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과 방황

거위도 굶을 줄 아는데..

여풍2 2021. 4. 12. 10:20

? 거위도 굶을 줄 아는데..


한 농부가 우연히 야생 거위 한마리를 잡게 된다.

그는 거위의 살을 찌워 잡아 먹을 요량으로 불에 익힌 기름진 음식을 줬다.

거위는 이내 살이 쪄 날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거위가 음식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농부는 거위가 병이 난줄 알고 더 맛있는 음식을 줬다. 그럼에도 거위는 그 음식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거위는 열흘을 아무런 음식을 먹지 않았다.

거위의 몸은 야생 상태의 날씬한 몸으로 돌아왔고 힘찬 날개짓과 함께 멀리 날아가버렸다.

거위가 음식을 계속 탐했다면 인간에게 잡아 먹혔을 것이다.

거위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굶을 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 사는 사회도 마찬 가지다.

아무리 보기에 좋고 탐이 나더라도 먹을 것이 있고 먹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세속의 물질적 탐욕은 자신을 망가뜨리는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인간의 무리한 탐욕을 경계하는 영수세이 (潁水洗耳)

세속에 물들지 않고 고결한 삶을 살아가는 절개와 의지를 뜻하는 말로 많이 쓰인다.

요(堯)나라 허유(許由)는 옳지 않은자리 부정한 음식은 결코 가까이 하지 않았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런 허유의 성품을 알게 된 요 임금이 자신의 자리를 허유에게 물려주고자 했다.

하지만 허유는 완곡하게 이를 거절했다.

뱁새가 깊은 숲속에 둥지를 짓는다 해도 나뭇가지 하나면 충분하고

두더지가 커다란 강물을 마신다 해도 작은 배를 채우면 그만이다.

그리고 더러운 말을 들었다며 영수(潁水)의 흐르는 강물에 귀를 씻었다.

우리가 살아 가면서 마주치게 되는 탐욕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고사다.

지나침은 부족함보다 못하다. 탐욕이 부르는 것은 재앙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지나친 혐오와 무관심도 사회 속에서의 자신을 상실한다.

영국의 작가 "써머 셋몸"이 1919년 출판한 달과 6펜스의 두 세계에서

적절히 균형을 잡는 것 다시말해 탐욕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야 말로 인간을 아름답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탐욕이 지배하는 속에서도 그 세상에 물들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운 삶인것을~

 

ㅡ옮긴 글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