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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 참판 고유(高裕)와 정부인(貞夫人) 박씨

여풍2 2020. 7. 23. 09:33

*이조 참판 고유(高裕)와 정부인(貞夫人) 박씨*

 


조선 숙종 때 아직 나이가 스물이 되지 않고 허름한 옷 차림의 젊은 청년이

경상도 밀양 땅에 나타났는데 그의 이름은 高裕(고유)입니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쳐 물리친 고경명의 현손이었지만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서 친족들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외롭게 떠도는 처지였습니다.

밀양 땅에 이르러서는 생계를 위해서 남의 집 머슴을 살게 되었지만 그러나 비록 머슴살이를 하고, 학문이 짧아서 무식하여도 사람됨이 신실하였고, 언변에 신중하고 인격이 고매하여서 그를 대하는 사람마다 그를 존중해 주었으며, 사람들은 그를 "고 도령"이라고 불러 주었습니다.

그 마을에 박 좌수(座首)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관청을 돕는 아전들의 우두머리였지만 박봉이었으며, 중년에 아내를 상처를 하고

가세가 매우 구차하였지만 효성스런 딸 하나가 정성껏 그 아버지를 모셨으므로 가난한 가운데도

따뜻한 밥을 먹으며 살고 있었습니다.

고유(高裕)는 그 마을에서 달을 넘기고 해를 보내는 가운데

그 처녀가 효성이 지극하고, 현숙하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고, 먼 빛으로 아름다운 그 처녀를

바라보면서 연모의 정을 품게 되었답니다.
"내 처지가 이러하거늘 그 처녀가 나를 생각이나 해 줄까?

그 처녀와 일생을 함께 한다면 참 행복할텐데... 벌써 많은 혼사가 오간다고 하는데...

한 번 뜻이나 전해보자! 그래, 부딪쳐 보자!"

노을이 곱게 밀려 드는 어느 날,

고유는 하루의 힘든 일을 마치고 박 좌수의 집으로 찾아 갔습니다.
본래 박 좌수는 장기를 매우 좋아 했으므로 우선 장기판부터 벌여놓고 고유가 젊은 가슴을 긴장시키면서 실없는 말처럼 가슴에 품었던 말을 꺼냈습니다.
"좌수 어른, 장기를 그냥 두는 것보다 무슨 내기를 하는 것이 어떠리까?"
"자네가 그 웬 말인가, 듣던 중 반갑구먼. 그래 무엇을 내기하려나?"

고수의 말을 좌수는

"이웃 집에서 빚어 파는 막걸리나 파전 내기라도 하자는 건가" 생각하면서 웃어 넘겼습니다.
고수가 조심스레 말했습니다.
"이왕 할 바에는 좀 큼직한 내기를 하시요. 이러면 어떨까요?
만약 제가 지거든 좌수댁 머슴살이를 삼 년 살기로"

좌수의 귀가 솔깃하였습니다.
"내가 장기를 이기면 댓가 없이 머슴을 3 년을 부린다..."
"그럼 만약 내가 진다면 뭘 해줄까?"
"만약 좌수님이 지시거든 내가 좌수님 댁 사위가 되기로요!"

박 좌수는 그제서야 고유의 말이 뼈 있는 말임을 알아 차리고 냅다 소리 쳤습니다.
"에끼~ 네 이 놈! 내 금옥 같은 딸을 자네 같은 머슴에게 주겠다던가?
어찌 자네 따위에게 주려고 빗발치는 청혼을 물리치고 스무 해를 키웠다던가?"
고유는 박 좌수에게 무안을 당하고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되돌아 갔습니다.

고유가 돌아간 뒤에 박 좌수와 고유가 말 다툼하는 것을 방 안에서 듣게 된 딸이 물었습니다.
"아버님께서 무엇 때문에 고 도령을 나무라셨습니까?"
"그 군정(軍丁)이 글쎄 나더러 저를 사위를 삼으라는구나. 그래서 내가 무안을 주었지..."
박 좌수는 다시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말하면서 딸의 고운 얼굴을 바라보 았답니다.
그런데 박 좌수의 딸이 정색을 하며 말했습니다.
"아버님, 고 도령이 어때서 그러셨어요. 지금은 비록 빈천하지만 본래는 명문 사족(士族)이었고, 또 사람이 듬직하고, 그렇게 성실한 걸요."

그런데 소문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모여 들어 박 좌수에게 둘이 혼인을 하도록 권했습니다.
"아니, 따님도 싫어하지 않는데..."
"둘이서 좋다면 천생 연분인데..."
마치 자신들 집 안의 일인 양 여럿이 우겨대자 박 좌수도 끝내 반대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물 한 사발 떠 놓고 두 젊은 청년과 처녀의 혼례가 이뤄졌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모은 돈으로 술 한 동이를 받아놓고 고기와 과일을 먹고, 마시면서

그들 한 쌍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첫날밤에 신부가 지긋이 물어봅니다
"서방님! 혹시 글을 아시나요?"
"부끄러우나 배우지를 못했소."
"글을 모르시면 어떡 하시나요?

대장부가 글을 알지 못하면 삼한 갑족(三韓甲族)이라도 공명을 얻을 길이 없는 법입니다."

새 색시는 고유의 눈을 빤히 바라보다가 비장한 각오로 말했습니다.
"그럼 우리 이렇게 합시다! 앞으로 십 년을 작정해서 서로 이별하여 당신은 글을 배워 과거에

오르기로 하고, 저는 길삼을 하여 세간을 모으도록 해요. 그렇게 한 뒤에도 우리들의 나이가

삼십이 되지 않으므로 결코 늦은 나이가 아닙니다.
이제 사랑하는 우리 부부가 헤어지는 것은 가슴이 쓰라리지만 훗 날을 위해서 고생하기로 해요."
그는 새 색시의 두 손을 꼭 잡았습니다.

긴 세월 접어 두었던 학문의 길을 깨우쳐 준 새 색시가 어찌 그리도 사랑스러운지!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 법!
아직도 동이 트지 않은 새벽녘, 고유는 짧은 첫날 밤이 새자

아내가 싸준 다섯 필 베()를 짊어지고 입지출관향(立志出關鄕)하였습니다.
고유는 초야를 치르고 떠나서 어느 시장에서 베를 팔아 돈으로 바꾸고 스승을 찾아 나섰습니다.
고유는 돈을 아끼려고 남의 집 처마 밑에서도 자고, 절취부심을 하면서 합천에 도착했읍니다
그곳에서 고유는 인품과 학문이 높아 보이는 스승님인 듯한 사람에게 예를 올리고

글을 가르쳐 주십사 청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어린 학동들과 함께 천자문(千字文)을 처음 배웠습니다.

처음은 사람들의 비웃음 속에서 시작했으나

오, 륙 년이 지난 후에는 놀라움 속에서 고유의 글은 실로 대성의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가르치는 스승도 탄복하면서,
"네 뜻이 강철처럼 굳더니 드디어 학문이 일취월장(日就月長)하였구나!
너의 글이 그만 하면 족히 과장에서 독보 할만 하다. 이제 나로서는 더 가르칠 것이 없으니

한양에 올라가 과거나 보도록 하라"고 말하고 고유를 떠나 보냈습니다.

고유는 해인사(海印寺)로 가서 방 한 칸을 빌리고 사정을 말하여 밥을 얻어 먹으면서

상투를 매어 달고 다리를 찌르며 글을 더 익혔답니다.

어느 해, 드디어 기회가 찾아 왔는데

숙종 대왕이 과거 시험 정시(庭試)를 보는 영을 내렸습니다.
뜻은 헛되는 법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고유는 처음 치르는 과거에서 장원 급제를 하여 근방에

그 이름이 휘날렸습니다.
그리하여 고유는 곧 가주서(假注書)로 시립(侍立)하여 왕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왕을 가까이 모시던 어느 날!
때 마침 소나기가 쏟아져 처마에 그 소리가 요란했으므로 왕은 대신들의 말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숙종 대왕은 "신료들 소리가 빗 방울 소리에 방해되어 알아 들을 수 없구나" 하고 혼

잣 말을 하였는데 그것을 고유는 초지에 받아 쓰기를

'처마에서 나는 빗 방울 소리가 귓 가에 어지러우니 의당 상감께 아뢰는 말은 크게 높여라' 하니

주서들이 모두 글 잘 한다고 칭찬하였습니다.

숙종 대왕이 "그 쓴 글을 가져오라" 하여 본 다음에 크게 기뻐하면서

"너는 누구의 자손이냐?" 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고유가 대답하기를 "신은 제봉 고경명(霽峰 高敬命)의 현손(孫)이옵니다."

그 말에 숙종 대왕이 기뻐하며

"허허, 충성된 제봉이 손자도 잘 두었군. 그래, 고향 부모께서는 강령하시더냐?
"제가 일찍 부모를 여의었습니다."
"그럼 처자가 있겠구나."
"예, 있아옵니다."

그 날 밤, 숙종 대왕은 고유를 따로 불러서 그의 사연을 사적으로 듣고 싶어 했습니다.
고유는 숙종 대왕께 감히 기망 할 수 없어 그가 떠돌아 다니다가 밀양 어느 마을에서

머슴을 살게 된 이야기며, 거기서 장가 들어 첫 날 밤에 아내와 약속하고 집을 떠나

십 년 동안 공부를 한 그의 이력을 모두 소상히 말했습니다.
"허허... 그러면 십 년 기간이 다 되었으니 너의 아내도 네가 과거에 급제한 걸 알겠구나."
"아마 모를 겁니다. 과거에 오른 지가 며칠이 못되 아직 통지를 못했습니다"
"음, 그래?"
숙종 대왕은 그 자리에서 이조판서를 불러들여

"현 밀양 부사(密陽府使)를 다른 고을로 보내고, 고유를 밀양 부사를 임명하라" 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고유를 바라보면서,

"이제 내 너를 밀양 땅으로 보내니 네가 예전에 살던 마을에 가서 아내를 보되

과객처럼 차리고 가서 아내의 마음을 떠 보아라. 과연 수절하며 기다리고 있는지 변심했는지,

그 뒷 이야기가 나도 궁금하구나!" 하면서 크게 웃었습니다
고유는 숙종 대왕께 부복사은하고 물러 나왔습니다.
그는 숙종 대왕이 명한 대로 신연하인(新延下人)들은 도중에서 떼어놓고

홀 몸으로 허술하게 차린 다음 자기가 머슴을 살던 예전 마을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예전 집 터에는 잡초만 무성 할 뿐이었고,

사람의 그림자도 없이 버려진 지 수 년의 세월이 지난것으로 보여 고유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습니다.
"못 믿을 건 여심이라던가? 첫 날 밤에 맺은 굳은 언약이 가슴 속에 사무치건만..."
그런 생각을 하며 마침 가까이 소를 끌고 가는 노인을 보고 박 좌수 집 형편을 물었습니다.

그 노인은 그가 고유인 줄은 못 알아보고 그가 아는 대로 일러 주었습니다.
"박 좌수 어른이요? 그러니까, 그가 3 년 전에 병으로 죽었지요.

그에겐 딸이 하나 있었는데 벌써 10 년 전에 이 마을에서 머슴을 살던

고도령에게 시집을 갔는데, 웬 일인지 첫 날 밤에 신랑이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혼자 되었지만.

신기하게도 첫 날 초야에 유복자(遺腹子)가 하나 생겼어요. 참 똑똑하지요.
그 여자는 현숙하고도 어찌나 부지런한지,

남편이 없는데도 크게 가산을 일으키더니 땅과 살림이 무수하고,

저 건너 산 밑에 백여호가 넘는 대촌을 이뤄 놓았는데 모두 그 낭속(廊屬)이요." 하였습니다.

그 노인의 말에 고유는 너무도 기뻤습니다. 아내가 가산을 크게 이뤄놓은 사실이 아니라

사랑의 언약을 지키면서 자신을 기다려 줬다는 사실 때문에...
고유는 노인에게 사례하고 자신을 따르는 군속들에게는 주막에서 대기하도록 하고

어슥 어슥 어둠이 마을을 감싸는 무렵, 사람들이 가르쳐 주는대로 제일 큰 집 대문을 열고 들어

가서 구걸하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얻어 먹는 인생이 한 그릇 밥을 바라고 왔소이다."

사랑방에서 늙은 스승한테 글을 배우고 있던 소년이 그 소리를 듣고 나와서 말했습니다.
"들어 오세요. 손님."
고유는 그가 아들인 줄 알면서도 짐짓 모를채 말했습니다.
"아니 처마 밑에서라도 좋네."
"아니 주저 말고 어서 올라 오세요. 우리 집에서는 과객을 절대 그냥 보내지 않습니다."
소년이 정중히 굳이 올라 오라 하였으므로 고유는 못이기는 체 올라가 웃목에 쭈그리고

앉았습니다.
"저, 그런데 손님의 성 씨는 무엇인지요?"
소년이 구유에게 물었습니다.
"허~ 비렁뱅이에게 무슨 성이 있겠나 남들은 고가라고 하지만."

고유가 "성 씨가 고 가" 라고 하자 소년의 눈이 더욱 빛났습니다.
"저 그럼 손님 처 가의 성 씨는요?"
"10 년 전에 장가 들어 그도 첫 날 밤을 지내고는 헤어졌으니, 무슨 처 가랄 게 있겠는가?

그 댁호야 박 좌수 댁이었지만..."

그 때 박 씨 부인이 사랑에 웬 과객이 들었는데 성이 고 씨라 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방에서 아들이 나왔습니다.
아들의 두 눈은 기쁨과 설렘으로 어머니의 눈 빛을 확인했습니다.
박 씨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들의 손을 잡고 사랑방으로 들어 갔습니다.
비록 10 년을 떠나 살았지만 한 눈에 알 수 있는 그립던 남편의 모습이라

너무도 기쁜 나머지 반가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오래 그리던 회포에 쌓인 이야기를 꺼내 놓으며 열 살 먹은 아들을 남편에게 인사를 시켰습니다.

고유는 그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여전히 힘 없는 소리로 그의 그간 지난 일을

꾸며대며 말했습니다.
"그렇게 집을 떠나서는 뜻을 이루어 보려 했으나, 운수가 사나워 베를 판 돈은

도적을 만나 빼았겨 버리고, 이리, 저리 유랑 걸식하여 다니자니 글을 배울 힘도 나지 않았거니와, 혹 서당이 있어 글을 배우고자 하여도 돈이 없으니 가르쳐 주려는 사람도 없어서 십 년 세월만

허비하고 글은 한 자도 배우지 못하고 이렇게 비렁뱅이가 되었오."

그러나 부인은 비렁뱅이 남편을 조금도 원망하거나 민망해 하는 빛이 없이

"사람의 궁달(窮達)은 제 운수에 있으니 그간 벼로도 수 천 석 추수를 장만해 놓았으니

무슨 걱정이 있겠소?"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좋은 옷과 음식을 들여 놓으며 도리어 남편을 위로해 주었습니다.

고유는 음식 상을 앞에 두고 부인이 그 동안 정성껏 준비했던 옷으로 갈아 입었습니다.
그런데 부인의 눈에 남편의 겉 옷은 거렁뱅이 옷 차림이었지만 속 옷은 새하얗고,

께끗한 것에 놀랐습니다.
더구나 남편의 허리 춤에는 관리들이 차는 명패가 흔들 거리고 있었으니...

그래서 부인이 물었습니다.
"서방님! 사실대로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자 고유가 말했습니다.
"나와 동행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도 불러들여 함께 먹어야 하겠소."
그래서 부인이 하인을 시켜 "그 사람을 사랑방으로 모셔 들이라" 하였습니다.
하인이 나가서 문 밖에 서 있는 과객을 보고 "안으로 들어 가시자" 고 하자,

그는 그 말을 들은 척도 않고 대로에 나가더니 품에서 호적(胡笛)을 꺼내어 소리 높이 불었습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수 십 명의 관속들이 달려와 집 안으로 들어가서 도열하였습니다.
그리고 박 씨 부인을 향해 문안 인사를 아뢰느라 야단이었습니다.

문 밖에 서 있던 과객은 고유의 지시를 받은 군관이었습니다.
고유는 그제서야 부인에게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우리 부부의 사연을 들으신 숙종 대왕께서 지시한 것이라오.
당신의 마음을 떠보려 한 것이 결코 고의가 아니었소."
군속이 관복을 가져오니 고유가 갈아입고 박 씨 부인 앞에 당당하게 서게 되니

인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이튿날부터 3 일간 크게 잔치를 베풀어 동리의 남녀노소를 청하여 실컷 먹였습니다.
박 씨 부인은 그 동안 모아 놓은 전답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남편에게 처음으로 글을 깨우쳐 주신 서당의 스승과 해인사의 중들에게도

많은 보은의 폐백(幣帛)을 보냈습니다.

고유는 얼마 안 있어 다시 벼슬이 경상 감사에 올랐다가

이조 참판에 이르렀고, 숙종 대왕과 영조 임금, 그리고 정조 대왕 등 3 대를 모시면서

그 영화로움이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부인도 나라에서 지정하는 정부인(貞夫人)이 되어 나이 늦도록 행복을 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