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Pavane pour une infante défunte (빠반느 뿌~ 윈느 에팡트 디퐁트)
여기서는 두가지 키워드
왕녀(infante)와 파반느(Pavane)!
이 두가지를 알아야 이 음악을 감상하는데 도움이 된다.
여기에서 라벨이 점찍었다고 하는 왕녀는 바로 스페인의 마르가리타 공주이다.
스페인 국왕 펠리페 4세의 첫 딸 마르가리타 공주.
두살때 부터 숙부인 합스부르크 왕가 레오폴트 1세와 혼인이 예정되었고 14세때 신성로마제국의
왕후가 되며 4명의 자녀을 연달아 출산하고 몸이 쇠약해져서 21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된다.
이 공주가 유명한것은 바로 스페인 궁정화가 벨라스케스의 그림
Las Meninas [라스 메니나스(시녀들)]에 이 공주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중앙에 있는 귀여운 소녀가 바로 마르가리타 공주,
주변의 아가씨들은 시녀들과 광대이고 뒷면 거울에 비친 두사람이 스페인 국왕 부부이며,
왼쪽 붓을 들고있는 화가가 바로 이그림을 그린 벨라스케스 이다.
벨라스케스가 스페인 국왕 부부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데 놀러온 마르가리타 공주와 일행이
재롱으로 국왕부부의 무료함을 덜어주는 상황으로 공주와 일행이 거울에 비친 모습이다.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에 있는 이 그림은 회화의 신학대전 이라고 부를만큼 무지 유명한 그림으로
분할묘사, 공기원근법, 지적인 구도법 등 미술에서 교과서적인 작품으로 꼽히며
심지어 피카소도 이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라스 메니나스 연작을 제작했을 정도로 멋진 그림이다.
이 예쁘장한 공주의 얼굴을 좀더 자세히 보면 아래 보시다시피 이렇게 귀엽고 깜찍한 금발 소녀이다.
궁정화가 벨라스케스는 마르가리타 공주의 사진을 자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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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가 된 공주의 사진
이때 당시 스페인의 왕족들은 근친결혼으로 극심한 유전병에 시달렸으며 단명했다.
그 왕가 혈통의 상징은 바로 주걱 턱이었는데 이 왕녀에게서는 그런 주걱턱의 상징이 별로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아무튼 라벨은 이 유명한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보고 거기서 문득 죽은 왕녀인 마르가리타를 위해
한곡을 만들겠다는 영감을 얻게 된다.
그리고 파반느~
파반느는 16세기초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2박자와 4박자로 구성된 궁정 무곡으로
그 명칭은 이탈리아어로 공작 즉 파포네에서 유래했다.
결국 라벨은 마르가리타 공주를 상상하며 그녀를 위한 2박자의 춤곡 파반느를 만들었다고 한다.
[모리스 라벨]
하지만 이곡을 만들 당시 라벨은 폴리낙 공작부인에게 후원을 받고 있었다.
이 폴리낙 공작부인은 그녀가 가진 재산을 여러 예술인들을 후원하는데 아낌없이 쓴 사람인데
포레 샤브리에 사티 알베니스 스트라빈스키 파야 미요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이 음악가들이 모두 폴리낙 공작부인의 후원을 받았다.
[폴리낙 공작부인]
라벨 역시 이 부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1899년 이 곡,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폴리낙 공작부인에게 헌정했고 혹시 이곡에서 나오는 왕녀가 폴리낙 공작부인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지만, 하지만 라벨은 이를 부정하고
그냥 오래전 스페인 궁정에서 파반느를 추었을 어느 왕녀를 상상했다고 진술하였다.
하지만 뜬금 없이 스페인 왕녀를 음악제목에 등장시킨점 폴리낙 공작 부인,
여기서 공작이 파반느의 기원인 파포테(공작)인점 그리고 이 음악을 폴리낙 공작 부인에게
헌정한 점을 생각해보면 의심이 가는 대목이 있긴 하다.
Who knows?
라벨은 이곡을 특별한 기교나 화려함을 동원하지 않은 채
어찌보면 지극히 평범하고 소박한 멜로디 들로 짰으나 들으면 들을수록
절제된 표현력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달빛처럼 아련한 선율들이
듣는 이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매직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음악이다~
이곡은 처음에는 피아노곡으로 만들어졌지만 1910년 오케스트라용 버전을 다시 만들어서
1911년 12월 23일 콩세르 아셀망에서 알프레도 카젤라의 지휘로 초연되었고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이 되었다.
앙드레 프레빈이 지휘하는 로열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1985년 녹음.
프레빈은 이 앨범에 라벨의 주요 관현악을 담았는데,
고귀하고 감상적인 왈츠, 쿠프랭의 무덤, 알보라다 델 그라치오소 모두 아름답다.
특히 이곡에서는 유명한 호른 주자 제프리 브라이언트가 처연한 소리로
곡의 서막을 열어주면서 뒤이어 구슬프고 찰진 멜로디가 아름답게 흐른다.
세이지 오자와가 지휘하는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1974년 녹음.
서양 일색인 지휘자의 세계에서 변변한 동양의 마에스트로 하면,
인도 출신 주빈메타와 일본인 오자와 세이지가 떠오른다.
이제 백발이 성성한 올해 84세의 오자와~ 하지만 아직도 활동할수 있어서 다행이다.
웬지 석양의 우수가 떠오르는 아름다운 선율, 하지만 라벨 특유의 입체감은 좀 엷다.
샤를 뮌쉬가 지휘하는 보스톤 심포니의 1963년 녹음.
역시 샤를 뮌쉬의 프렌치 정서 가득한 선율이 곳곳에서 아름답게 흐른다.
마치 이게 프렌치 정서야! 하고 뮌쉬가 미국 보스톤에 가서 한수 지도해 주는 듯 한,
아름다운 음반이다.
장 마르티농의 음반
위는 시카고 심포니, 아래는 파리 오케스트라와의 음반이다.
프리츠 라이너의 뒤를이어 시카고의 상임이 된 프랑스인 마르티농은 웬지 시카고와 궁합이 잘 맞지 않더니, 고향 파리로 돌아와서 뮌쉬와 클뤼탕스의 뒤를 이은 프랑스 지휘자로서 비로소 멋진 활동을 펼칠수 있었다.
프렌치 라벨 음악을 프렌치 장 마르티농이 프렌치 파리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멋진 연주~
카자드쉬가 연주하는 라벨의 피아노 전집 / 그중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오케스트라 버전은 관현악의 색채가 들어있지만 원래 오리지날인 이 피아노 버전도 무지 아름답다.
미뉴엣 앤티크(1895년) 부터 라 발스(1920년) 까지
라벨의 피아노 버전곡 16곡을 전집 수준으로 녹음을 남긴 연주자는
발터 키제킹 애비 사이몬 베르너 하스 블라도 페를뮈테르 상송 후랑소와 모니끄 하스
그리고 여기 로베르트 카자드쉬가 있다.
고급진 라벨의 피아노 음악들을 듣다보면, 어느덧 내가 귀족이 되어서
넓은 홀안에 의자 하나 놓고 앉아서 눈을 감고 피아노 연주를 듣는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힌다.
피아노 하나, 그리고 왼손의 조력만으로도 이렇게 충분히 오케스트라의 효과를 낼수 있다는 것에
놀라울 뿐이다.
무지 빠른 템포로 마음을 움직이는 아름답고 멋진 연주.
모니끄 하스의 피아노 연주 1968년 녹음.
언제나 모니끄 하스의 죽은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듣기위해선
먼저 앞선 트랙에 놓여있는 쿠프랭의 무덤을 듣는다.
프렐류드에서부터 하스의 정교하게 훑어가는 빠른 타건, 마구 쏟아지는 명료한 음들.
역시 형형색색의 별이 쏟아지는 뽀흘랑
그리고 관현악 버전에는 없는 푸가와 정신없게 신명나는 토카타가 있어서 좋다.
카자드쉬의 엄청 빠른 파반느에 비해 철저히 느리고 우아하게 연주하는 하스의 파반느~
둘다 빠르면 빠른대로, 느리면 느린대로 아름답기는 마찬가지이다.
베르나르드 하이팅크가 지휘하는 로열 콘서트헤보의 1971년 녹음.
이 필립스 듀오시리즈 1장에 마 메르 루와를 비롯한 다프니스와 클로에 슈트 등,
라벨의 유명 관현악곡이 수록되어있다.
프렌치 에스쁘리 정도는 아니라서 약간은 심심하지만 일류 오케스트라인 콘서트헤보의
애잔한 선율이 흐르는 연주이다.
앙세르메가 지휘하는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의 1961년 녹음.
보면 볼수록 이 앙세르메의 프렌치 뮤직으로 묶은 데카 박스반의 가성비는 정말 놀랍다.
드뷔시와 라벨은 물론이고
생상, 비제, 프랑크에 이어 들리브, 랄로, 뽀레와 샤브리에 그리고 쇼숑과 루셀에 이어
듀카스와 오네게르, 마그나르드~ 관현악곡들이 스위스로망드의 일류연주로 소개된다.
혹시 이 음반이 없으시다면 무조건 하나정도 가지고 계시는게 좋겠다고 강추를 드린다~
이제 마지막으로 앙드레 클뤼탕스의 음반들
제일 먼저 클뤼탕스가 지휘하는 프랑스 라디오 푸종 국립오케스트라의 1953년 녹음.
엔젤 ANG 35102로 비록 모노임에도 이토록 특유의 빛깔을 잃지 않고
처연하면서 또하나의 요소인 우아한 아름다움을 간직한채 들릴수 있다는것이 놀랍다.
역시 같이 들어있는 쿠프랭의 무덤 또한 리고동의 도도한 물결에 감탄하면서 듣는,
멋진 강추 음반이다.
컨저바토리 오케스트라와의 1962년 녹음. 위는 오래된 LP이고 아래는 워너 재발매 CD,
요즘 워너의 재발매 덕분에 깨끗한 음질로 들을 수 있어서 좋다.
스테레오로 음반이 만들어 지면서 가장 득을 보는 음악가는 누구일까?
뤼시앵 테벳의 느릿한 호른, 그리고 여기 이 클뤼탕스가 지휘하는 소시에테 컨저버토리의 입체감은
역시 라벨과 드뷔시의 색채를 더욱 화려하게 입혀준다.
앙드레 클뤼탕스가 지휘하는 소시에테 컨저버토리의 1964년 녹음 알투스 반.
일본에서 발매된 이 음반은 1964.5.7일에 있었던 일본 공연, 도쿄 분카 카이칸 실황이다.
이 연주를 듣다 보면
컨저버토리가 만들어내는 음표 하나하나가 캔버스에 날아와서 색을 일으키며 착색하는 조화를 느낀다.
이 고급지고 간지러운 연주들~
내 눈앞에 펼쳐진 그 화려한 라벨의 색깔들을 손으로 잡으려 손을 뻗으면,
눈앞에서만 견고하게 보일뿐 그 색들은 바람처럼 내 손가락 사이를 슬며시 빠져나가면서 미련을 남긴다.
그리고 귀로 느낄때 저 라벨의 파반느는 하나의 입자로 형체가 있지만 뒤 돌아서서 잡으려 하면
파반느는 정형화 되지않는 파동이 되어버린다.
아무튼 죽은 왕녀가 마르가리타 공주이건 은근슬쩍 폴리낙 공작 부인이건
연주되는 음악이 피아노 버전이건 오케스트라 버전이건 무슨 말도 안되는 궤변을 늘어놓아서
양자역학의 입자이건 파동이건 간에 일단 시작되면 정신을 놓고 듣게 되는 멋진음악이 아닐수 없다.
[옮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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