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환 : 깃발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理念)의 푯대 끝에
애수(哀愁)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시해설]
-집필 의도 및 감상
기(旗)는 흔히 ‘국가’를 표상한다.
그러나 이 시의 깃발은 특정 국가의 국기(國旗)가 아니라 관념상의 ‘국가’라는 개념을 표상할 뿐이다.
인간은 오랜 세월 동안 이상을 추구하고 이상국(理想國)의 실현을 동경해 왔다. 그러나 지구상의 국가들은
많은 문제점을 간직한 채 존재할 뿐 아직 염원하는 이상은 실현되지 못한 상태에 있다.
유치환은 이 시에서 근본적으로 국가의 개념에 대하여 회의를 품고 있다. 이것은 독일의 철학가 니체의 허무주의 영향
때이라고도 볼 수 있으며, 1920,30년대에 유행하던 아나키즘(anarchism; 무정부주의)의 영향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인간은 자기 한계를 초탈하여 이상에 도달할 수 없음에도 여전히 이상에 도달하고자 하는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