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만상

'보헤미안 랩소디

여풍2 2018. 11. 14. 06:14

'보헤미안 랩소디'가 방황하는 20대에게 미친 영향


[보헤미안 랩소디] 불안을 달래주는 가사와 음색.. 음악이 나를 위로했다

[오마이뉴스 글:이정혁, 편집:이주영]


전설의 록밴드 '퀸'을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입소문을 타고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데요.

그 시절 추억을 소환해 봤습니다. <편집자말>


겨울이 온다. 겨울은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에게만 피하고 싶은 계절이 아니다.

편차가 있겠지만 계절성 우울증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계절이다. 겨울이 두려운 중년.

쌓인 낙엽을 보면 지난 삶이 떠올라 괜스레 눈물짓는 아저씨.

한편으로는 설레는 마음으로 첫눈을 기다리는 미성숙 어른. 이건 청승과는 결이 다르다.
 
중년에 접어들면서 자아가 계절을 타기 시작했다. 예전에도 그런 적이 있긴 했다.

삶이 불투명하고 존재가 무의미하던 이십 대 후반. 설렘과 불안의 감정이 널뛰기하던 시절이다.

그때를 돌이킬 때마다 귓가에 맴도는 노래가 있다. 록밴드 퀸(Queen)의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다.

감정의 기복이 심한 사람들은 안다. 하룻밤에도 천국과 지옥을 몇 번씩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을.

젊은 나는 도피처를 찾고 싶을 때마다 술을 마셨다.

만취 상태로 빈집에 들어가 오디오 재생 버튼을 누르면 '보헤미안 랩소디'가 흘러나왔다.

볼륨을 높여 노래를 무한반복으로 재생한 채, 나는 밤새 조증과 울증의 롤러코스터를 타곤 했었다.


왜 하필 '보헤미안 랩소디'였냐고?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들으면 들을수록 빠져드는 노래

Bohemian Rhapsody - Queen                                                                   

그룹 퀸의 레코드 사무실에서 듣는 퀸의 음반이다. 아쉽게 이 앨범에는 '보헤미안 랩소디'가 없다
ⓒ 이정혁
 
첫째, 가사가 시적이다. 이 노래를 처음 접한 시기는 중학교 때다.
나와 출생 시기가 비슷한 곡을 15년이나 지나서 듣게 된 셈이다. 당시의 영어 실력으로
가사가 들려왔다는 건 억지고, '마마'와 '갈릴레오'의 상관관계가 너무도 궁금해 가사를 찾아보았다.
물론, 그 당시에는 가사가 담고 있는 철학적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렇게 시간이 지나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온 젊은이는 좌절한다.
세상은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었고, 먹고 산다는 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술에 취해 엄마를 그리워할 때마다 희한하게 '보헤미안 랩소디'도 동시에 떠올랐다. '갈릴레오'가 아닌 '마마' 때문이었다.

피아노 선율에 맞춰 프레디의 솔로 보컬로 시작되는 첫 마디.

"엄마, 방금 한 남자를 죽였어요. 그의 머리에 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겼죠

(Mama, just killed a man Put a gun against his head, pulled my trigger)"라는 가사가 머리를 쪼개듯

파고들었다.

뒤따르는 가사도 마음의 동요를 일으켰다.

"너무 늦었지만, 내 시간이 왔어... 다들 안녕, 나는 이제 가야겠어

(Too late, my time has come... Goodbye, everybody, I've got to go)."

차라리 모든 걸 뒤로 하고 떠나버리고 싶다는 생각. 그러다가 또 다시 마음이 바뀐다.

"엄마, 전 죽고 싶지 않아요(Mama, I don't want to die)."

마치 프레디가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며 나를 대변하는 느낌이었다.

장르도 언어도 낯선 팝의 가사가 이렇게 감정선을 자극하는 경우는 드물다. 왜? 못 알아들으니까.

하지만 이 노래는 달랐다. 수없이 반복해서 들으니 마치 한국어 가사처럼 들리기 시작했고,

가사의 의미를 조금씩 느끼면서 자연스레 내 감정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그렇게 들을수록 중독되고 빠져드는 노래. '보헤미안 랩소디'의 가사가 갖는 매력이다.
 
두 번째는 곡의 구성이다. 이 노래만큼 불안한 자아에게 어울리는 노래가 또 있을까?

아카펠라로 시작해 절절한 발라드를 거쳐 로큰롤로 휘감고 오페라까지 넘나드는 광기 어린 곡.

한 곡 속에 희로애락을 종합선물세트처럼 담아놓은 노래.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빌리 홀리데이의 'Gloomy Sunday'나 라이오넬 리치의 'Hello'와는 다르다.

대책 없고 추상적인 희망만을 노래하지도 않는다. 이 노래는 듣는 이의 감정을 가라앉혔다 솟구치고,

또한 평온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구성을 지녔다.
 
술에 취해 도입부를 들으면 한없이 깊은 우울감에 빠지다가도 곡의 말미에는 어느 순간 박자에 맞춰 고개를 흔들게 된다.

몇 번을 반복해서 듣다 보면 격정적인 감정을 잠재우는 자장가처럼 들린다.

다음 날 아침, 눈 뜨자마자 재생 버튼을 누르면 이게 또 응원가가 된다.

'갈릴레오'를 외치며 새롭게 주어진 하루를 기꺼이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팔색조의 신비감을 품은 곡이다.


인생은 짧고 노래는 길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속 프레디 머큐리
ⓒ 20세기 폭스 코리아
 
마지막으로 세 번째, 프레디 머큐리의 보컬이다.
무게감 있으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 4옥타브를 넘나드는 풍부한 음량이라는 표현은 진부하다.
 달콤하지만 느끼하지 않고 묵직하지만 텁텁하지 않은 독특한 음색. 내 귓가에 가만히 속삭이다가
갑자기 큰 소리로 훈계하다가 다시 어깨를 쓰다듬는 듯한 마력의 보이스.
평범하지 않은 인생이 고농도로 응축된 천재 뮤지션의 목소리는 수천 번을 들어도 가히 물림이 없다.
 
어쩌면 그의 실제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지되어 있기에 오히려 살아 숨 쉬는 목소리.
시간과 공간 따위를 초월해 흐르는 자유로운 음색. 그에게 열광하던 이들이 하나둘 늙어가도 그의 목소리만큼은
변색되지 않고, 퇴화하지 않는다. 박제가 아닌 살아있는 에너지로 우리 곁을 끊임없이 맴돌고 있다.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책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음악의 힘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어쩌면 중년들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속 프레디의 노래에 눈물 흘리는 이유 아닐까 싶다.
 

노래는 거기 그대로 있는데 삶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사랑은 식고 재능은 사라지고 희망은 흩어진다.

삶의 그런 균열들 사이로 음악이 흐를 때, 변함없는 음악은 변함 많은 인생을 더욱 아프게 한다.

이 세상을 흐르는 음악이, 흐르면서, 인생을 관찰하는 이야기. 그러니까, 인물들이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인물들의 얘기를 듣는 이야기. (...) 인생은 짧고 음악은 길다. 

-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10여 년 전, 그렇게 나는 '보헤미안 랩소디'를 들으며 광기를 잠재웠다.
중년에 접어들며 다시 찾아온 감정의 이탈을 이번에도 극복할지는 의문이다.
다만, 작은 기대를 하게 되는 건, 이 노래가 여전히 내 피를 타고 흐른다는 사실이다.
힘든 계절이 찾아오고 다시금 존재에 의문을 던지며 고독 속에서 헤매는 지금, 프레디는 또 한번 내 손을 잡아줄까.
 
며칠 전, 직원들과 함께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봤다.
입 벌리고 자는 친구부터 감동의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직원까지 연령에 따라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나 또한 소리 없이 목으로 눈물을 삼켰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사실 불가하다.
그저 두 시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퀸과 함께 호흡할 수 있었다는 점이 고마울 뿐.

(c) 오마이뉴스(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