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만상

▶사람에 대한 이해

여풍2 2022. 8. 18. 11:14

▶사람에 대한 이해

1759년 조선의 21대 임금 英祖는 66세의 나이에 15세 소녀를 계비로 맞아들이니 이 여인이 바로 그 유명한 정순왕후다. 당시 66세면 손자는 물론이고 증손자도 있을 나이다. 실제로 정순왕후의 아버지 김한구는 37세, 할아버지 김선경은 62세였다. 결혼 당시 물론 두 사람 모두 생존해 있었다. 조선 개국 후 치른 국혼 중에 가장 나이 차가 큰 혼인이었다. 영조가 후궁 중에서 왕비를 뽑지 않고 굳이 새 왕비를 간택한 이유는 숙종 때 후궁이었던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모함해 왕비 자리에 오른 폐해를 우려해서다.

■정순왕후를 간택할 때의 일화.

오색이 찬란한 비단옷으로 몸을 감은 여러 재상가의 따님들이 황홀하게 치장을 하고 즐비하게 수놓은 방석 위에 앉아서 영조의 간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온갖 준비가 다 되었음이 영조께 알려지자 영조는 좌우에 시신들을 거느리고 아름다운 처녀들을 간택하기 시작하였다. 즐비하게 고개를 숙이고 얌전히 앉아 있는 여러 처녀 중에 어찌된 일인지 한 처녀만이 앉아 있지 않고 서있는 것이었다.

이상히 생각한 영조는, “저 처녀는 뉘 집 딸인데 저렇게 서있느냐? 무슨 까닭이라도 있는가 물어보아라.” 나인들이 다가가서 서있는 규수의 귀에다 대고 재촉을 하였다. “임금께서 친히 간택을 하시는 자리에서 이렇게 서있는 법이 아니오. 좌정하시오.” 이렇게 독촉을 받았으나 그 처녀는 여전히 서있는 것이다. 이상하게 여긴 영조는 직접 하문을 하였다. “그대는 어디 몸이라도 불편하여 앉지를 못하는고.” 이렇게 임금의 하문이 있은 연후에야 그 처녀는 나인에게 가만히 귓속말을 하였다.

원릉

영조와 그의 계비 정순왕후 김씨(貞純王后金氏)의 능. 1776년에 능호를 정하였다.

왕과 왕비의 능을 쌍릉으로 나란히 두었다.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사적 제193호.

 

“아무리 간택하는 자리라고 하지만, 방석 위에 어버이의 성함을 써 놓았으니 그것을 어떻게 깔고 앉을 수가 있사오리까?” 나인이 아래의 방석을 내려다보니, 과연 각각 규수들의 아버지 이름을 써 놓았던 것이다. 그것은 간택하는 자리에서 누구의 딸인가를 임금이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이 말을 임금께 아뢰니 영조가 크게 깨달아, “그렇겠다. 아무리 방석이라 하더라도 부모의 이름을 감히 어떻게 깔고 앉을 수가 있겠느냐? 뉘 집 규수인지 모르겠으나 과연 영리한지고!” 이렇게 감탄을 하였다.

간택이 진행되고 법도에 따라서 사찬이 내리어 음식상이 들어왔다. 세 규수가 최종 후보로 남게 되었고 이어서 영조는 규수들의 뜻을 떠보기 위하여 친히 물었다.


"이 세상에서 제일 깊은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고?” 다른 규수들이 “한강입니다” “동해바다입니다”라는 답을 할 때 김규수는 “저는 사람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라는 답을 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고?” 영조가 다시 물으니 “다른 것들은 그 깊이를 잴 수 있지만
사람의 마음만큼은 하도 깊어 그 속을 알 수가 없습니다”라는 대답이다.

15세 소녀치고는 꽤나 기특하고 맹랑한 답이라고 생각한 영조는 두 번째 질문을 던진다.
“고개 중에서는 어떤 고개가 제일 넘기에 힘이 드는고?" 다른 규수들이 "대관령입니다"
"추풍령입니다"라고 하는데 김한구의 딸은 "보릿고개입니다” 깜짝 놀란 영조가 다시 묻는다. “그 이유는 무엇인고?” 김규수가 답한다. “다른 고개는 조금 힘이 들지만 넘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백성들에게는 보릿고개에 한 끼를 채운다는 것 자체가 지극히 난감한 일이옵니다." 이어서 “무슨 음식이 가장 맛있느냐?” 이런 하문에 다른 규수들은,

“떡이올시다.” “국수라고 아뢰오.” “식혜올시다.” 이렇게 식성대로 아뢰었는데 유독 오흥부원군 김한구의 딸인 그 소녀만은,

“소금인 줄로 아뢰오.” 하는 뜻밖의 판이한 대답이었다.


더욱 관심이 동한 영조는 "음, 그렇다면 꽃 중에서는 무슨 꽃이 제일인고?" 물으니 다른 규수들이 “목련꽃입니다” “연꽃입니다”라고 할 때 김규수는 "목화꽃입니다." 고 답한다.
“어찌 그리 생각하는고?” “다른 꽃들은 일시적인 즐거움을 주지만 목화는 꽃이 지고 난 후에도 백성의 옷감이 되어서 품격도 살리고 추울 때 보호하여 주기 때문입니다.”

궁중에서 부족함 없이 사는 왕비라 할 지라도 백성이 굶주리고 헐벗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 영조는 김규수를 왕비로 간택한다.

그러나 누가 알았을까?

그 총명하던 소녀가 왕비가 되고 난 후에는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는데 지대한 역할을 하고, 正祖 사후에는 수렴청정을 하면서 모처럼 진작된 학문적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이가환과 정약용을 비롯한 남인 세력을 절멸시키고, 천주교를 탄압하는데 앞장설 줄이야… 그녀의 이런 정치적 성향은 그의 집안이 가지고 있던 정치적 성향이기도 하였다. 정순왕후의 집안인 경주 김씨 김한구 집안은 대대로 노론의 당색을 띠고 활동하였다. 다만 영조 말년 경 앞서 죽은 사도세자의 부원군 홍봉한과 정치적으로 대립하였다. 특히 정순왕후의 오빠 김귀주는 정면에 나서서 세손의 왕위계승을 반대하면서 벽파의 중심세력으로 활동하였다.

《영조정순후가례도감의궤》 반차도

1759년 6월에 있었던 영조와 정순왕후 김씨의 결혼식 과정을 기록한 의궤이다.

ⓒ 서울대학교 규장각 


그래서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을 하는 모양이다. 우리가 인간에 대해서 완벽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하려는 노력을 더 많이 해야 한다. 사람의 ‘특성’을 나타내는 영어 Personality의 어원은 Persona(가면)다.
인간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뜻이다. 그래서 인간의 참모습을 보는 것이 쉽지 않다.

사람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세밀히 관찰하는 것 밖에 다른 방법은 없다. 그래서 뛰어난 리더는 사람을 볼 줄 아는 안목과 관찰스킬이 다른 사람에 비해 탁월해야 한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소위 시너지 효과(Synergy Effect)는 동질적인 집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서로 다른 이질적인 집단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로마제국이 천 년 이상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나 오늘날 미국이 모든 면에서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이유도 개방성과 다양성에서 찾을 수 있다.

글로벌 시대에는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서로 다른 생각과 행동을 존중하고
수용할 때 조직의 시너지를 제고하고 경쟁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옮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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