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만상

숲속의 섬

여풍2 2018. 5. 10. 07:57

        



고양시편을 마무리하면서 꼭 찾아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백마역 옆에 있었던 화사랑이라고 하는 카페이다.

1980년대에 많은 젊은이들이 신촌역에서 경의선에 몸을 실어 40분 남짓 거리에 있는 백마역에 내렸다.

백마역에서 5분 거리에 떨어진 철길 우측에 위치한 화사랑에 가기 위해서였다.

그림이 있는 사랑방이라는 의미의 화사랑이라는 이름의 이 카페는 주인장의 여동생 김애자씨가 시낭송회나 음악회 등의

다양한 예술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하므로써 많은 젊은이들의 낭만과 정신을 담는 공간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백마역을 찾게 되자 화사랑과 유사한 형태의 카페들이 하나 둘 늘어나 백마역 일대는 장흥, 강촌과 더불어

유명한 전원 카페촌으로 발전하게 된다.

 

내가 박사과정 때인 80년대 후반. 나는 문화운동을 한답시고 백마역의 화사랑을 예로 들며 주변사람들을 설득하곤 했었다.

지금도 지역에서 문화운동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예술활동의 성공 모델로 화사랑에 대한 아련한 동경을 가지고 있다.

마침 일산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친한 친구가 화사랑에 대하여 잘 알고 있어 친구의 부인과 함께 화사랑을 이끌어 온

김애자씨를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일산 풍동 애니골 입구에 있는 숲속의 섬이라는 카페가 그녀가 있는 곳이었다.

벚꽃이 운치있게 흩날리는 진입로 안쪽으로 아담한 단층짜리 벽돌조 건물이 그림처럼 다가온다. 담쟁이로 휘감겨진 건물의

외관과 함께 인테리어도 마치 80년대에 와 있는 듯 질박함이 나를 사로잡는다.

69세라고는 믿기지 않게 단아한 모습의 그녀는자신이 운영해 온 카페 변천사를 내게 전해주었다.

화사랑에서 시작하여 썩은 사과’, ‘초록 언덕’, ‘’, 그리고 지금의 숲속의 섬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화사랑을 시작하면서

이후로 많은 카페들이 백마역에 들어서게 한 장본인이었다.

이후 백마역에서 2km 떨어진 위치에 상수리나무들과 우사들만 위치한 허허벌판에

1987년부터 숲속의 섬카페를 다시 시작하였다.

그곳에서도 논둑길로 연결되는 열악한 접근로를 마다않고 그 카페를 좋아했던 사람들이 다시 몰려들었다.

92년부터는 현재의 건물로 이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또 다시 그 주위로 하나 둘 다른 카페들이 들어서면서

현재의 풍동 애니골 테마마을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카페 안에는 그녀가 가장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는 60여권의 방명록이 있다.

세월의 때가 잔뜩 뭍은 이 방명록에는 80년 화사랑에서부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곳을 즐겨 찾았던

유명한 시인과 정치인 등 많은 저명인사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안쪽에는 오래된 풍금과 업라이트 피아노, 심지어 그랜드 피아노까지 놓여 있다. 여러 대학의 학생들이 이곳에서

오랜 기간 동안 시낭송회를 이어오고 수많은 음악인들이 이곳을 거쳐 갔던 장소임을 알 수 있다.

성악을 하는 나도 동료들과 함께 저 그랜드 피아노에 맞추어 이곳에서 작은 음악회를 한 번 했으면 하는 충동이 든다.

메뉴판에 씌어 있는 'since 1980'의 글귀처럼 화사랑, 아니 숲속의 섬 역사에 나도 하루쯤 넣어보고 싶다.

(경향신문 <윤희철의 건축스케치> 2018.5.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