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과 취미

레온카발로 오페라 ‘팔리아치’(Leoncavallo, Pagliacci)

여풍2 2019. 4. 30. 10:49

Leoncavallo, Pagliacci

레온카발로 ‘팔리아치’

Ruggero Leoncavallo

1858-1919

Canio (Pagliaccio): Plácido Domingo

Nedda (Colombina): Teresa Stratas

Tonio (Taddeo): Juan Pons

Peppe (Arlecchino): Florindo Andreolli

Silvio: Alberto Rinaldi

Coro e Orchestra del Teatro alla Scala

Conductor: Georges Prêtre

Film by Franco Zeffirelli

La Scala Teatro 1981

 

Georges Prêtre/La Scala Teatro 1981 - Leoncavallo, Pagliacci

 

“배우의 눈물은 거짓이라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하지만 극본을 쓰는 작가는 관객 여러분에게 인생의 한 단면을 보여 드리려고 지난날 자신이 직접 체험한 일들을 무대 위에 옮겨 놓는답니다. 광대들도 살과 뼈로 이루어진 인간이며, 여러분과 더불어 이 세상에서 기쁨과 슬픔을 느끼며 살고 있다는 걸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한 마을에서 유랑극단 공연의 막이 오르기 직전, 꼽추 광대 토니오(바리톤)가 등장해 관객들에게 이렇게 노래합니다. 바로 루제로 레온카발로의 오페라 <팔리아치>의 프롤로그입니다. ‘팔리아치’(pagliacci)는 이탈리아어 ‘팔리아초’(pagliacco, 광대)의 복수형입니다. 이 오페라의 제목은 유랑극단 광대들을 뜻하죠.

아침에 부르는 세레나데 ‘마티나타’의 작곡가로 알려져 있는 루제로 레온카발로는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작곡한 피에트로 마스카니와 함께 이탈리아 베리스모(verismo, 1890-1910년 사이 이탈리아를 지배했던 사실주의) 오페라를 대표하는 작곡가입니다. 나폴리에서 태어나 산 피에트로 음악원에서 공부한 레온카발로는 문학에도 조예가 깊어 <팔리아치>를 비롯한 자기 오페라의 대본들을 직접 썼고, 이탈리아 최고의 대본가로 그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1892년 밀라노의 테아트로 달 베르메 극장에서 초연된 <팔리아치>가 큰 성공을 거둔 뒤 1897년에 <라 보엠>을 발표했지만, 이 작품은 비평가들에게 대단한 찬사를 받고서도 푸치니 <라 보엠>의 대중적인 매력에 밀려 아쉽게도 빛을 잃어 갔습니다.

광대의 눈물은 거짓이 아니다

<팔리아치>는 19세기 후반, 이탈리아 칼라브리아 지방의 몬탈토에서 한여름 성모승천대축일에 일어나는 치정 살인극을 액자극(극 속에서 공연되는 또 하나의 극) 형태로 보여줍니다. 먼저 짧은 전주곡이 연주된 뒤, 꼽추 광대 토니오가 관객들에게 위에서 소개한 프롤로그의 내용을 담은 바리톤 아리아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 신사숙녀 여러분!”을 들려주지요. 앞으로 보게 될 이 <팔리아치>라는 연극이 현실을 토대로 한 삶의 일부임을 일깨우는 내용입니다.

1막이 시작되면, 오늘 저녁 유랑극단의 연극을 보려는 마을사람들이 모여들어 들뜬 기분으로 떠들어댑니다. 단장 카니오는 사람들 앞에 나서서 “밤 11시부터 연극이 시작되니 모두 와 달라”고 인사하죠. 한여름 이탈리아 남부에서는 해가 아주 늦게 지기 때문에, 완전히 날이 어두워지길 기다려 연극을 시작한답니다. ▶카니오의 슬픔과 좌절을 연기하는 플라시도 도밍고

단장의 젊은 아내 네다가 마차에서 내립니다. 꼽추 토니오가 달려가 손을 잡아주려 하자 카니오는 그를 때려 쫓아버리죠. 공연 시작 전에 한 잔 하자며 카니오가 단원들을 데리고 주막으로 갈 때 토니오는 따라가지 않고 네다 곁에 남아 있습니다. 누군가가 “네다를 유혹하려고 그러느냐”고 농담으로 토니오에게 묻자 단장 카니오는 “그런 농담은 내 앞에선 안 하는 게 좋아” 하며 화를 냅니다. 마을사람들은 즐겁게 ‘종의 노래 ’를 합창합니다.

네다는 질투심이 지나친 남편 카니오에게 두려움을 느낍니다. 날아가는 새를 바라보며 네다는 자신도 그 새들처럼 자유롭게 날기를 희망하지요(아리아 ‘새들은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그때 토니오가 다가와 네다에게 열렬하게 사랑을 고백합니다. 네다는 냉정하게 그를 거절하죠. 네다에게 욕망을 품은 토니오가 완력까지 사용하려 하자 네다는 채찍으로 그를 때려 쫓아버립니다. 엄청난 모욕감을 느낀 토니오는 네다에게 복수를 다짐합니다.

한편, 네다에게 반한 마을 청년 실비오는 네다를 찾아와 함께 도망가자고 간청합니다. 네다도 그에게 빠져 있지만, 당연히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뛰지요. 하지만 실비오의 간곡한 설득에 결국 마음이 움직여 네다도 그에게 사랑을 맹세하며, 오늘밤 공연이 끝나면 그와 함께 도망치기로 약속합니다. 이들을 숨어서 훔쳐보던 토니오는 단장 카니오를 데려와 그 밀회 현장을 보여줍니다. 카니오는 실비오를 그 자리에서 죽여버리려 하지만 “곧 공연이 시작되니 참으라”고 다른 단원 페페가 만류하는 가운데 실비오는 도망칩니다.

분노와 절망에 휩싸인 카니오는 연극 공연을 위해 스스로 분장을 하면서 처절하고 드라마틱한 아리아 ‘의상을 입어라(Vesti la giubba)’를 부르지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하지만 공연은 해야지... 네가 사람이냐? 넌 광대다! 이제 공연이 시작된다... 의상을 입어라. 그리고 얼굴에 분칠을 해라. 관객은 돈 내고 왔으니 웃고 싶어 한다. 알레키노가 콜롬비나를 네게서 빼앗아 가더라도, 웃어라, 광대여! 슬픔과 고통을 감추고...” 이 아리아 뒤에 극적인 분위기의 간주곡(인테르메초)이 연주되는 동안 무대는 2막으로 전환됩니다.

Luciano Pavarotti - Vesti la giubba (의상을 입어라)

현실과 극이 혼동되는 극중극 오페라

2막에서 유랑극단 배우들은 이탈리아 전통희극 코메디아 델아르테 형식으로 ‘집에 온 남편’이라는 연극을 공연합니다. 그러니까 오페라 가수들 대부분이 1막에서는 현실의 인물로, 2막에서는 극 속의 배우로 출연하는 것이죠. 남편 팔리아초(카니오)가 외출한 사이 여주인공 콜롬비나(네다)에게 하인 타데오(토니오)가 사랑을 고백했다가 무안을 당합니다. 콜롬비나는 젊은 광대 알레키노(페페)를 집에 불러 저녁을 함께 먹고 그와 사랑을 나누다가 하인 타데오(토니오)의 고자질로 남편 팔리아초에게 들키게 됩니다. 집에 돌아온 팔리아초가 “누구와 함께 식사를 한 거냐”고 추궁하자 아내 콜롬비나는 타데오 핑계를 댑니다.

분노와 질투로 이성을 잃은 상태인 카니오는 아내 네다를 상대로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고 있다가, 현실과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자 현실과 극을 혼동하고 맙니다. 그래서 격한 분노를 표출하자 속사정을 모르는 관객들은 연기를 잘한다고 환호하죠. 눈치를 챈 네다는 남편 카니오가 이성을 되찾고 배우로 돌아오게 하려고 무진 애를 쓰지만 남편 카니오는 네다에게 “버려진 고아를 데려다 내 모든 사랑을 쏟아 키웠더니 그 보답이 이런 배신이냐”고 절규하며, 바람피운 상대의 이름을 대라고 다그칩니다. 그러자 네다도 참을성을 잃고 “죽어도 말 못한다”고 대들죠. 결국 카니오는 분을 못 이겨 네다를 칼로 찔러 죽이기에 이릅니다. 이 장면에서 카니오에게 슬쩍 칼을 건네는 인물이 바로 꼽추 토니오입니다. 네다에게 모욕당한 복수를 이런 식으로 한 셈이죠. 실비오가 네다를 구하러 무대로 달려 나오자 카니오는 그의 가슴에도 칼을 꽂습니다. “코미디는 끝났다(La commedia è finita!)”라는 대사와 함께 막이 내립니다. ◀역대 최고의 카니오로 손꼽히는 엔리코 카루소. 광대 옷을 입고 북을 치는 모습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되어 있다.

궁정이나 상류사회의 화려함을 떨쳐버리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현실을 오페라 무대 위에서 보여주려 했던 베리스모 작가와 작곡가들의 의지가 극적인 재미와 탁월하게 어우러진 베리스모 오페라 최고의 걸작입니다.

카니오 역을 노래한 최고의 가수로는 여전히 엔리코 카루소가 꼽힙니다. 그라모폰 축음기가 유명하게 만든 최초의 성악가 카루소의 ‘의상을 입어라’는 음반 판매 사상 최초로 1백만 장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카루소의 명성을 계승한 마리오 델 모나코, 그리고 주세페 디 스테파노,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등의 테너가 오늘날까지 최고의 카니오로 알려져 있습니다.

Leoncavallo, Pagliacci

Canio (Pagliaccio): Carl Tanner

Nedda (Colombina): Kristin Lewis

Tonio (Taddeo): Dario Solari

Beppe (Arlecchino): Francesco Marsiglia

Silvio: Simone Piazzola

Coro del Teatro di San Carlo

Orchestra del Teatro di San Carlo

Conductor: Donato Renzetti

Teatro di San Carlo 2011

이전 어느 공연에서도 볼 수 없는 아주 독특하게 각색한 공연입니다. 프렐류드 도입부부터 오케스트라의 전주곡이 나오기 전 피아노 독주에 맞추어 곡예를 보여주는 장면을 따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2막 앞부분에서 이러한 장면이 상당 시간 연출되는데, 이 작품이 유랑극단을 소재로 삼은 데에 따른 연출자의 의도적 배려인 듯합니다. “무대에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고 한 리뷰 그대로 무척 흥미로운 공연입니다.

추천 음반 및 영상물 (카니오 - 네다 - 토니오 순)

1. 마리오 델 모나코, 가브리엘라 루치, 코널 맥닐 등. 프란체스코 몰리나리 프라델리 지휘,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1959년 녹음, Decca (음반)

2. 루치아노 파바로티, 미렐라 프레니, 잉그바르 빅셀 등. 주세페 파타네 지휘, 내셔널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 1988년 녹음 (음반)

3. 플라시도 도밍고, 테레사 스트라타스, 후안 폰즈 등. 조르주 프레트르 지휘, 라 스칼라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연주, 프랑코 제피렐리 연출, 1984년. (DVD 한글 자막)

4. 블라디미르 갈루진, 마리아 바요, 카를로 구엘피 등. 헤수스 로페스 코보스 지휘, 마드리드 왕립극장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잔카를로 델 모나코 연출, 2007년 실황 (DVD)

이용숙 (음악평론가) 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문과 강사를 역임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및 음악학 수학, 서울대 공연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연합뉴스 오페라 전문 객원기자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 <오페라, 행복한 중독>, <사랑과 죽음의 아리아> 등이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주제 전체>문화예술>음악>극음악/오페라 2011.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