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과 방황

[프리즘] 소로에게 배우는 삶의 방식

여풍2 2014. 11. 30. 22:09

 

                                                                                                

                           *소로우가 살았던 <월든>호수 
 

 덕은 외롭지 않으며 반드시 이웃이 있다면서요?

 공자의 말인데, 놀랍게도

 평생 고독을 사랑하며 살아간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가 좋아한 문장입니다.  

 소로는 고독하게 살았으면서도 외롭지 않았나 보지요?

 결혼도 하지 않았고, 매일 출퇴근하는 직장도 없었는데,

 도대체 소로는 어떻게 살았기에 외롭지 않았을까요?

 간디가 좋아하던 소로의 문장을 보면 그의 삶의 심지가 느껴집니다. 

 “우리는 국민이기 이전에 먼저 인간이어야 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기 이전에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길러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내가 옳다고 믿는 일을 행하는 일이 나의 사명이라고 믿는다.

 나는 강요받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숨을 쉬고, 내 방식대로 살아가기 위해 태어났다.”  

 

 옳다고 믿는 일을 행하기

 

 소로는 인종차별을 반대했습니다.

 인간을 가축처럼 매매하는 국가에는 세금을 낼 수 없다면서

 6년 동안 세금을 내지 않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낸 세금이 인종차별과 전쟁 준비에 쓰이는 것을

 반대해서 납세 거부를 한 것이지요.  

 그 죄로 감옥에 갇혔으나 감옥이 무서워 자신이 옳다고 믿은 일을 철회하지 않고

 저렇듯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겁니다.  

 그를 아끼던 친척이 대신 세금을 내주는 바람에 풀려나기는 했지만

 덕분에 저 문장들은 엄청나게 힘을 받아 톨스토이에게로, 간디에게로,

 마르틴 루터 킹에게로 전해졌습니다.

 월든 호숫가에서 오두막 한 칸 짓고 자급자족하며 고독하게 산 젊은이는

 무력한 젊은이가 아니라 심지 굳은 젊은이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소로는 저항만 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하버드대학을 나왔고,

 잘나가는 사업가의 자랑스러운 아들이던 그는 사업을 하라는 아버지의 말에

 그렇게 시간낭비하며 살고 싶지 않다며 월든 호숫가로 들어가

 유유자적, 계절의 변화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할 일은 충분하다며

 자기 촉수를 믿고 자기 방식에 따라 자기 촉수로 세상을 산

 인간 중의 인간이었습니다.  

 그의 저항은 저항을 위한 저항이 아니라 제대로 살기 위한 저항이었던 것입니다.

 그에게 자연은, 숲과 바람과 비와 햇살은, 그의 뱃심을 키워주는 든든한 친구였던 것 같습니다.  

 그는 《월든, 혹은 숲속의 생활》에서 사계절을 벗 삼아 우정을 즐겼다고 쓰고 있습니다.

 땅을 일궈 경작하는 기쁨, 바람과 함께 울 때 슬픔이 바람에 날아가는 것을 느끼는 기적,

 신선한 아침공기 한 모금에 행복해져 미소를 짓게 되는 마음의 부드러움,

 그런 것들로 풍요로워진 그가 말합니다.

 간소화하고 간소화하라고. 불필요한 것으로 삶을 어수선하게 하지 말라고.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자

 

 필요하다고, 예쁘다고, 보이는 대로 자꾸 사들이느라 우리의 집은

 늘 불필요한 것으로 넘쳐나지 않나요?

 ‘자발적 가난’으로 회자되는 소로를 읽다 보면 넘쳐나는 물건들,

 괜한 약속들, 할 일 없을까 두려워하는 불안 등

 너저분한 것을 무겁게 짊어지고 낑낑거리며 사는 ‘나’를 돌아보게 됩니다.

 혹 나는 내 인생을 설명하는 유일한 형용사가 ‘바쁘다’인 가난한 인생은 아닌지, 하여.

 

 불필요한 것들을 하나, 둘 정리해보지요. 이상하게도 삶이 그만큼 가벼워지고 가뿐해집니다.

 가뿐해진 자리에서만 인생의 존재 이유를 묻게 됩니다.

 소로는 인생의 존재 이유는 영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데 있다고 했습니다.  

 영적인 성장이라는 게 무슨, 교회에서 살거나 세속을 떠나는 것이겠습니까?

 아마 그는 경작하며 산책하며 사색하며 자연에 살며, 자연을 지켜보면서

 자연에 깃든 신성을 발견하고 느끼는 자기 자신을 발견함으로써

 자신이 성장하고 있음을 느끼고 생에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가 말합니다.

 

 “왜 우리는 성공하려고 그처럼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그처럼 무모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듣는 음악에 맞춰 걸어가도록 그 사람을 내버려두라.

 그가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꿔야 한단 말인가.”

 당신만이 듣고 있는 북소리가 있나요? 그것이 바로 당신의 고유성을 만드는 것입니다.

 [글: 이주향 수원대 교수]

 

 

 

 

 

 

 

 *헨리 데이비드 소로  (Henry David Thoreau)    (1817~1862), 미국 사상가 겸 문학자. 하버드 대학 졸업 후 숲속 오두막에서 기거하며 자연을 관찰,  그 생각  을 기록하고 노동 자체에서 얻는 만족을 즐겁게 생각했다.  이때의 기록이 대표작이자 미국 문학고전인《월든, 혹은 숲속의 생활(Walden, or Life in the Woods)》이다.

 

 
Andante sostenuto - Larghetto -   Variazione - 
Allegro moderato - Tema - Variazioni I-  IV - Finale

 

 
Niccolo Paganini (1782 ~1840)
Salvatore Accardo, violin (194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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