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배달된 詩 한 토막
13.04.15 旅 風
그 꽃 / 고 은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어느 날, 복지회관 서예반 옆짝(7호선 2번 출구)이 솜씨 좋게 그린 예쁜 매화꽃 그림 옆에
붓글씨로 詩를 써서 편지봉투에 넣어 집으로 보내 왔다.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일을 접하고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난데 없이 겪게 된 이 갑작스런 돌발이
왠지 싫지 않고 좋게만 느껴져 왔다.
하얗게 고운 화선지 한 구석,
검갈색 가지가 뻗어나와
진분홍빛 탐스런 매화를 피어 내고
바로 그 옆 자리에,
밤새 내린 눈처럼 살포시 앉아 있는,
詩語들의 은밀한 아름다움.
순간 마음이 따뜻해지며 사는 게 이렇게도 순식간에 유쾌해 질 수 있음을 제대로 실감하면서
잔잔한 감동에 빠져 들어 몸 전체가 떨리어 왔다.
별다르게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그냥 가다 오다 스쳐 지나가는 日常의 他人으로만 여겨 왔던 복지회관
그 옆짝이 어떻게 이런 놀라운 생각을 할 수가 있었을까.
그리고 또 그 생각을 실천으로 옮겨, 별로 친할 것도 없이 고작 일주일에 한번 붓글씨 시간에 만날 뿐,
달리 볼 일도 별로 없는 복지회관 옆짝에게,
우편배달된 편지봉투 하나로 이렇게도 진한 삶의 감동을 전하여 줄 수 있다는 말인가.
그의 이 놀랍고도 신선한 발상에 한없는 감탄 과 존경을 금할 수가 없다.
그가 까닭도 이유도 모르게 아무도 아닌 남에게 망설임도 없이 보여주는 이 커다란 삶의 여유가
도대체 어디에서 생겨 났을까. 타고난 성품에서 비롯됨인가, 아니면 길고 긴 인생의 행로에서 수많은 인고의
담금질을 통해 빚어낸 보석같은 자기수양의 결과물인가!
다른 한편으론, 무감각, 무채색 일변도로 아무런 감흥도 열정도 없이 밋밋하게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의
삶의 모습이 한 순간에 대비되면서 부끄러움과 곤혹스러움에 한참 동안을 혼자서 힘들어 해야 하였다.
인생살이의 애틋한 낭만과 살아가며 어울리며 주고 받는
가슴 벅찬 감동의 메아리들은 지난 세월속에서만 존재하는 아득한 추억인양 생각되고,
이제 와서는 그 추억마저도 희미해져 가는 원망스러운 현실이 요즈음의 세상 물정이다.
너와 나 사이의 훈훈한 인정은 어느새 메말라 버리고,
오로지 편갈라지고 도식화된 물질주의 만능의 인간관계 소용돌이속에서,
무너져 가는 자신의 존재감을 복원해 보고자 허둥지둥 애달아 좇아가는,
정체성을 잃어버린 거품같은 인생살이의 연속과 반복이 지금의 일상이다.
그저 세상의 흐름에 마냥 따라 갈 수 밖에 없는 무력감을 피할 수 없어
표정마저 어눌하게 굳어가는 상실의 시간 속에
스스로 망연자실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현재의 삶의 모습 아닌가.
자신도 모르게 도움의 손길을 찾으려 하늘도 쳐다 보게 되고 주위도 두리번거리면서
애태우고 있는 이 난망스런 와중에,
마치 잘 익은 감홍시 떨어지듯 복지회관 서예반 옆짝이 보내준 詩 한 토막의 우편물이
천군만마의 원군이 되어 잃어버렸던 삶의 생기를 일순간에 다시 회복시켜 주었다.
자신의 우물 속에만 갇혀 살아 온 지난 세월의 내 어리석음을
부드럽게 깨우쳐 주며 잊고 지내왔던 인심어린 감동의 여운을
길게 전해 준다.
무슨 깊은 속 뜻을 가지고 詩 한 首의 우편물을 선물로 보내주어
마음 속 깊이 감동의 메아리를 울려 주는지 알지 못하지만,
말없이 큰 德을 베풀어 준 복지회관 서예반 옆짝에게
감사와 존경의 멧세지를 아낌없이 띄워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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