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만상

[삶, 쉼 그리고 쉼] 지치고 상처난 마음을 치유하다

여풍2 2014. 8. 22. 08:58


류영재作, <솔숲-경주에서 3>, 2014, 장지에 아크릴물감, 110X50㎝

류영재作, <솔숲-경주에서 3>, 2014, 장지에 아크릴물감, 110X50㎝

 

박해강作, <정상에서>, 2014, oil on canvas, 91X116㎝

박해강作, <정상에서>, 2014, oil on canvas, 91X116㎝

 

송상헌作, <Sound-꽃피다>, 2014, mixed media, 91X116.8㎝

송상헌作,[Sound-꽃피다] , 2014, mixed media, 91X116.8㎝


김완作, <Light and color>, 2012, mixed media, 72X144㎝

김완作, [Light and color], 2012, mixed media, 72X144㎝


홍화식作, <Relation>, 2010, Korean paper mixed media, 98X163㎝

홍화식作, [Relation], 2010, Korean paper mixed media, 98X163㎝

포스코갤러리[삶, 쉼 그리고 쉼] 지치고 상처난 마음을 치유하다

8월 14일~9월 30일

김완·홍화식·류영재·송상헌·박해강 참여

새로운 질감으로 현실과 가상의 사이 표현

소나무에 삶의 질곡 담고 유화로 감성 자극

다양한 작품 통해 관람객 심리치유 돕기도

 

“만일 세상이 좀 더 따뜻한 곳이라면

우리는 예쁜 예술작품에 이렇게까지 감동하지 않을 테고, 그런 작품이 그리 필요하지도 않을 것이다.

예술적 경험의 가장 이상한 특징 중 하나는 가끔 눈물을 흘리게 할 정도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의 힘이다.

그런 순간은 특별히 우아하고 사랑스러워 보는 즉시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작품과 마주칠 때 찾아온다.

아름다움에 격렬히 반응하는 이 특별한 순간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극복에너지가 관람객에 전이되길 희망


한국인에게 인기 있는 스위스 출신 영국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저서 《영혼의 미술관》에서 인간의 고단한 삶을 보듬어 치유하는 예술의 기능을

엄선한 140여 점의 작품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그는 예술이 ‘고통을 더욱 잘 견디는 법’을 가르쳐주고,

 ‘내가 누구인지를 이해한 뒤 타인과 소통하는 능력’을 키워주고,

‘파악하기 어려운 일상의 진정한 가치’에 경의를 표하게 해준다고 말한다.

 

포스코갤러리의 기획초대전 <삶, 쉼 그리고 쉼>은

이 여름 힘들고 지친 우리 마음을 치유해줄 ‘영혼의 미술관’이다.

자신만의 명확한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다섯 명의 중견작가가

작품에 반영된 삶의 에너지를 전달함으로써 

 현대인의 지친 일상에 휴식을 통한 힘이 되어주고자 한다는 전시 취지가

알랭 드 보통이 설명하는 예술의 존재 이유와 정확히 일치한다.

 

누구의 말이나 설명을 빌리지 않아도

어쩌면 당연한 예술의 기능이 각별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예술을 향유하기가 쉽지 않은 환경 때문이다.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예쁜 그림을 감상하는 일이

삶과 사회의 긴급하고 중요한 문제들에 무관심하고, 

 부조리를 비판하거나 경계할 줄도 모르는 것처럼 비춰질까봐 눈치 보이고,

실제 제재가 가해지기도 하다 보니 예술을 삶 속에 마음껏 들여놓기가 쉽지 않다.      

 

예술이 그렇게 불완전하고 미숙한 것이라면

우리는 무엇으로 삶의 우울과 고통을 치유할 수 있을까?

이번 전시회에 참여한 다섯 작가는 서슴없이 대답한다.  

 

“예술가는 직관을 통해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적인 것으로 전환하여 무의식과 대면하며,

생각과 감정, 표출되지 않는 사고를 표현해내는 다양한 작품활동을 통해 치유를 경험한다.

이러한 미술치유 과정의 이미지를 드러내면 관람자에게도 똑같이 치유가 전이되고

소통하여 동일한 고통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여 작가들은 작품과 작품활동에서 생성된 극복에너지로

관람객이 치유를 넘어 ‘심리적 안녕’을 누릴 수 있기를 희망한다.

 

 

 

골판지 자르고 한지 뜯어 새로운 질감으로


화가 김완의 작업은 ‘상처’로 압축된다.

칼질로 만든 종이의 상처 난 단면들로 출발해

상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만지고, 쓰다듬고,

아름답게 혹은 깊이 있게 승화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다.

칼로 자른 골판지의 단면을

세밀하게 이어 붙여 회화 매체를 만들면

독립된 ‘선’이던 골판지 단면이 모여서 ‘면’이 되고,

여기에 각기 다른 색을 반복해서 입히거나 칠하면

‘빛의 회화’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의 작품에서

빛은 시각적으로 재현하는 페인팅이 아닌

촉각적인 대상이다.

수많은 직선이 켜켜이 층을 이루고 있는 단단한 조직은

거친 재질과 풍부한 색감으로 독특한 개성을 표현한다.

개성의 비결은 바로 상처다.

골판지에 상처(절단) 낼 때 생기는 얇은 단면들을

마치 섬유조직을 다루듯 쌓아 바탕면을 구축하는데,

복잡한 듯 단순한 이 반복과정이

예술적 깊이와 개성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넓이는 없고 길이만 있는 수많은 선이 모여

면적을 이루는 동안

긴 시간은 작품 속에 촘촘히 각인된다.

스스로 ‘삶의 고통과 상처’라고 이름 붙인

선들을 모으고 쌓으면서 화가는

맞으면서 오르가슴을 느끼는 변태처럼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인생은 크고 작은 상처로 얼룩지고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한다.

하지만 생채기 난 선들이 모여 아름다운 면과 색,

공간으로 거듭나고 급기야 기도와도 같은 선(禪)의 경지로 승화되어

선(善)한 사랑으로 치유되듯 상처는 상처로 극복된다.”

 

한지에 먹을 입혀 붙이고

다시 날카로운 핀으로 하나하나 뜯어

재료의 속을 드러내는 기법으로 

 허상과 실상의 경계 사이에 새로운 존재가 드러나게 하는

화가 홍화식은 ‘릴레이션 (Relation)’ 립(lip) 시리즈를 전시한다.

우리는 가상의 이미지를 실재로 인식하고 느끼는 데 길들여져 있다.

 

그의 그림들은

실재하지 않는 그림과 그려지는 재료의 관계,

주는 것과 받는 것의 관계, 

 무거움과 가벼움의 관계들 사이에 존재한다.

스스로 ‘쟁기질 기법’이라 부르는 방법으로

표면이 뜯겨 부풀어 오른 한지는

새로운 질감으로 거듭나 

 입술이라는 실재하는 추상을 보여준다.  

 

“그려진 그림을 재료의 특성에 맞게

해체시키고 재환원시켜

실상과 가상 사이에서 새로운 화면을 표현한다.

관념적으로 인식되어진 형상들을 표현하고

그 형상이 그려진 재료를 다시 조형성으로 바꿈으로써

애매모호한 이미지를 만든다.

이분법에서의 존재가 허구인 것이 밝혀진 후

남는 것은 오로지 이분법에서 가상이라고 불리던

현실세계뿐이다.

이 현실세계는 니체가 인정하는 유일한 실재,

즉 힘에의 의지가 작용하고 있는 세계다.”

 

화가 류영재는 20여 년간 포항과 인근 지역의 소나무를 그려왔다.

소나무를 통해 한국인의 정신을 탐구하고 진실성을 표현한다.

하지만 오랜 세월 ‘왜 소나무인가’

‘왜 서양화가이면서 캔버스 대신 한지를 사용하는가’

라는 질문을 받아오면서 ‘내 작업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라는 의문 역시 지속되어왔다. 나는 누구인가(Who am I)?

 

“솔숲은 어릴 적 놀이터였고,

한지는 겨울철 시린 바람을 막아주던 문풍지였으며,

쇠꼴을 베러 다니던 고향 산천의 수목들이며

지푸라기와 닮은 결을 가진 내 유년의 바탕이다.

삶이 내게로 왔듯 소나무도 내게로 왔다.

예술은 그렇게 운명과 함께하는 것이다.

소나무가 뚜벅뚜벅 나를 찾았을 뿐,

나는 여전히 운명처럼 다가올 구불구불한 길이며

산더미 같은 산, 까만 바위를 덮치는 맹렬한 파도를 기다린다.“

 

이번 초대전에는

경주의 소나무(솔숲-경주에서)를 전시한다.

전통을 고수하며 소나무의 지조와 청렴을 그려내는 화가는

관람객들이 삶의 질곡을 담고 우주를 향해 팔 벌리는

소나무와 그들이 모여 이룬 솔숲,

그 사색의 오솔길을 뒷짐 지고 거닐며

모자람이 채움을 가능케 하는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조각난 장미꽃과 몽환적 우주여행


대학 졸업 후 현재까지 줄곧

‘빈자의 미학-소리에 대한 사색’을 화두로 작업해온

화가 송상헌은

캔버스에 조각난 면과 색으로 반복되는 꽃을 그려

안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인간 내면의 모습을 표현한다.

광목천을 조각내어 화면에 붙이고 대상물을 화면에 옮긴 후

두꺼운 한지를 절단하여 반복, 중첩해 붙인다.

그리고 여러 번 다양한 색을 칠한 후

돌가루를 뿌려서 화강암 같은 이미지를 만든다.

 

조각난 면과 색으로 이루어진

찔레꽃·목련·바람꽃·도라지꽃·목단·너도바람꽃 등은

파편처럼 떠돌며 동일한 패턴을 갖추기도 하고,

일정한 반복 후 모여서 다른 형상인 꽃의 개체가 되기도 한다.

꽃은 자연을 상징하는 이미지인 동시에 생명의 소리를 시각화한 것으로,

인간 내면의 소리를 통하여 삶에 대한 정서적 울림을 찾으려는

작가의 의지를 담고 있다.  

 

“‘빈자의 미학’은 삶을 대하는 하나의 방식이며,

어릴 적 가난에 의해 만들어진 미술이며, 

 작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앞으로 떨림이 있는 그림, 위로가 있는 그림,

감동이 있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더 노력할 것이다.

가짐보다 쓰임이, 더함보다 나눔이, 채움보다 비움이 중요함을 깨닫고

침묵과 비움의 진정한 의미를 작업에서 배우고 소리로 다양하게 표현해 보고자 한다.”

 

‘가이아의 거울’ ‘끝없는 길’ ‘정상에서’ 등

흐릿한 화면의 유화로 몽환적 감성을 자극하는 화가 박해강은

작품세계 역시 몽환적인 우주로 가 있다.

꿈을 꿀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예술의 중요한 기능임을

그의 그림 속 달과 별을 여행하며 느낄 수 있다.    

 

“고흐는 사이프러스 나무를 자주 그렸다.

꿈틀거리듯 이글거리는 사이프러스 나무를 통해 

 궁극에는 반짝이는 별이 있는 곳으로 간다고 믿었다.

우주에 관한 지식 중 나에게 충격을 주었던 것은

눈에 보이는 모든 물질은 분자로 이루어져 있고,

그 분자들을 쪼개고 쪼개어 들어가면

내부가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진동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었다.

고흐의 그림을 보면

별이나 구름이나 사이프러스 나무나 모든 것이 꿈틀거린다.

그에게는 현대과학자의 눈보다 먼저 감지하는

무엇이 있지 않았을까?

 

나는 그림을 제대로 그리기 위해

물감들을 살아 있는 생명체로 삼으며,

안에 들어갈 대상들과 진지하게 대화를 시도한다.

가끔 하늘을 보면 요즘 한창 그리는 달이 있고 별들이 있다.

도심의 구름과 먼지 그리고 소음에 가려진

별과 은하수를 그림에 증명하려고 그들에게 대화를 건다.

고흐가 사이프러스 나무를 통해 별에 가려 했던 것처럼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별에 가는 방법을 터득 중이다.”

 

포스코갤러리 기획초대전

<삶, 쉼 그리고 쉼>을 봐야 할 이유를

알랭 드 보통의 글로 대신한다.

“예술은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인생을 이끌어야 할 때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일깨워줄 수 있다.”   

채희숙<컬처칼럼니스트>

 

 

Franz Schubert (1797-1828)  

Piano Trio No.1 in B flat major, D.898

   1. Allegro Moderato
   2. Andante Un Poco Moss
   3. Scherzo: Allegro
   4. Allegro vivace

 

Arthur Grumiaux. cello /   Pierre Fournier. violin   

 

Nikita Magaloff.

                                                                                 

                                                          *나그네 인생길에 부는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