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美훈련기 사업자 선정 코앞에 두고 방산비리 적폐 수사
KAI, 수사받고 사장 바뀌며 사업 올스톱… 주요 혐의 1심서 무죄
18조원 규모의 미 공군 차기 고등훈련기(APT·Advanced Pilot Training) 사업
수주 실패 소식이 전해진 28일 KAI(한국항공우주산업)는 충격에 빠졌다.
KAI는 단 네 문장짜리 입장문만 낸 채 함구했다. 이날 열린 회사 창립 행사도 초상집 분위기였다.
사업 수주를 내심 기대해 온 방위사업청을 비롯한 정부 당국도 당혹스러워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미 록히드마틴과 공동 개발한 T-50 훈련기 모의 장비가 지난 5월 22일 부산 벡스코의 아프리카개발은행(AfDB) 연차총회 행사장에 전시돼 있다.](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809/29/2018092900198_0.jpg)
탈락 이유는 경쟁사인 보잉과의 현저한 입찰 가격 차이였다. 하지만 KAI에 대한 대대적 검찰 수사와 잇단 항공
사고, 입찰 준비 부족 등 내부적 요인이 컸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에선 '예상된 탈락'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KAI 주가 30%나 폭락
이번 사업은 미 공군의 노후 훈련기 T-38을 대체해 신형 훈련기 350대를 도입하는 사업이다.
◇KAI 주가 30%나 폭락
이번 사업은 미 공군의 노후 훈련기 T-38을 대체해 신형 훈련기 350대를 도입하는 사업이다.
KAI는 T-50 초음속 훈련기 기술을 제공한 미 록히드마틴사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미 보잉사·스웨덴 사브사
컨소시엄과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이번에 선정되면 미 해군 훈련기, 미군 가상 적기, 제3국 훈련기 등 총
1000여 대, 100조원 규모의 추가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고 KAI 측은 홍보해 왔다. 이날 KAI 주가는 전날
보다 29.8%(1만4900원)나 떨어진 3만51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탈락의 충격파가 그만큼 컸던 것이다.
미 공군은 작전요구성능(ROC), 운용 효율성, 비행 안정성, 합리적 가격 등을 중심으로 평가했는데,
미 공군은 작전요구성능(ROC), 운용 효율성, 비행 안정성, 합리적 가격 등을 중심으로 평가했는데,
가격이 기종 선정을 좌우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실제로 이날 KAI가 탈락한 외형상 가장 큰 이유는 현격한
T-50이 개발된 지 10년이 넘은 데 비해 보잉 BTX는 최신 기술로 개발된 기종이라는 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전해졌다.
◇대규모 검찰 수사, 보은 인사 문제
◇대규모 검찰 수사, 보은 인사 문제
하지만 업계에선 가격 외에 다른 변수들이 KAI 탈락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현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7월 시작된 KAI에 대한 방산 비리 검찰 수사의 후유증이 컸다.
정부는 방산 비리를 4대 강, 자원 외교와 묶어 '사자방'이라고 부르며 대대적 적폐 수사를 벌였다.
정부는 방산 비리를 4대 강, 자원 외교와 묶어 '사자방'이라고 부르며 대대적 적폐 수사를 벌였다.
방산업체 가운데 KAI가 첫 타깃이 돼 3개월가량 수사가 계속됐다. 분식회계 논란이 크게 불거졌고 당시 김인식
부사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KAI 내부에선 "검찰이 하성용 전 KAI 사장을 몰아내기 위해 방산 비리 대신 별건 수사를 했다"는 불만도 적지
않았다.
미 공군은 당초 APT 사업자를 지난해 말 선정할 예정이었다. 기종 선정을 코앞에 두고 검찰 수사가 몰아치면서
미 공군은 당초 APT 사업자를 지난해 말 선정할 예정이었다. 기종 선정을 코앞에 두고 검찰 수사가 몰아치면서
KAI의 핵심 사업은 사실상 '올 스톱'됐다. 해외 업체의 한 관계자는 "KAI와 정부가 함께 수주를 위해 총력전을
펼쳐도 부족할 판에 해당 업체를 수사한다는 게 어처구니 없었다"며 "경쟁 업체에서 미 정부와 군에 KAI를 비리
업체라고 흠집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국내 최대 방산업체의 경영 비리'라는 검찰 설명과 달리 1심 재판에서 주요 혐의에 대해 무죄 선고가 내려졌다.
'국내 최대 방산업체의 경영 비리'라는 검찰 설명과 달리 1심 재판에서 주요 혐의에 대해 무죄 선고가 내려졌다.
하 전 사장도 지난 21일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항공·방산 분야 전문성이 없는 감사원 사무총장 출신의 김조원 사장이 부임한 것도 수주전에 영향을 미쳤다는
항공·방산 분야 전문성이 없는 감사원 사무총장 출신의 김조원 사장이 부임한 것도 수주전에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가 나온다.
김 사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냈고, 대선 때 문재인 캠프에서 활동했다.
사장 임명 당시 '낙하산 보은(報恩) 인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김 사장은 부임 후 임원 30여 명 가운데 10여 명을
내보내고, 11개 본부를 5개로 축소했다. 업체 소식통은 "방산 분야는 인맥과 전문성이 중요한데, 그게 부족한
김 사장이 해외 수주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고 활동 자체도 소극적이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미 정부의 미국 내 방산업체에 대한 정치적인 고려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란 분석이다.
미 정부의 미국 내 방산업체에 대한 정치적인 고려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란 분석이다.
미 정부와 군은 대형 방산업체들의 경쟁 구도를 유지하기 위해 특정 업체에만 일감을 몰아주지 않는다.
항공 분야 라이벌인 록히드마틴과 보잉의 경우 지난 10여 년간 록히드마틴 수주액이 보잉보다 훨씬 많았다.
업계의 한 소식통은
"이번 APT 사업까지 록히드마틴이 수주했을 경우 보잉 방산 분야는 고사 위기에 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A3면
조선일보 A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