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과 취미

訪金居事野居(鄭道傳)

여풍2 2022. 10. 29. 09:56

訪金居士野居 (방김거사야거) - 정도전(鄭道傳)
김거사의 시골집을 방문하다

秋雲漠漠四山空 (추운막막사산공) - 가을 구름 막막하고 온 산은 적막한데

落葉無聲滿地紅 (낙엽무성만지홍) - 낙엽은 소리 없이 땅에 가득 붉어라

立馬溪橋問歸路 (입마계교문귀로) - 개울 다리에 말을 세우고 돌아갈 길           물으니

不知身在畵圖中 (부지신재화도중) - 이 몸이 화폭 안에 있는 듯 하네
                                            
秋陰漠漠四山空 (추음막막사산공)

落葉無聲滿地紅 (낙엽무성만지홍)

立馬溪橋問歸路 (입마계교문귀로)

不知身在畵圖中 (부지신재화도중)

가을 구름은 아득하고 사방의 산들은 텅텅 비어 있는데

나뭇잎은 소리 없이 떨어져 온 땅 가득 붉게 물들었네

시냇가 다리 곁에 말을 세워두고 돌아가는 길을 묻고 있는데

내가 그림 속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네

(1행의 秋雲이 秋陰으로 나와있는 판본도 있다)

 


오늘은 이 계절에 잘 어울릴 듯 한 한 수의 한시를 소개하고자 한다. 작가는 정도전(鄭道傳)으로 부패한 고려를 전복시키고 이성계의 새 나라 조선을 건국하게 한 최고의 공신이다. 또한 그는 평민 출신으로 온갖 고난을 겪다가 마침내 최고의 권력자가 되어 부귀를 누렸지만, 끝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출신 성분 때문에 자주 억울하게 귀양살이를 하였는데, 이 시 역시 모함을 받고 귀양살이를 마치고 돌아오는 도중 오늘날 영천에서 지었다고 한다.

맑은 가을 하늘이 아니라 구름 낀 가을 하늘이다. 게다가 사방의 산은 텅텅 비었단다. 아마 가을이라고는 하지만, 거의 겨울에 들어선 그야말로 늦가을의 끝자락이자 초겨울의 입문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므로 나뭇가지에 단풍잎이 가득한 것이 아니라 땅바닥에 가득 떨어져 있다는 것이리라. 마침 고향으로 돌아오던 중 영천에 사는 친구 집을 방문하고자 했는데 아뿔싸 초행인지라 길을 잘 모르겠더라. 마침 산골 마을 어귀 시냇가에 말을 세워두고 지나가는 동네 사람에게 친구 집으로 가는 길을 물었겠다. 그러자, 그 마을 사람은 손으로 가리키며 친구 집을 일러주는데, 정신없이 오다 보니 미처 마을을 자세히 보지 못했는데 동네 사람의 손끝으로 친구 집을 보다가 그제야 그 동네가 어찌나 아름다운지 한 폭의 그림 같다고 생각했고 자신은 마치 그 그림 속에 있는 것 같더라는 논리다.

결구(結句)의 메타포(metaphor)가 대단하지 않은가. 주변의 경관을 커다란 그림이라 여기고 자신은 그 그림 속에 그려진 피조물이라는 발상이다. 이미 14세기에 이런 시가 나왔다는 것은 정도전의 문재(文才)를 평가하는 데 더 이상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0세기에도 이와 비슷한 메타포를 가진 시가 있었는데 시대적으로 훨씬 앞 시대에 이미 이러한 작품이 나와버렸기 때문에 많이 퇴색되는 감이 든다. 참고로 그 시를 소개해 본다.

/눈빛도 희고/달빛도 희고/마을도 그림 같고/집도 그림 같고/눈빛도 화안하고/달빛도 화안하고/누가 이런 그림 속에/나를 그려놓았나? 강소천 선생의 ‘달밤’이라는 동시다. 이 시 역시 결구에서 ‘누가 이런 그림 속에/나를 그려놓았나?’라고 하여 정도전의 ‘내가 그림 속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네’라는 시구와 같은 의도로 표현하고 있다.

혼란스러웠던 시대를 종식하고 정말 백성들이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 보고자 노력했던 정치가이기도 한 정도전, 훗날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왕좌를 차지하고자 최대의 걸림돌인 김종서를 암살했듯, 태종은 왕좌에 오르기 위해 두 번의 왕자난과 함께 정도전을 그렇게 제거했다. 문인이기 전에 정치가였던 그는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고자 했지만,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갔다.

하지만 그가 남긴 많은 저술과 시는 아직도 남아 있어서 문인으로서 이름을 함께 남기고 있으니 정말 다방면으로 재능이 있었던 인물로 평가된다. 어쨌든 이 계절에 어울리는 시를 찾다가 뜻밖에도 정도전의 ‘방김거사야거(訪金居事野居)’를 소개하게 되었는데 독자 제위의 반응이 자못 궁금하다.
[옮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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