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가니니는 바이올린 명인이었을 뿐 아니라 비올라와 기타에도 일가견이 있었던 이탈리아 작곡가로, 무엇보다 바이올린 테크닉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인물로 묘사된다. 더러 그의 작품들이 현란한 기교 때문에 감동이 적고 관현악도 미숙하다고 폄하되기도 하나 내가 오래 들어본 바로는 파가니니가 내재가치에 비해 전반적으로 많이 저평가된 상태라고 생각한다. 그가 남긴 바이올린 협주곡들의 경우, 오케스트레이션이 다소 엉성할지는 모르겠지만 독주만 들어도 충분히 들을 가치가 있다고 믿어진다. 이만큼 화려하면서도 서정적이고 선율미가 유창한 협주곡이 결코 흔치 않다. 자신만이 연주할 수 있는 초절기교의 곡을 직접 만들어 연주하면서 남들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솜씨를 과시하다 보니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실력을 얻었다는 소문이 나면서 ‘악마’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고, 주로 교회를 중심으로 파가니니를 경계하고 배척하는 무리들이 있었다고 한다. 파가니니 당시의 연주회 감상평 중 “우리 모두는 숨을 죽인 채 귀를 기울였으며, 두근두근 심장이 뛰는 소리조차 귀에 거슬렸다. 그것은 신성하고도 악마적인 열기였다”, “파가니니의 연주는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온몸이 얼어붙은 듯 움직일 수 없었고, 나는 숨을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이 놀라운 음악가의 출현으로 얼마나 많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자살하고픈 유혹에 시달렸을지 상상하기 두렵다”는 문구들이 보인다. 파가니니는 이러한 특출한 재능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과시함으로써 개성을 중요시하는 비르투오소의 시대, 더 나아가 낭만주의의 길을 열었으며, 후대의 수많은 작곡가들에게 영감을 제공했다는 평을 얻었다. 파가니니는 약 10곡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제2차 세계대전까지는 제1, 2번만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전쟁 후에 4곡이 더 발견되어 현재 제6번까지 있다.
제1번은 화려하고 낭만성이 풍부한 선율로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들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유투브에 어린 시절의 사라 장이 주빈 메타와 협연한 이 곡의 동영상이 있는데 곡의 아름다움에 취하고 꼬마 천재의 신기에 경탄하게 된다.
제2번은 제3악장이 가장 유명하지만 애상이 깃든 제2악장 등 전곡이 다 괜찮다. 파가니니를 흠모한 리스트는 이 제2번의 마지막 악장(제3악장)을 피아노곡으로 편곡했는데 이게 바로 ‘라 캄파넬라(La Campanella)’라고 불리는 유명한 피아노곡으로 총 6곡 구성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대연습곡’ 중 제3번이다. ‘라 캄파넬라’는 ‘종소리’라는 뜻으로, 아마도 바이올린 원곡보다 피아노곡이 더 유명하지 싶다. 제3번과 제4번도 역시 멋진 곡이나 파가니니 사후 한 세기가 넘도록 잊혀졌다가 제3번은 1960년대 후반에 재발견되어 헨릭 셰링에 의해 1971년 연주되며 다시 세상에 나왔고, 제4번은 1954년 아르투르 그뤼미오에 의해 재초연 되었다고 한다. 두 곡 모두 전형적인 파가니니의 특색이 느껴지는데 화려하고 서정적이며 유려하다.
제5번은 바이올린 솔로 부분만 발견되어 원래 관현악 파트가 작곡되지 않았는지 또는 작곡은 되었는데 악보가 없어진 건지 알 수 없다고 한다. 몸펠리오라는 음악가가 관현악 부분을 보충하여 1959년 성공적으로 초연되었다는데, 제3악장에서 제2번 제3악장에서의 ‘라 캄파넬라’ 선율이 다시 등장하는 게 인상적이다. 제3악장의 유창한 선율이 퍽 매력적이다. 제6번은 근래에 발견되었는데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지금까지 발견된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들 중 가장 먼저 만들어진 작품이라 한다. 화려하고 격정적이며 분방한 제1악장과 서정적인 제2악장, 폴로네이즈 리듬이 구사되어 생기발랄한 제3악장으로 구성되는데 특히 제3악장은 한번 들으면 금방 기억될 정도로 중독성이 높은 선율이다. 어디까지가 파가니니의 오리지널 창작이고 후대의 가필이 어느 정도 들어갔는지 모르겠으나 바이올린 독주 부분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집에 살바토레 아카르도가 샤를르 뒤뜨와 지휘의 런던 필하모닉과 협연한 음반이 있는데 아름답고 변화무쌍하며 오감을 자극하는 연주에 들을 때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파가니니 작품 중 그랜드 콘체르토(Grand Concerto for violin and guitar)라고 표시된 곡이 있는데 제6번과 같은 작품이다.
파가니니의 6개 바이올린 협주곡들을 오랜 세월에 걸쳐 여러 번 들어본 지금, 파가니니가 기교만 앞세운 저급한 음악가는 결코 아니었다고 믿는다. 덜 사색적일지는 몰라도 소위 ‘로망스’가 있다. 파가니니가 1840년 사망했는데 그가 악마와 관계있다는 풍문 때문에 고향 제노바에서 매장을 거부하여 사후 36년이나 지난 1876년에야 겨우 제노바 인근의 파르마에 묻힐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수모를 겪은 파가니니였건만 많은 세월이 흐른 현재에 와서는, 고향 제노바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두 아들 중 한 명이 되어 있다고 한다. 다른 한 명은 너무나 유명한 콜럼버스... 제노바 시청 로비에는 방탄유리 속에 파가니니가 쓰던 1742년산 과르네리 바이올린이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다는데, 늦은 감은 있으나 오늘날 파가니니가 고향땅으로부터 제대로 대접을 받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평생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인물들에 대한 무리한 적폐수사와 악의적 망신주기로 나라 꼬라지가 엉망인 이 아침에 나는 이렇게 음악만 듣고 있으면 되는지 심기가 몹시도 불편하다... [옮긴글] 파가니니 :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 중 제1악장(일부분) 파가니니 : 바이올린 협주곡 제2번 중 제3악장 파가니니 : 바이올린 협주곡 제5번 중 제3악장 파가니니 : 바이올린 협주곡 제6번 중 제3악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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