것’을 권고한다.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는 죽는다’는 엄숙한 생명의 질서만큼이나 ‘젊은이도 늙은이도 욕망 앞에 평등하다’는 파스칼의 선언은 정신이 얼얼할 만큼 센세이셔널했다.

에로스와 디오니소스의 충동으로 가득 찬 당대의 철학자는 말한다.

‘살아있으려면 사랑하라’고. ‘노년에 욕망이 감퇴한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고령에도 통찰력과 푸릇푸릇한 정신으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는 분별력의 대가들이 얼마나 많으냐고.

어쩌면 우리는 고령화에 대한 담론을 새로 시작해야 할 지도 모른다.

파스칼 브뤼크네르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그는

르노도상과 메디치상, 몽테뉴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석권했고 파리정치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에서

‘포기, 자리, 루틴, 시간, 욕망, 사랑, 기회, 한계, 죽음, 영원’이라는 10가지 주제에 관해 이야기한다./©JF PAGA

 

-허를 찔린 듯 어지럽기도 하고 한없이 부드럽기도 했습니다. ‘나이듦’이라는 주제를 전하기 위해 따로 준비가 필요했는지요?

 

“거창한 계획은 없었습니다. 내 생각에는, ‘노년’이라는 주제 자체가 대단한 힘과 매력을 갖고 있어요.

중요한 건 내가 어떤 단어를 첫 번째로 쓸 것인가였어요.

 

‘포기를 포기하라!’

 

첫 단어를 골라서 쓰는 그 순간, 글 전체의 톤이 정해지죠.

‘늙음’을 보는 시선이 서정적일지, 논쟁적일지, 그 사이 어디쯤일지. 좋은 아이디어란 마치 식탁보의 실과 같아요.

실 하나를 당기면 식탁보 전체의 올이 풀리죠. 몇 가지 화두를 프렌치 리뷰에 기사로 썼을 때, 많은 프랑스인이 좋아했습니다.”

 

-프랑스는 ‘노년’에 관한 철학적 유서가 깊은 듯 합니다.

몽테뉴, 파스칼, 시몬느 드 보부아르에서 이어진 ‘노화에 관한 사유’가 칼칼하더군요.

 

“고통, 노화 그리고 죽음이라는 문제를 성찰하는 프랑스 사상가들의 문학적 전통이 있지요.

프랑스에서는 모든 이야기가 허용됩니다. 특유의 스타일만 있다면.”

 

-삶은 늘 영원한 도입부라는 말이 가슴에 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세 시대의 중간 지점인 50대만의 생물학적 화학적 신비가 있을까요?

 

“50이라는 좌표는 하나의 이정표예요.

은총과 붕괴 사이에서 파도를 타는 나이죠. 더 높은 것을 꿈꾸고, 더 멀리 뛸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건강한 상태지만,

노화의 첫 징후도 나타나죠. 더는 젊지도 그렇다고 엄청나게 늙지도 않은 무중력의 ‘정지 상태’를 경험하게 됩니다.

특이한 건 50세가 되면 인생이 정말 짧아지기 시작합니다.

오십이 넘었다면 당신은 이미 사랑, 가족, 직업 등에서 많은 의무를 치뤘고 시니어로 불릴 겁니다.

그때 이런 의문이 고개를 들어요. 앞으로 내가 무엇을 더 바랄 수 있을까, 여전히 또 다른 변화를 꿈꿀 수 있을까.

다행히 오십 이후에도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30여 년이 더 있습니다.

남은 시간을 얼마나 잘 사용할까? 그것은 각자에게 위대한 과제고,

그래서 우리는 단지 늙어가는 것만으로 자기 인생의 철학자가 되죠.

적어도 50년은 지나야 ‘되어야 했던 모습’에서 벗어나 홀가분한 생이 자기 앞에 펼쳐집니다.”

 

-이미 절반이 지났는데, 도전은 너무 많은 에너지가 드는 일이 아닌가요?

 

“에너지를 쓰는 게 곧 삶입니다.

여러분은 10년을 주기로 스스로를 거침없이 재구축해야 합니다. 50, 60, 70, 80… 숫자가 바뀔 때마다 안주하지 말고,

위험을 무릅써도 됩니다. 자기로 사는 편안함과 자기일 수밖에 없는 불편함을 인지해야, ‘나’로 살 수 있어요.

만약 도전할 에너지가 없다면, 당신은 스스로의 생존을 증명하는 반짝거림을 잃어가는 중입니다.

죽기도 전에 사라질 이유가 있나요?”

 

-그럼에도 TV에서 종종 같은 나이의 낯선 사람을 보고 놀랄 때가 있어요. ‘저 나이 든 사람이 어떻게 내 또래일 수 있어?’

친구들도 착각을 부추깁니다. “넌 하나도 안 늙었어!” ‘내 나이와 늙음’을 제대로 인지하는 게 필요할까요?

 

“사람의 얼굴은 여러 시대가 겹치는 양피지입니다.

친구는 우리가 예전에 그 활기를 공유했다는 사실의 증인이고, 그들의 위로는 “나는 그 시절이 그립다”는 말이죠.

다른 이의 위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큰 실패를 경험하고, 머리가 하얘지고, 배가 나오고, 움직이는 게 힘들어지고…

신체의 노화징후가 나타나면 스스로 ‘늙었다’는 감정이 들죠.

그러나 세월의 파괴력은 역동성을 제한하기는 하지만 중지시키지는 못해요. 나이 먹는다고 철이 드는 것도 아니고,

나이 때문에 무너지지도 않기 때문에 자기 나이로 보이고 말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파스칼 브뤼크네르의 소설을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연출한 영화 '비터문'.

욕망과 파멸을 담은 문제작으로 90년대 프랑스 사회를 뒤흔들었다.

 

-최근에 저는 한국의 지성인 이어령 교수를 인터뷰한 ‘마지막 수업’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라스트 인터뷰지요. 그는 컵을 육체, 그 안에 담긴 물을 욕망과 마인드,

컵 안의 빈 곳을 영혼으로 설명했습니다. ‘욕망의 역동성’에 큰 가치를 두는 당신에게 이 이야기는 어떻게 다가가나요?

 

“다른 비유를 사용해서 답을 하지요.

나이가 든다는 것은 당신이 지나갈 때 문이 저절로 닫히는 어두운 복도를 걷는 것과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두 개의 문을 최대한 늦게까지 열어 두는 것이지요. 바로 그 문이 욕망의 변화구입니다.”

 

-시간이 주인공인 이 세계에서 속절없이 미끄러지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는 없는지요?

 

“철학은 삶을 배우는 것, 특히 유한성 안에서 다시 사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평생은 새벽과 아침, 정오와 황혼이라는 하루의 여정과 유사합니다.

인생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한 해의 구조를 띠고 있죠.

매일 아침 우리는 태양을 선물로 받아요. 여름 아침에 일찍 일어나 달리거나 빠르게 걸을 때, 나는 무한한 행복을 느껴요.

이것이 제가 시간이 주인공인 세계에 맞서 싸우는 방법이죠.

그러나 시간 속에서 나의 주체성을 찾는 최고의 방법은 사랑을 하는 겁니다. 살아있으려면 사랑을 나누세요.

 

미끄러지는 시간을 붙잡을 순 없지만, 행복한 순간은 항상 ‘앙코르’를 원해요.

반복이 시간의 기약이고, 우리가 좋은 환상에 몰두할 수 있는 동안은 소망이 있어요.

100세 노인도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고 내일을 말합니다. 그러니 죽음보다 지금의 삶에 더 집중하세요.

우리는 내일 깨어날 테고, 내년에도 새해 인사를 나눌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은 메멘토 모리만큼 인생의 즐거움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제껏 철학은 죽음을 가르치는 학문이라고 생각했기에, 매우 당황스럽더군요.

 

“간단하게 말해봅시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 죽습니다.

왜 우리의 가장 행복한 순간들을 죽음이라는 암울한 시각으로 망쳐야 하는 걸까요?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는 플라톤이나 몽테뉴가 말했듯이 어떻게 죽어야 할지에 대해 배우는 거죠.

하지만 죽는다는 것은 우리가 배워야 할 교과 과목이 아니고 우리는 모두 결국 백 퍼센트 죽게 돼 있어요.

죽음은 우리 모두가 뛰어난 성적으로 통과하게 될 유일한 시험이죠.

철학을 한다는 것은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배우는 것입니다.”

 

-’죽음을 알면 삶을 알게 된다’는 명제가 삶의 생기를 억누른다고 생각하는지요?

 

“네. 앞서 말했듯, 메멘토 모리의 폐해는 우리의 진정한 기쁨과 즐거움을 해로운 독으로 파괴한다는 거죠.”

 

‘죽음을 가정할 때 일상은 더 농밀해진다’는 동양 현자의 말도 ‘죽음의 환기는 생이라는 축제를 망칠 뿐’이라는

서양 현자의 말도 다 일리가 있다.

그 차이는 ‘생명을 어떻게 감각하느냐’에 있는 듯했다.

생명을 생육과 번성으로 보느냐, 사랑과 성으로 보느냐에 따라, 시간은 영원이 되기도 하고 순간이 되기도 한다.

 

에로스의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인생을 보는 시야가 달라진다.

 

분명한 건, 나이 들수록 반복하는 날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매일 비슷한 하루를 살고, 어김없이 다가오는 사계절을 맞는다.

줄거리를 알면서도 같은 기대, 같은 전율을 경험하고 싶어 한다. 그 반복 속에 있음을 감사하게 여기며, 제 각자의 미세한 파동을 만들어간다.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시시한 일상 ‘루틴’이 우리를 구원한다고 한다. 반복은 불모성과 생산성의 양가적 힘을 지녔다고.

반복의 영성을 지닌 성실한 사람들, ‘바른 생활 루틴이’라는 별명을 지닌 요즘 세대에게 눈이 번쩍 뜨이는 통찰이다.

 

-반복을 ‘정체된 전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같은 자리로 계속 파고들어 가야만 위대한 발견이 나올 수 있다고요.

특별히 요즘 시대 사람들에게 ‘반복’이 더 중요한 이유가 있을까요?

 

“반복에는 두 가지 면이 있어요.

하나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끔찍한 루틴 또하나는 정반대로 인생을 계속해서 다시 시작하려는 시도입니다.

물론 팬데믹 때문에 우리 삶은 영화 ‘사랑의 블랙홀’처럼 첫 번째 반복이 지속했었죠.

그러나 좋은 의미의 반복은 숨은 재능을 찾게 해줍니다.

자신을 흉내 내는 과정에서 혁신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요.

프루스트도 고유한 목소리를 찾을 때까지 자기를 베끼고 또 베끼면서 천재성을 갈고 닦았습니다.

저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걸 발견했고요.”

 

-나이 들수록 반복과 자기 복제로 시들어간다는 느낌이 드는 제게 더없이 반가운 이야기입니다.

창조의 샘이 마르지 않는 ‘자기 쇄신의 기질’을 가진 노인들도 많아진다고요. 예를 들어주시겠어요?

 

“서구 쪽에 살고 있어서 서양인들이 쉽게 떠오르네요.

위대한 예술가, 화가, 영화제작자, 코미디언, 음악가들을 보세요.

우선 블랙 추상화의 대가인 100세의 프랑스 화가 피에르 술라주, 91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영화를 촬영하고 있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아르헨티나 출신의 유명 피아니스트 80세인 마르타 아르헤리치 등. 은퇴한 스위스 철도원 출신으로 98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암벽을 등반하는 사람도 있죠. 노년이라는 먼 대륙의 밀사들은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생은 맥없이 늘어지지 않는다’.”

 

아직은 퇴장할 때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파스칼 브뤼크네르./©JF PAGA

 

-자기 쇄신의 시간을 만들어가기 위한 당신만의 하루 루틴이 있습니까?

 

“가장 중요한 루틴은 피아노를 치고 운동을 하는 거예요.

그 루틴으로 나를 충전하고, 다른 활동을 시작할 수 있는 리듬을 만듭니다.”

 

-’일, 참여, 공부’ 이 3가지가 우리를 맥없는 시간에서 구원한다고 했습니다. 무슨 뜻인가요?

 

“나이 들수록 우리는 일을 통해 공동체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느껴야 합니다. 함께 어울리는 소속감도 매우 중요하지요.

공부는 스스로가 얼마나 무지했던가를 깨닫게 만드는 ‘자기 구제’의 핵심입니다. 일, 참여, 공부… 이 3가지를 통해 삶은

단 시간 내에 충만해질 수 있어요.”

 

-모든 것에서 찬란함을 재발견하는 것이 진정한 성장이라면,

선생은 노인과 어린아이 중 어떤 시기를 택해 살고 싶으세요?

 

“노인의 지혜를 가진 어린아이로 살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유년은 실제 상태가 아니라 정신적 기질입니다.

다시 젊어지지 못해도, 탐구와 관찰의 정신을 유지하면 굳어버린 삶에 맞서서 경탄의 태도를 가질 수 있죠.”

 

-어떻게 교육해야 다음 세대에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요?

 

“교육자의 첫 번째 모토는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끌려가지 말고,

그들을 리드하고 실수와 환상을 바로잡아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다음 세대에게 희열을 넘겨줄 수 있을 만큼, 생을 충분히 사랑해야죠.”

 

-노년에도 깊이 사랑할 수 있을까요? 그 사랑의 방식은 젊을 때와는 다릅니까?

 

“변하는 것은 당신을 바라보는 타인들의 시선입니다.

당신은 알고 있어요. 스스로가 여전히 활기찬 남성 혹은 여성이고, 사랑에 빠질 준비도 돼 있다는 걸.

인간의 욕망이란 시간이 지난다고 약해지는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단지 당신이 욕망을 표현하는 것을 부끄러워할 뿐이죠.”

 

-성의 반대는 금욕이 아니라 생의 피곤함이라고 했는데요. 선생만의 건강 관리 비법이 있나요?

 

“달리고 등산하고 건강하게 먹으면서 술은 자제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최대한 자주 사랑을 나누려고 하죠.”

 

-젊은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늙은이에게 꼭 필요한 것은 또 무엇인가요?

 

“사랑, 건강, 그리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추구할 욕망.”

 

-책과 친구와 여행 중에서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나요?

 

“책을 선택하고 그다음이 친구와 여행 가는 것입니다.”

 

-물려받은 재능 중 어떤 것이 감사한가요?

 

“성실함, 책과 예술에 대한 호기심, 겸손함과 존경심을 물려받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행복한 노화는 절대 평화로울 수 없습니다."/©JF PAGA

 

-’우리는 상처받았지만 충만했고, 악몽을 관통했고 보물을 받았다. 당연히 받았어야 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 터무니없는 은총이 감사하다…' 엔딩 문장에 감동받았습니다. 이 소박하고 강렬한 결론은 어떻게 나왔습니까?

 

“완벽한 구조는 절대 한 번에 만들어지지 않아요. 무수히 많은 반복과 노력, 유사한 문장들이 있었습니다.”

 

-선생의 바램대로, 우리 세대는 ‘평화롭고 행복한 노년’을 가질 수 있을까요?

 

“행복한 노화는 절대 평화로울 수 없습니다.

대신 놀라움과 발견의 연장 선상에서 역동적이고 요란스럽고 또 풍족해야 합니다.

평화란 RIP(rest in peace)란 유명한 어구처럼 제일 마지막에 찾아올 거니까요.”

 

-마지막으로 언젠가 당신의 묘비에 새길 문장을 말씀해주시죠.

 

“I loved life, it rewarded me a hundredfold(나는 인생을 사랑했고, 인생은 나에게 백배로 갚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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