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돈규 기자의 2사만루] 98세 老철학자의 파안대소
100세 앞두고 "행복했다" 자부하는…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의 인생론
"현실은 밝은 회색과 어두운 회색… 흑백논리 빨리 벗어나야"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지난 100년 역사를 증언할 수 있는 철학자다.
'성공=행복' 등식은 깨져
―그때 얼마나 쉬셨어요?
"한 1년 가까이요. 쉬니까 힘들어서 다시 일을 시작했죠. 철학자로서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끝까지 해보자 생각했습니다."
―책에는 '60의 성능을 타고나 70의 결실을 거두면 성공한 사람이고, 90의 가능성이 주어졌는데 70에 머무르면 실패한 사람'이라고
"사람들은 행복과 성공을 동전의 양면으로 생각하지요. 성공한 사람은 행복하고 행복한 사람은 성공했다고들 말해요. 그런데 그런 시대
―그럼 언제 즐거움을 느끼죠?
"그 직장에 있는 동안에는 불가능에 가까워요. 제가 어느 대학 교수 채용 심사에 가보니 삼성그룹 부장급 여성이 응시한 겁니다. 봉급도 많
―철학을 전공했는데 일찍부터 인생 설계가 있었나요?
"마흔 살이 될 때까지 가난하게 살았어요. 아르바이트하며 대학에 다녔고 해방 되고 자리 잡히기도 전에 무일푼으로 탈북했고 겨우 안정을
―철학 독자는 없지만 수필 독자는 많지요.
"밖에 나가면 수필 쓴 교수로 통했어요. 우리 철학과 교수들은 '궤도 밖 외도'라고 손가락질했지요. 나와 더불어 '철학계 삼총사'로 통하는
―100세를 바라보는 노익장이네요.
"솔직히 90 고개를 넘고 나니 내 건강, 내 노력의 한계를 자꾸 느껴요. 피곤하고 힘들고 도움을 받아야 하고. 그래서 나를 아는 사람은 요즘
일제강점기 겪어 보니
―수입도 짭짤하시겠습니다.
"미국 사는 딸이 그래요. 아들·딸·사위 다 정년퇴직했는데 아버지 혼자 일하신다고. 그래서 난 행복해요. 재밌는 건 전에는 아들·딸들이 용돈을
―저축이나 펀드도 하시나요?
"관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입이 많진 않아요. 내 노력으로 얻은 건 내가 써도 괜찮고, 상금이나 기타 수입은 쓰지 않는 게 원칙입니다. 나이가
―도산의 마지막 강연을 들으셨다고요?
"도산 선생이 감옥에 있다가 병으로 휴가를 얻어 우리 시골마을 교회에서 설교를 하셨죠. 살다 보니 나를 오늘까지 키워준 분은 도산 안창호와
―인촌에 대한 친일 논란은 어떻게 보시나요.
"만약 내가 인촌 선생한테 '선생님, 친일분자라는데 속상하시죠?' 물으면 '그건 괜찮아, 나라가 잘되고 국민이 행복하면 돼' 하실 분이에요. 국민
―어떤 일이 있었나요?
“신사참배를 갔는데 저는 키가 작아 맨 앞줄에서 교장 선생님을 따라 들어갔어요. 나오다 그이가 돌아서는데 얼굴 주름살 위로 눈물이 죽 흘러내렸
김 교수는 우리 민족성 가운데 시급히 고쳐야 할 단점으로 절대주의 사고 방식을 뒷받침하는 흑백논리를 꼽았다. 흑과 백은 이론으로만 존재하고
―요즘 인사청문회 보셨습니까.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문제가 좀 많지요.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반항하는 게 정의다’라는 통념이 100년 넘게 내려왔어요. 조선 말의 동학, 일제
―무엇이 문제인가요?
“그 의식을 가장 많이 가진 사람들이 좌파예요. 좌파는 철학 자체가 살기 위해서 항상 적(敵)을 둬야 하거든요.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과거에 한
―그것이 습관이 돼 목적만 있다면 자신에 대해 관대하다는 말씀인가요?
“그들은 목적만 달성하면 과정은 용서받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고 방식 가진 사람들이 친일파 명단을 만들었다고 봐요. 김일성은 내 고향
―어떻게 답하던가요?
“첫째 친일파 숙청, 둘째 토지 국유화, 셋째 재벌과 지주 숙청…. 죽 읊는데 아, 저 사람은 철저한 공산주의자로구나 했죠. 그들을 추종하는 사람들
―책에는 ‘경험주의가 필요하다’고 쓰셨습니다.
“학문이나 사상은 합리주의가 앞설 때도 있지만 정치나 경제는 경험주의를 택해야 해요. 현실 경험을 바탕으로 문제를 개선해 나가는 겁니다. 실제
인생 황금기는 60~75세
98세 철학자의 일과는 이렇다. 아침 6시에 일어나 밤 11시에 잔다. 하루 한 시간쯤 산책하며 강의나 원고를 머릿속으로 정리한다. 일주일에 세 번
―낮잠도 주무시나요?
“잠깐씩 잘 자요. 낼모레 충북 제천에 강의 갈 때는 차 안에서 계속 잘 겁니다. 나한테는 시간 버는 거예요. 일 많이 할 수 있는 습관이죠. 어떤 때는
―65세부터 노년기라고 하죠. 정신력은 여전한데 체력이 달리거나 반대로 몸은 건강한데 정신이 쇠하기 시작합니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그런 생각 버린 지 오랩니다. 사람은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아요. 저는 인생의 황금기는 60세부터 75세까지라고 믿고 있
―책에서 ‘여자 친구’라는 단어를 봤어요.
“하하하. 제가 20년 넘게 병중에 있던 아내를 떠나보냈어요. 오랫동안 혼자 지낸다는 걸 아는 제자가 많아요. 제자도 80이 넘었으니 이제 친구예요.
―농담 아니고 진짜 없으세요?
“요담에 나이 들어보면 알 텐데 80대까지는 남자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안병욱 선생은 어느 호텔 커피숍 단골이었는데 하루는 거기서 일하던 아가씨
―정이 들었군요.
“네. 80대까지는 그래요. 90 고개 넘으니까 남성·여성이 전부 인간애로 바뀝니다. 부부도 처음엔 연정으로 살고 애들 키우며 애정으로 살고 늙은
―‘한 발로 서 있는 것 같은 쓸쓸함’이라고도 표현하셨는데 빈 구멍들을 어떻게 메우나요?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니는 이 방, 아내는 저 방에 있었고 전 2층을 썼어요. 어머니가 ‘다 떠나면 집이 비어서 어떡하냐’고 걱정하셨는데 재혼하라
인생을 쉰 살 이전에 평가하지 말라
젊어서는 10년, 20년도 설계하지만 노년은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다. 90 언덕 위에 선 뒤부터는 삶의 계획이 2~3년 단위로 짧아졌다고 했다. 한
편의 글을 그냥저냥 쓰다가도 마무리할 때가 되면 누구나 바짝 긴장한다. 육상경기를 할 때도 마지막에 기운을 왕창 쏟고 꽃도 지기 직전에 으뜸으
로 화사하다.
―스마트폰 아니고 폴더폰을 쓰시네요.
“전화 걸고 받기만 하면 돼요. 문자도 안 봐요. 요즘 사람들 어딜 가나 다들 여기에 붙잡혀 있는 걸 보면 안쓰러워요. 스마트폰 샀더라면 큰일 날 뻔
했어요. 없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생각하죠.”
―자녀를 여섯이나 키우셨는데 요즘 한국 사회의 난제 중 하나가 교육입니다.
“어린애를 수재나 영재로 만들려고 간섭하고 고생시키는 건 볏모를 잡아 빼서 빨리 자라게 하는 것처럼 위험해요. 학교 교육이 진학을 위한 준비 과
정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비유가 좀 그렇지만 강아지도 여섯 마리 모아놓으면 저희끼리 교육이 돼요. 저희 집은 성적이 부진했던 세 아이가 나중
에 다 교수가 됐어요. 성적 떨어져도 주눅들 필요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걔들은 기억력이 좋은 것이고 너희는 사고력이 좋으니 길게 보라고. 인생은
50세 이전에는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인생이라는 마라톤이 마지막 구간으로 접어드는데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가요.
“아무한테도 얘기 안 했는데, 금년 말쯤 되면 기억력은 괜찮아도 사고력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요. 다행히 오래 살았으니 마무리하고 싶은 걸 미리
준비하자고 생각했어요. ‘예수’ ‘어떻게 믿을 것인가’에 이어 올가을엔 기독교가 우리 사회에 어떤 희망을 줄 수 있는지 담은 책을 냅니다. 그리고
‘백년을 살아보니’ 후속편은 아니지만 행복론에 대한 책에 착수해요. 내년 봄까지는 지금처럼 바쁘게 생겼어요. 그럼 하고 싶은 일은 다 끝날 것 같아
요.”
―돌아보면 어떤 인생을 산 것 같으세요.
“그렇게 살 수밖에 없지 않았나, 섭리였다는 생각을 합니다.”
―‘늙은 젊은이들’에게 오래 산 지혜를 들려주고 싶으시겠죠.
“60세부터 제2의 마라톤을 시작하세요. 공부도 좋고 취미도 좋아요. 90까지는 자신을 가지고 뛰십시오. 80에 끝나더라도 할 수 없고요. 나더러
어떻게 살았느냐고 묻는다면, 고달팠지만 행복했다,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줄 수 있어 행복했다고 말하겠습니다. 남을 위해 살면 행복해집니다.”
혼자 사는 집은 좀 휑뎅그렁했다. ‘백세를 살아보니’에서 사진 기술을 배워 구름들을 찍고 싶다는 대목을 읽은 터라 구름 사진이 잘 나온 책을 선물
로 들고 갔다. 김 교수는 “사진은 아직 시작도 못 했다”며 “구름은 자꾸 변하고 보는 그때 그 순간이 가장 아름답다”고 했다. 지금도 구름 끼는 날
에는 뒷산에 오른다는 철학자가 덧붙였다. “구름을 보면서 피곤을 풀죠.” 카메라를 장만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