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과 방황

누구나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는 이유

여풍2 2019. 11. 12. 10:35

 누구나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는 이유

노인과 바다



<노인과 바다>는 1952년에 출간되어

1953년 퓰리처상과 1954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헤밍웨이의 작품이다.

이 무렵의 헤밍웨이는 무려 10년동안의 침묵을 깨고

1950년에 <강을 건너 숲 속으로>라는 작품을 발표하였으나, 좋은평을 얻지 못한 상태였다.

그후 슬럼프의 기간을 갖는 듯 싶었으나 1952년 <노인과 바다>를 발표하며 화려하게 복귀한다. 



작품 속에서 노인 어부 산티아고는 마치, 10년 동안의 긴 침묵과 슬럼프를 겪은 헤밍웨이처럼

84일 동안이나 물고기 구경도 하지 못한 상태에 이른다. 그러던 중, 85일째 드디어

드넓은 바다 한 가운데에서 거대한 청새치를 만나게 된다.

과연 그에게 이것은 기회일까, 섣부른 욕심일까?


노인 산티아고

산티아고는 어부였지만,

마을 안에서 오랜기간동안 물고기 구경도 하지 못한 불쌍한 노인이 되어있었다.

유일하게 산티아고를 챙겨주던 제자 마놀린도 부모님의 권유로 자신을 떠나

다른 배에서 어부일을 하게 되자,

산티아고는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며 홀로 배에 오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무런 수확도 없이 84일이 흐르고,

85일째가 되던 날 산티아고는 배를 몰고 나가 커다란 군함새를 발견하게 된다.

군함새가 물고기 사냥을 하기 위해 나타났음을 직감하게 되고 산티아고는 드디어

85일만에 커다란 청새치를 발견한다.

 

기회와 욕심 사이

오랜만에 대어를 발견한 산티아고는 청새치가 보통크기가 아님을 직감했다.

그러나 깊게 미끼를 물지 않고 주변을 맴도는 청새치는

산티아고를 망망대해에서 홀로 표류하게 만들었다. 어둠이 깊어지자 산티아고는 외로움을 느끼며

제자 마놀린이 곁에 있었다면 어땠을지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떨어지는 식량과 체력에 맞서며 어떻게든 청새치를 끌고 항구로 가기 위해 애썼다.

그 사이 3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청새치의 커다란 몸집과 무게에 낚시대를 잡고 있던 산티아고의 손에서 쥐가 나기 시작했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청새치의 피냄새를 맡고 나타난 상어들이 산티아고의 배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산티아고는 오랜만에 온 기회에 겁없이 먼 바다까지 나온 자신의 행동을 돌이켜보았다.

그리고 차라리 이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 하고 생각하게 된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 있을지언정 패배할 수는 없다



커다랗던 청새치는 상어들의 공격을 수차례 받게 되자 점차 살점이 떨어져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청새치를 지켜내기 위해 사투를 벌였던 산티아고의 몸도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러나 산티아고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몸은 상해갔지만 정신만큼은 제대로 차리기 위해 몇번이나 노력했다.

그리고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 자신을 다독이며 혼잣말로 이렇게 외쳤다.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게 아니야. 인간은 파멸당할 수 있을지언정 패배할 수는 없어."



산티아고는 상어 떼의 습격에 맞서며, 어두운 밤이 되어서야 청새치의 뼈와 함께 항구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배를 뒤로한 채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노인 산티아고가 잠을 자는 동안,

그를 찾아 해맸던 사람들은 산티아고가 잡아온 고기에 감탄을 금치못했다.

크기가 5.5미터에 달하는 물고기의 뼈는 항구의 수면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이 작품은 헤밍웨이가 잘 알던 쿠바인 어부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작품이다.

작품 속에서 노인 산티아고는 모든 이들에게 ‘불쌍한 사람’ 취급을 받았으나

끝내 거대한 청새치를 잡아내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낸다.



 상어 떼의 공격을 받으며 뼈만 남은 청새치와 돌아왔지만 그것은 산티아고의 패배가 아니었다.

육체는 만신창이가 되어도, 정신력 하나로 그 과정을 버텼던 산티아고의 승리였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바다에서 보낸 어부 산티아고에게 바다는 곧 인생이었으니

상어는 인생의 장애물이었을지도 모른다.



망망대해에서 먼길을 돌아 온 자신의 행동을 돌이켜 보며,

차라리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하고 바라는 산티아고의 모습은

대자연 앞에서 인간의 모습이 얼마나 작은지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다시 정신을 가다듬으며 “어쩌면 살 수 있을지도 몰라.” 라고 말하는 산티아고의 모습은

인간의 삶의 의지가 얼마나 단단한지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산티아고에게는 상어가, 헤밍웨이에게는 호평받지 못한 작품이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었다.

당신에게는 뭐가 있는가. 그래도 다시 한번 정신을 가다듬어보자.

어쩌면 다시 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세상은 멋진 곳이다. 그렇기에 싸워 볼 가치가 있다. / 헤밍웨이


슬럼프를 극복하고 싶은 분들에게 이 영상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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