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와 평강

내 주는 강한 성이요 - M.루터

여풍2 2018. 3. 29. 15:12

 


             


           Martin Luther (1483~1546) -

Ein feste brug ist unser Gott 


작사 / 작곡 : Martin Luther (1483~1546)


종교개혁을 하던 '마틴 루터'는 한때 깊은 실의에 빠진 적이 있었다.

종교개혁을 시작한 후 강한 도전과 위협을 받으면서 그는 좌절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실의에 빠져있는 '루터' 앞에 검은 상복을 입은 아내가 나타났다.

루터는 깜짝 놀라서 "누가 죽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의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 당신의 하나님이 돌아가셨어요.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당신이

        그렇게 절망할 리가 없지요"

아내의 그 말에 '루터'는 정신이 번쩍 났으며, 낙담해 있던 루터를 다시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렇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이렇게 다짐한 루터는 다시 일어나 죽음을 불사하며 종교개혁에 앞장섰다 

닭 우는 소리를 듣고 베드로가 깨달은 것처럼 잠자고 있던 신앙을 깨우는 아내의 말에 루터는 다시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는 곧바로 이 곡을 작곡했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지고 있다. 
 

루터가 한때 로마 카톨릭의 사제이자 신학자였지만 그는 부모로부터 음악적재능을 물려 받았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합창단에서 노래를 불렀으며 그는 플룻과 류트를 매우 잘 연주에 매우 능숙했다.

그는 카톨릭 사제로서 그레고리안 찬트의 시편곡과 미사곡을 자주 부르기도 했다.

또한 그는 성직자들만 읽을 수 있었던 라틴어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해 보급했으며,

단선율과 독일어 가사로 이루어진 코랄(Choral)을 만들었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코랄이 바로 <내 주는 강한 성이요>이다.

이 곡은 바흐의 칸타타, 베토벤의 캐논, 멘델스존의 교향곡, 막스레서의 오르간을 위한 코랄 환상곡에 쓰이기도 했다. 


이 곡의 가사는 시편 46편을 중심으로 만들었다고 하나, 동기부여 정도의 역할만 한 것으로 보인다.

가사의 내용이 시편 46편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 본래 4절까지 있으나 우리나라의 찬송가에는 3절까지 되어 있는데,

3절의 전반부는 원 가사의 3절에서, 후반부는 4절 후반부를 번역한 것이다.


이 찬송은 루터와 로마 가톨릭 교회와의 싸움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지어졌다.

1527년 독일 황제 찰스 5세는 교황 클레멘스 7세와의 싸움에 임했다.

찰스 5세는 독일 루터 교도들이 많이 포함된 군대를 이끌고 이탈리아를 침범하여 교황을 성안젤로 성에 가두고

가톨릭 교회를 야만적인 방법으로 약탈했다. 그리고 강제적으로 화해하도록 교황에게 압력을 가했다.

이 일이 있은 후, 찰스 5세는 화살을 루터교도들에게 돌리기로 작정하고 1529년 2월 스파이에르에서 국회를 소집했다.
국회는 루터교를 동조하던 제후들에게 명령하기를, 제후들이 금지시켰던 편협된 가톨릭 예배의식을 모두 허용하라고 했고,

고위 성직자들과 수도회의들은 그들이 소유했던 재산과 세입을 충분히 소유하도록 허락했다.

이로 인하여 루터교 제후들은 정식으로 항의하기에 이르렀고,

이 항의운동을 한 사람들을 ‘신교도’(Protest=ants)라고 부르게 되었다. 


루터의 뒤를 따르던 사람들은 오랜 싸움과 탄압에 지쳐서 실의에 차 있었다.

루터 또한 극심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이때 루터는 종교개혁의 의지를 북돋기 위해 전투명령과 같은 내용으로 이 찬송을 지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옛 원수 마귀는 이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 당하랴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 수밖에 없도다

힘 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하여 싸우네

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 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이 땅에 마귀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하나

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로 이기리로다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긴대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