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과 취미

[영화 속 클래식] 불멸의 연인

여풍2 2014. 2. 5. 22:58

 

버나드 로즈 감독

게리 올드만(베토벤), 이사벨라 로셀리니(안나 마리 에도디) 

영화는 베토벤의 유언장에 적힌 ‘불멸의 연인’을 찾아가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나의 천사이자 나의 전부이며 나의 분신인 그대. 잠시 시간을 내어 그대에게 몇 자 적어 보내려고 하오.

내일이 되어야 머물 곳을 알게 될 것 같소. 왜 이리 가슴이 아픈지 모르겠소.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이런 고통이 없을 텐데.”

베토벤이 죽은 후 그의 책상 서랍에서 발견된 편지이다. 편지에는 수신인의 이름은 없고 대신 ‘불멸의 연인에게’라고만 쓰여 있었다.

베토벤이 그토록 열렬하게 사랑했던 이 여인은 누구였을까? 버나드 로즈 감독의 <불멸의 연인>은 이런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영화는 베토벤이 죽은 후 그의 비서인 쉰들러가 베토벤과 친했던 여인들을 차례로 찾아나서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불멸의 연인>에는 수없이 많은 베토벤의 음악이 나온다.

베토벤의 장례식에는 <장엄 미사> 중 ‘키리에’, 줄리에타와 베토벤이 처음 만날 때는 ‘비창 소나타’,

베토벤이 줄리에타와 거리를 산책할 때는 ‘영웅 교향곡’, 줄리에타의 집에서 새로 도착한 피아노를 칠 때는 ‘월광 소나타’,

나폴레옹 군대가 만행을 저지르는 장면에서는 ‘운명 교향곡’,

전쟁 통에 아들을 잃고 슬퍼하는 에르도디 백작부인과 함께 연주할 때는 피아노 3중주 ‘유령’,

카를이 자살을 하기 위해서 산으로 올라가는 장면에서는 교향곡 7번,

어린 시절 아버지의 학대를 피해 집을 나온 베토벤이 숲으로 달려가는 장면에서는 ‘합창 교향곡’,

병석에 누운 베토벤이 요한나와 마지막으로 만날 때는 현악 4중주 13번 5악장 ‘카바티나’,

요한나가 눈물을 흘리며 베토벤이 보낸 편지를 읽을 때에는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의 2악장이 흐른다.

 프랑스 혁명이 몰고 온 새 시대의 이상에 잔뜩 고무된 상태에서 쓴 ‘영웅 교향곡’은 교향곡의 역사에 일대 ‘혁명’을 가져온 작품이다.

여기서 베토벤은 고전주의를 지나 낭만주의로 넘어가는 시대를 풍미했던 베토벤의 풍운아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교향곡 1번과 2번이 선배들의 전통을 충실히 따르며 교향곡 작곡가로서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 본 작품이라면, 3번 ‘영웅 교향곡’은

그 발판 위에서 새로운 변화,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독창적이고 파격적인 실험을 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영웅 교향곡’에 이르러 

 교향곡 작곡가로서 베토벤의 독창성이 찬란하게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귀가 들리지 않자 베토벤이 피아노 뚜껑에 귀를 대고 울림으로 연주 상황을 체크하고 있다.


이런 독창성은 그의 마지막 피아노 협주곡인 ‘황제’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영화에서는 베토벤과 에르도디 백작부인이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이 곡의 1악장이 나온다. 실제의 에르도디 백작부인은 병약했지만 영화에서는 매우 자유분방하고 도발적인 캐릭

터로 나온다.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는 베토벤이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연주하다 실수를 해 관객들의 야유를 받자 과감하게

무대 위로 올라가 그를 데리고 나오는 당찬 여성으로 그려진다. 이 장면에서 베토벤이 연주하는 ‘황제’의 웅장한 곡상에 용기를 얻

어서 그렇게 당찬 행동을 했던 것일까. 그녀의 행동은 ‘황제’의 도입부만큼이나 도발적인 것이었다.

베토벤은 모두 5개의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했다.

초창기 협주곡들은 선배인 모차르트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보이지만 세 번째 협주곡부터는 ‘혁신가’인 베토벤의 개성이 드러난다.그중에서도 마지막 곡인 ‘황제’는 교향곡과 같은 스케일을 자랑한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이 협주곡은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하는 화려하고 장대한 서주로 시작한다. 협주곡의 경우, 오케스트라가 먼저 주제를 제시하고, 이어서 독주악기가 등장하는데, ‘황제’는 피아노가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화음에 맞추어 화려하고 웅장한 서주를 연주하는 것이 특징이다. 1악장의 끝부분에 독주악기가 혼자 연주하는 카덴차가 나오지만, ‘황제’에는 이런 독립적인 카덴차가 없다. 대신 베토벤은 첫머리에 카덴차에 버금가는 화려한 서주를 두어 관객들의 주의를 단번에 사로잡는 효과를 노렸다.

이어지는 2악장은 화려하고 장엄한 1악장과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베토벤의 곡 중에서 가장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곡인데, 듣고 있으면 베토벤의 협주곡이 아니라 쇼팽의 로망스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베토벤에게 이렇게 애절하고 달콤한 로맨티시즘이 있었나 놀라울 정도다. 그 로맨틱한 선율을 배경으로 베토벤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나의 천사이자 나의 전부이며 나의 분신인 그대. 잠시 시간을 내어 그대에게 몇 자 적어 보내려고 하오.” 베토벤이 죽은 후에야 자기에게 보낸 편지를 읽게 된 요한나. 한때 가없는 열정과 애증의 대상이었으나 이제는 아릿한 아픔과 회한으로 가슴에 남은 사람. 편지를 읽으며 요한나는 눈물을 흘린다.

진회숙(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 

  Krystian Zimerman/Leonard Bernstein/WPh - Beethoven, Piano Concerto No.5

Krystian Zimerman, piano

Leonard Bernstein, conductor

Wiener Philharmoniker

Grosser Saal, Musikverein, Wien

198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