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만상

Le Temps Des Cerises (버찌의 계절)

여풍2 2015. 3. 26. 06:52



 

Yves Montand


Le Temps Des Cerises



Le Temps Des Cerises (버찌의 계절)
- Yves Montand

Paroles:Jean-Baptiste Clement
Musique:Antoine Renard

1
Quand nous en serons au temps des cerises,
Et gai rossignol et merle moqueur
Seront tous en fête.
Les belles auront la folie en tête
Et les amoureux du soleil au coeur.
Quand nous en serons au temps des cerises,
Sifflera bien mieux le merle moqueur.
2
Mais il est bien court, le temps des cerises,
Où l'on s'en va deux cueillir en rêvant
Des pendants d'oreilles.
Cerises d'amour aux robes pareilles
Tombant sous la feuille en gouttes de sang.
Mais il est bien court le temps des cerises,
Pendants de corail qu'on cueille en rêvant.
3
Quand vous en serez au temps des cerises,
Si vous avez peur des chagrins d'amour
Evitez les belles.
Moi qui ne crains pas les peines cruelles,
Je ne vivrai pas sans souffrir un jour.
Quand vous en serez au temps des cerises,
Vous aurez aussi des peines d'amour.
4
J'aimerai toujours le temps des cerises :
C'est de ce temps-là que je garde au coeur
Une plaie ouverte,
Et dame Fortune, en m'étant offerte,
Ne pourra jamais fermer ma douleur.
J'aimerai toujours le temps des cerises
Et le souvenir que je garde au coeur.


버찌가 익을 무렵
작사: 장-바티스트 클레망
작곡: 앙투안느 르나르
1
버찌가 익을 무렵이면
쾌활한 나이팅게일과 개똥지빠귀는
신이나 흥겨워지고,
아름다운 아가씨들의 가슴은 터질듯 부풀고
연인들의 가슴은 뜨거워지네
버찌가 익을 무렵이면
개똥지빠귀의 지저귐은 더 한층 높아만 가네
2
하지만, 버찌의 시기는 짧고
둘이 함께 꿈꾸며
귀걸이를 따러가는 계절은
꼭같은 옷을 입은 사랑의 버찌가
핏방울처럼 나뭇잎 그늘에 떨어지네
허나, 버찌가 익을 무렵은 짧아,
꿈꾸며 산호색 귀걸이를 따는 계절은.
3
사랑의 상처가 두렵다면
아름다운 아가씨를 피하고
비참한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는 나는
매일 고통 속에서 살아가네
버찌가 익을 무렵엔
당신도 역시 사랑의 괴로움에 빠지겠지
4
난 언제까지나 버찌가 익을 무렵을 사랑하리
그 때부터 내 마음 속엔
아물지 않는 상처가 있어
행운의 여신이 나에게 온다 하더라도
이 아픔을 달랠 수는 없겠지
난 언제까지나 버찌가 익을 무렵을 사랑하리
마음 속의 그 추억과 함께



Le Temps Des Cerises (버찌의 계절)

'버찌가 익을 무렵'은 파리 코뮌(Paris Commune)과 관계된 노래입니다.
이 샹송의 작사자인 장 바티스트 클레망(Jean-Baptiste Clement)은
코뮌의 지도자였고요. 이 노래를 그냥 들으면,
마냥 감미로운 사랑의 노래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 노래에는
파리코뮌의 가슴 아프고도 처절한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파리코뮌은 1871년 노동자, 소시민이 중심이 되어 권력을 잡아 수립한
세계 최초의 혁명적 자치정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1871년 3월28일 파리 시청 앞에서 코뮌 성립이 선언되지만,
코뮌 평의회에는 다양한 사상을 가진 사람들로 내부 대립이 심했고,
그러한 분열이 베르사이유에 본거지를 둔 정부군의 반격의 기회를
제공하게 되기도 합니다.

5월 21일부터 28일까지의 독일의 지원을 받은 정부군에 의해
코뮌 연맹병과 일반시민의 대량학살이 행해지는데
이것은 훗날 “피의 일주일”로 기록됩니다.
(이는 마치 우리 동학군이 외국군대를 끌어들인 관군에 의해
처절하게 몰살당했던 일과도 유사합니다).

코뮌의 지도자였던 시인 클레망이 스무살 남짓한 야전병원 간호원인
루이즈(Louise)를 만난 건 퐁떼느-오-루아 거리의 바리케이트
속이었습니다. 뭔가 도울 일을 자원해 왔던 루이즈에게,
일동은 생명이 위험하니 돌아가라고 했지만
돌아가지 않고 꿋꿋하게 부상병들을 돌봅니다.
클레망은 재회를 꿈꾸며 그녀의 주소를 물었지만
결국 그것은 실현되지 않습니다.

5월 28일, 200 여명의 연맹군과 정부군의 최후의 공방전이
연맹군이 최후로 사수하고 있던 페르 라세즈 묘지에서 벌어집니다.
비석과 비석 사이로 총격과 백병전이 펼쳐지고,
드디어 147명의 연맹군이 포로로 되어 묘지의 북동쪽에 있는 벽 앞에서
전원이 총살되며 이 벽은 “연맹군의 벽”으로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코뮌의 상당히 높은 지위에 있던 클레망은 1871년 이전에 이미
삼절까지 써 놓았지만, 바리케트에서 만났던 루이즈에 감명을 받아
(사랑에 빠졌을지도 모르지만….)
마지막 소절인 4절을 덧 붙였다고 합니다.

그 4절의 “그 때부터 내 마음 속엔 / 아물지 않는 상처가 있어”는
단 2개월로 막을 내린 파리코뮌과 그 학살과
루이즈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하네요.

이 노래가 코뮌의 1년 전부터 불리어 졌다는 설도 있으니
확실한 것 알 수 없지만,
이 샹송은 다음과 같은 헌사와 함께 루이즈에게 헌정되었다고 합니다.

“1871년 5월 26일 일요일,
퐁떼느-오-루아 거리의 간호부. 용감한 시민 루이즈에게 “

"A la vaillante citoyenne Louise,
l'ambulancière de la rue
Fontaine-au-Roi le dimanche 26 mai 1871."

시민(citoyenne)이란 단어가 예사롭지 않게 다가옵니다.

(후일담: 클레망은 아슬아슬하게 탈출해 영국으로 망명을 하였고,
루이즈는 현장에서 체포되었으나 다행히
사면을 받아 풀려났다고 합니다.
이 두 남녀가 재회를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떤 낭만주의자 분들은 이 두 남녀가 비장하게 죽었어야
이 노래가 더 가슴에 와닿겠다고 말씀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 노래의 배경에는 더욱 많은 민중들의 피가 어려있기에
그 '찬란한 슬픔의 봄'은 여전합니다.
그리고..사실.. 두 남녀가 살아남은 것도 저는 정말 기쁩니다..)

이 프랑스의 국민 샹송은, 1996년 1월 8일에 행해진,
프랑스가 낳은 위대한 사회주의자
프랑수아 미테랑(François Mitterand)
대통령의 장례식 때에도 조가로 불렸습니다.
그만큼, 이 곡은 프랑스 진보주의자들에게 성가와도 같은 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