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와 평강

축복의 사자성어 '에벤에셀'

여풍2 2021. 1. 26. 15:42

비밀의 말씀들(01) “에벤에셀, 도움의 돌”

 

찬송가 284장입니다. 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 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 하리라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은 사자성어는 만사형통의 축복입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무슨 사건을 대하든지, 무슨 이유가 있든지 여러분의 결국과 결말은

만사형통의 축복이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말씀 사무엘상 7장 12절입니다.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그런데 여기 또 하나의 우리에게 하나님의 축복된 사자성어 하나가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에벤에셀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가진 성경에 에벤에셀 앞에 숫자 1)이 붙어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도움의 돌, 이라는 뜻입니다. 아멘입니다.

새해 시작과 함께 여러분에게 또 하나 드리고 싶은 축복의 사자성어는 에벤에셀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그 놀라운 고백이 터져 나오는 새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새해를 시작하면서 다시 말씀을 준비하면서 어떤 말씀으로 여러분에게 전할까 오랜 시간 고민하다가

오늘 매 주일마다 큰 주제인 시크릿 워드, 비밀의 말씀들이라는 큰 주제 타이틀을 정했습니다.

왜 비밀의 말씀들로 정했겠습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읽어 가다 보면 오늘 말씀처럼 숫자가 붙어 있는 장면들이 등장을 합니다. 그리고 그 숫자 밑에 그 의미,

그 뜻을 해석해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지나치면, 그냥 넘어가면 모르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숫자 앞에 멈추어서 살펴보면 그 말씀의 의미와 뜻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바로 이렇게 비밀의 말씀들을 성경 곳곳에 숨겨 놓았다는 것입니다.

시크릿 워드를 성경 처음시작인 창세기부터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 사이사이에 새겨 놓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그 첫번째 비밀의 말씀이자 축복의 사자성어인 에벤에셀에 대해 살펴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도움의 돌, 에벤에셀이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부터 성경을 여러분이 잘 따라 오셔야 합니다.

순간 딴 생각하시면 엉뚱한 곳에서 헤매실 수 있기 때문에 찬찬히 잘 따라 오셔야 합니다.

 

사무엘상 4장 1, 2절입니다. 여기에 처음으로 에벤에셀이 등장을 하는 장면입니다.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에 진 쳤더니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전열을 벌이니라 그 둘이 싸우다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패하여 그들에게 전쟁에서 죽임을 당한 군사가 사천 명 가량이라

 

여기 첫번째 에벤에셀이라는 지명이 등장을 합니다.

그런데 에벤에셀의 뜻이 무엇이었습니까? 도움의 돌,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뜻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지금 사무엘상 4장 첫 장면, 처음 등장했던 에벤에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그마치 4천 명의 사람들이 그 전쟁으로 죽임을 당하였다는 것입니다.

아니, 어떻게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는데, 블레셋과 전쟁에서 패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멘붕이 찾아 온 것입니다.

 

3절입니다.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어떻게 패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멘붕이 찾아 온 것입니다.

어찌하여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던 에벤에셀에서 우리가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패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다시 한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언약궤, 그러니까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자 하나님의 두 돌판인 십계명이 담겨 있는 언약궤를

블레셋과의 전쟁 가운데 가지고 나오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을 전쟁터에 가지고 나왔으니까, 이제는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라 확신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계속해서 사무엘상 4장 21, 22절입니다.

 

이르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고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그의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었기 때문이며 또 이르기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였더라

 

하나님의 언약궤를 빼앗겨 버린 것입니다.

분명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를 가지고 블레셋과의 전쟁에 나가면 이길 줄 알았습니다.

승리할 줄 알았습니다. 에벤에셀,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와서 이기게 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도리어 하나님의 언약궤가 빼앗겨 버렸고,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나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가봇, 여러분 성경의 숫자 1) 밑에 무어라고 적혀 있습니까?

영광이 없다 함, 이라고 적혀 있지 않습니까? 이가봇,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나 버렸다는 것입니다.

너무 슬픈 이야기 아닙니까? 너무 비참한 이야기 아닙니까?

우리가 오늘 이렇게 예수를 믿고, 우리가 이렇게 신앙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다.

내가 이렇게 신앙 생활을 하는 이유, 내가 믿음의 길을 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회를 위해서입니까? 여기 목회자의 얼굴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고, 그 부르심에 따라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 보려고

이 길을 여러분이 들어오셨습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여러분이 살겠다고 이 자리에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에게 이가봇,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 버린 다면,

하나님의 영광이 더 이상 우리와 함께 하지 않는다면 이 보다 더 슬픈 이야기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제가 아는 후배의 wife가 종종 페이스북에 자신의 일상을 담아 올리곤 합니다.

언젠가 그런 일상을 담아 올렸습니다. 아이들과 새벽 예배를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눈이 번쩍 뜨게 하는 차량을 만난 것입니다. 속도를 내며 달리는 그 차는 트럭이었습니다.

그리고 트럭 뒷 편에 이런 상호의 글 귀가 큼직막하게 적혀 있더라는 것입니다. 

믿음철거, 사업장이나 상가의 철거를 맡아서 일하시는 분의 상호를 트럭에 새겨 놓았는데

믿음철거, 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들 녀석이 그러는 것입니다.

"믿음을 철거한대요.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어요. 근데 어떤 식으로 철거할까요?”

그러면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믿음철거의 주제를 가지고 열띤 토론을 했다는 글을 올린 것입니다.

맞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철거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이가봇하면,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면 우리의 믿음 역시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하고,

무너지고 철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교회에 이가봇,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 버리고 믿음이 철거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의 가정이 이가봇,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 버리고 믿음이 철거가 된다면

그 가정은 도대체 어떤 가정이겠습니까? 우리의 인생에 이가봇,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 버리고

믿음이 철거된다면 그 인생이 어찌 제대로 된 인생이겠습니까?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서 교회 가는 길이었답니다.

교회 가는 길을 한참을 달리다가 주유소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주유소에는 믿음철거와  아주 대조적인

간판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믿음가득,

아들 녀석이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엄마, 우리 믿음 가득 넣으러 저기로 가요"

그러기에 우리의 믿음 철거하지 마시고, 우리의 믿음 가득 채우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빼앗겨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가봇,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무엘상 5장은 그렇게  블레셋  땅으로

하나님의 언약궤가 빼앗겨 버리고 이리저리 블레셋 땅을 전전하는 이야기가 사무엘상 5장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아주 재미난 이야기가 진행이 됩니다. 1절부터 4절까지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가지고 에벤에셀에서부터 아스돗에 이르니라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서 다곤 곁에 두었더니

아스돗 사람들이 이튿날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는지라

그들이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웠더니

그 이튿날 아침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또다시 엎드러져 얼굴이 땅에 닿았고

그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뚱이만 남았더라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블레셋 사람들이 섬기는 다곤이라는 신이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서 얼굴이 땅에 처 박혀 있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궤 밑에서 만신창이가 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걸려 있고,

몸뚱이만 애처롭게 남아 있더라는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결국 에벤에셀,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계시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에벤에셀, 하나님께서 승리하시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자신들이 믿고 의지하는 신이 처참하게 뭉개진 모습에 무서움을 느끼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6, 7절입니다.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하사 독한 종기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역을 쳐서 망하게 하니

아스돗 사람들이 이를 보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와 함께 있지 못하게 할지라 그의 손이 우리와

우리 신 다곤을 친다 하고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에벤에셀의 하나님께서 독한 종기의 재앙을 내리시더라는 것입니다.

어안이 벙벙했을 것입니다. 할말을 잃어 버렸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블레셋 사람들이 경험하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함부로 가져다 놓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제 사무엘상 6장 1, 2절입니다.

 

여호와의 궤가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 있은 지 일곱 달이라 블레셋 사람들이 제사장들과 복술자들을 불러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의 궤를 어떻게 할까 그것을 어떻게 그 있던 곳으로 보낼 것인지 우리에게 가르치라

 

칠 개월 동안 하나님의 언약궤가 블레셋 땅에 있음으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블레셋 사람들이 두려움에 쌓인 것입니다. 무서움에 쌓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더 이상 이곳에 가져다

모실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궤를 이스라엘로 돌려 보낸 이야기가 6장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제 7장으로 넘어오면서 2절은 이렇게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바로 20년 동안 하나님의 언약궤가 기럇여아림이라는 곳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고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더 간절히 여호와를 사모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처음 에벤에셀이 등장했던 사무엘상 4장부터 오늘 사무엘상 7장까지의 시간이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는 것입니까? 20년의 시간이 흘렀다는 것입니다.

20년의 시간 동안 이가봇,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고, 하나님의 언약궤가 빼앗겼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언약궤가 블레셋 땅에서 블레셋 사람들이 섬기는 다곤 신상을 산산이 부수어 버리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더 이상 그 무시무시한 하나님의 언약궤를 블레셋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 수가 없어서 결국 이스라엘 땅으로 돌려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 20년이 흘렀습니다.

그 이야기가 지금 전체적인 4장과 5장과 6장의 이야기였다는 것입니다.

 

다시 사무엘상 7장 12, 13절입니다.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에벤에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블레셋에서 도우셨다는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굴복시키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막으셨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 일을 잊지 않기 위해 돌 하나를 세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돌을 가져다가 이름을 지어 주었는데 에벤에셀, 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에벤, 이라는 뜻은 바위, 돌이라는 뜻이고 에셀이라는 뜻은 도움, 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에벤에셀, 도움의 돌이라는 뜻의 이름을 지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무엘상 4장에 처음 등장했던 에벤에셀의 뜻도 도움의 돌, 이었다면

여기 7장에 등장하는 에벤에셀도 같은 뜻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분명 사무엘상 4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돕지 않았습니다.

분명 에벤에셀에 진을 치고 블레셋과 전쟁을 치렀습니다. 분명 이길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 도와주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전쟁에 패했습니다.

급기야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를 가지고 전쟁에 임했습니다. 그런데도 패했습니다.

이가봇,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버리고 믿음이 철거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다 무너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다 희망이 없어 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이 에벤에셀, 돕지 않았습니까?

아닙니다. 블레셋 땅에서 하나님은 블레셋 사람들이 섬기고 있던 다곤 신상의 얼굴을 땅에 처 박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머리와 두 손목을 잘라 버리고, 몸뚱아리만 남게 해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전히

도움의 일을 행하시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무엘상 7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눈에 보이게 승리케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4장에 에벤에셀로 도움을 보이지 않던 하나님께서

사무엘상 7장에서 에벤에셀로 도움을 보여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고 유명한 이야기 하나가 있지 않습니까?

모래 위의 발자국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한 사람이 꿈을 꾸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바닷가 모래 위를 걷는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래 위에는 두 개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주님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발자국의 모습에서 자신의 인생을 파노라마처럼 보게 됩니다.

순간순간 시간시간마다 주님께서 자신과 함께 거닐고 있던 발자국을 바라보면서 기쁘고, 감사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렇게 두 발자국은 그 바닷가를 다정하게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두 발자국은 하나의 발자국으로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은 자신에게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었습니다. 너무 버겁고 고달픈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주님은 자신과 함께 걷지 아니하시고,

오로지 자신 혼자 꾸역꾸역 발자국을 남기며 걷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보십시오.

도대체 그 힘들고, 버거운 시간에 주님은 어디 계신 것입니까? 왜 저 혼자 이 길을 걷게 하신 것입니까?

 

주님은 그런 그에게 말합니다.

나는 너를 사랑했고, 너를 결코 떠나지 않았단다.

너의 슬픔의 시간, 너의 시련의 시간에 네가 보았던 그 한 발자국은

너의 발자국이 아니라 나의 발자국이란다. 나는 너를 그 때 업고 갔었단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을 돌아보니, 저 바닷가에 앉아서 새겨보고 있자니

그 모든 순간이 우리 주님의 도우심의 시간이었다는 것입니다.

에벤에셀, 맞습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 인생 거기까지 함께 하셨고, 도우셨다는 것입니다.

에벤에셀,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 인생의 모든 순간순간에 우리를 업고 가셨다는 것입니다.

모래 위의 발자국 역시 그 모든 순간과 시간이 우리 주님의 에벤에셀의 시간, 도움의 시간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비밀의 말씀, 시크릿 워드가 우리에게 첫번째로 말하는 것 역시

하나님의 도우심이, 하나님의 도움의 돌이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의 축복과 같이

새해 새로 시작하는 이 모든 날들이 여러분에게도 에벤에셀의 축복의 사자성어로

여기까지 하나님께서 도우심을 받았다고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축복을 하는 것입니다.

[옮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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