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차별 경험 7% 뿐일까 일상에서 택시 노인 지나치고, 버스 "뒤로 가라" 지하철 역무원 "노인들이 꼭 이런다" 식당 가운데 앉으면 '가장자리 앉으라" 카페서 "노인 출입 금지입니다" 집에서 자식들이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 "엄마는 그런 거 몰라도 돼" 손자 결혼 등 집안일 결정에서 배제 전문가들 "노인 차별 막기 위한 교육 절실" 세계보건기구 '고령친화도시'도 대안 제시
━ 고령사회 진입 계기 노인 차별
지난달 말 오후 광주광역시 서구 한 대로변에서 임종애(81ㆍ여) 씨가 택시를 잡았다.
임 씨는 척추관협착증 수술을 받은 뒤로 지팡이에 의존해 손을 들기가 편하지 않다.
인도와 차도 턱에 서서 택시를 타려는 자세를 취했는데도 5대가 그냥 지나갔다.
할 수 없이 손을 들었다. 그래도 3대가 지나고 네 번만에 잡혔다.
같은 장소에서 승차 거부를 당한 정규향(81ㆍ여) 씨는 "택시 기사에게 왜 안 서냐고 따졌더니
‘노인들은 가까운 곳에 가는 경우가 많아 영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탑승을 안 시켜도 신고하지 않더라'며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더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박병선(75·서울 성북구) 씨는 종종 친목회를 하러 커피숍에 가는데, 종종 황당한 경험을 한다.
종업원·점장 할 것 없이 대놓고 반기지 않는다.
박 씨는 "한 번은 인원수보다 커피를 적게 시켜서 나눠 마시려고 컵을 달라고 했는데 주질 않더라.
종업원이 귓속말로 '노인이 많으면 젊은 사람이 안 온다'고 말하는데, 다 들리게 하더라"며
"'집에서 반려견 다음이 노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노인이 차별을 심하게 받는다"고 말한다.
급속한 고령화 때문에 지난해 11월을 기점으로
65세 이상 노인이 유소년(0~14세)보다 많은 '노인 추월 시대'에 접어들었다.
올 8월 주민등록 인구 기준으로 노인이 인구의 14%를 넘는 고령사회가 됐다.
한국 사회가 노인 추월 시대에 얼마나 준비돼 있을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5년 노인 1만 451명을 조사(노인실태조사)해보니 7.1%가 차별을 경험했다.
연령 차별이 심할수록 노인은 소외감이 심화해 자살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과연 7.1%만 차별을 경험했을까.
중앙일보는 경로당·탑골공원·병원 등지에서 노인 26명을 심층인터뷰 했다.
노인들은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차별을 받는다고 호소했다.
━ 가장 빈번한 차별은 교통수단
①버스에서 "집에나 있지 노인네가 뭐하러 다녀요."(버스 기사)
"기사님은 나중에 안 아플 줄 알아요?"(박 할머니)
박경희(81ㆍ여·서울 용산구) 씨는 얼마 전 당한 수모를 잊지 못한다.
다리가 아파서 천천히 버스에 올랐는데, 기사에게 이런 폭언을 당했다.
박 씨는 "노인이 타면 기사가 '천천히 올라오세요'라고 이해해야지, 심하게 얘기하는 기사가 있다.
말 한마디가 칼이 된다. 아직도 가슴에 상처로 남았다"고 말한다.
얼마 전에는 짐을 들고 앞자리에 앉았더니 버스 기사가 "짐을 갖고 저 뒤로 가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박 모(92·여·서울 성북구) 씨는 버스를 타면 문 앞에 선다. 좌석 앞에 서면 앉은 사람이 불편할 것 같아서다.
멀리서 불러서 자리를 양보하면 가서 앉는다.
최근 한 승객이 자리에 앉아 있는 초등학생들에게 “어르신께 자리 좀 양보해라”고 말하니
애들이 “우리도 돈 주고 탔는데요”라고 따지는 걸 보고 얼굴이 화끈거렸다고 한다.
②지하철에서 김상옥(84ㆍ여·서울 용산구) 씨는
한번은 반대방향 지하철 승강장에 들어갔다가 다시 들어가는데
카드가 안 찍혀서 역무원에게 문의했다가 봉변을 당했다. 역무원은 "노인들이 꼭 이런다"고 대놓고 무시했다.
김홍민(77·서울 성북구) 씨는 분당의 자녀 집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곤욕을 치렀다.
몇몇 젊은이에게 왕십리로 오는 분당선 열차를 문의했는데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다른 젊은이는 알려주긴 했지만 아주 간단하게 말하고 가버려서 도움이 안 됐다.
결국 분당선 타기를 포기하고 종전 노선(3호선)을 탔다.
③택시에서 김관애(87ㆍ여·서울 용산구) 씨는
동대문구 경동시장 같은 데서 다른 노인과 같이 서서 택시를 잡으면 그냥 지나간다고 한다.
지나치자마자 젊은 손님을 태워서 가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고 한다.
김 씨는 "한 명이 나와서 택시를 잡고 나머지는 숨어있다가 차가 서면 나와서 탄다"고 말한다.
김 모(89·여·서울 성북구) 씨는 혼자서 어디에도 갈 수가 없다.
김 씨는 "택시가 잡히지 않는다. 자녀들도 만나기 쉽지 않다. 몸이 아프기만 하니 집이 너무 더러워졌다"고 말한다.
━ 식당·공원·시장에서도 차별
성백엽(69ㆍ여·서울 용산구) 씨는 식당 가면 가운데를 피해서 구석에 앉는 게 버릇이 됐다.
가운데 앉으면 종업원이 와서 옆자리로 가라고 한 걸 몇 차례 경험하고 나서 처음부터 구석자리로 간다.
성씨는 "식당에서 노인들이 가운데 앉으면 영업에 지장이 있을까 봐 그러는 것 같다"며 씁쓰레했다.
김병국(82·서울 은평구) 씨는 "서울 강남의 한 제과점 2층의 카페에 올라가려는데
종업원이 '노인은 들어오지 마세요. 여기는 젊은 사람만 있어요'라고 막았다"고 말한다.
김 씨는 "공원 같은데 가서 몸이 불편해서 쩔쩔매면 '저런 늙은이가 왜 나와서 돌아다니면서 저래'라고 대놓고 무시한다.
하도 이런 일을 많이 당해 그냥 무시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22일 오후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만난 김 모(75) 씨는 10월 초 경험을 털어놓으며 분개했다.
손주들 추석빔 옷을 고르고 있는데 저쪽에서 중국인 관광객이 몰려왔다.
그러자 주인이 "할머니 이거 하실 거예요, 안 할 거예요?"라고 쏘아붙이더니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김 씨는 "노인들은 둘러보다 안 살 때가 많으니까 무시당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 동작 느리다고 차별당해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김주현 연구교수가 2015년 노인 27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한 70대 여성은 "노인네 그러면 냄새 같은 게 난다고 말하면서 주변에서 멀리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다른 70대 여성은 복지관에서 교육받을 때 차별 경험을 들었다.
그는 "노인은 동작이 느리잖아요. 그러면 이해하고 기다려 줘야 하는데
'아휴, 손 더 높이 해' 이런 식으로 말하고 짜증을 낸다"고 말했다.
━ 가정 차별
이모(95·여·서울 성북구)는 거동이 불편해 경로당 나들이밖에 못 한다.
그런데 같이 사는 자식한테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는다.
이 씨는 "내가 말을 잘 못 알아듣거나 행동에 문제가 있거나 (애들에게) 서운한 일이 생기면 그런다"며
"부모·자식 간에 못할 말이 뭐가 있겠냐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마음에 오래 담진 않으려고 하지만
그 말을 들을 땐 어찌나 서운한지…"라고 말끝을 흐렸다.
같은 경로당에서 만난 윤 모(75·여) 씨는 4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경로당 총무 일을 맡게 됐다.
그런데 자식들한테 "엄마는 왜 그런 곳에 다녀? 분별없는 사람 같다.
소속 그룹이 곧 지위를 말하는데, 경로당이 뭐냐"는 핀잔을 들었다.
그 뒤로 경로당 얘기를 안 꺼낸다고 한다. 남편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박형우(85·광주광역시 서구) 씨는 최근 손자(30)의 혼사 세부 사항을 결정하는 데서 배제됐다.
평소 가정의 중대사를 도맡아 결정해왔는데,
최근에는 손자가 "주례 없이 결혼식을 한다. 할아버지는 이런 결혼식을 잘 모르시지 않느냐"고 일방적으로 알려줬다.
박 씨는 "적어도 조언은 할 수 있는데 애초에 말을 안 하니 소외되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