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로랑생의 화가로의 모습
여류화가이며 시인이었던
"마리 로랑생"은 미술사는 물론 세계 예술사를 통틀어서
가장 극적인 삶을 산 인물중의 하나였습니다.
사생아로 태어나 스무살이 넘도록 아버지의 이름도 모른 채 성장하고
자신과 같은 처지였던 사생아 출신의 이탈리아인 천재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와 사랑에 빠지게 되지요.~~
마리 로랑생의 작품은
핑크와 푸른빛이 주가 되어 몽환적이며..
많은 남성화가들과 교류가 있고
다양한 장르의 작품활동을 하였다
특유의 황홀한 색채로 표현해 낸 그녀의 그림은
외롭고 쓸쓸하고 또 따뜻하기도..
마리 로랑생, 화가이면서 시를 쓰기도 했던 여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연인으로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았던 두 사람은
헤어지기로 한다
실연을 당하고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다리를 건너다 아폴리네르는 다리에 멈춰서서
지난 사랑의 추억을 떠올리며 시를 쓴다.
![](https://i1.daumcdn.net/deco/contents/emoticon/things_13.gif?v=2)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흐른다
기쁨은 언제나 슬픔 뒤에 왔었지
밤이 와도 종이 울려도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손에 손 잡고 얼굴을 바라보자
우리들의 팔로 엮은 다리 밑으로
끝없는 시선에 지친 물결이야 흐르건 말건
밤이 와도 종이 울려도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사랑은 가 버린다
흐르는 이 물처럼 사랑은 가 버린다
이처럼 삶은 느린 것이며
이처럼 희망은 난폭한 것인가
밤이 와도 종이 울려도
세윌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나날이 흘러가고 달도 흐르고
지나간 세월도 흘러만 간다
우리들 사랑은 돌아오지 않는데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른다
밤이와도 종이 울려도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시인이며 미술 평론가로 알려진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1880-1918)는
그녀는 20세기초 피카소와 장 콕토들의 살롱에서
가장 환영받는 파리의 뮤즈였으며
로댕으로부터 ‘야수파의 소녀’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던
예술의 기량이 절정에 달한 화가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이듬해에는 독일사람인 오토 폰 바트겐과 결혼함으로써
적대국의 남자와 결혼을 해서 전쟁중에도, 전쟁이 끝난 후에도
전쟁중 아폴리네르는 사망하고,
여류화가로서 성공을 거두었고 유명인사로 활약하면서 화풍에도 많은 변화를 보인다.
양탄자와 벽지의 무늬를 고안하고 책의 삽화, 석판화와 발레의 무대장치를 그리거나
복식도안도 하며 여류화가로서 다채로운 활동을 했다.
밝은 회색, 엷은 분홍색, 옅은 청색 등을 조화롭게 사용하여
우아하고 매혹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눈의 대부분을 검은 눈동자로 채우고 시선을 밑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70세가 넘어 사망하기까지 그녀의 소망은
"나에게 진정한 재능이 있기를…"이었다고 한다.
![](https://i1.daumcdn.net/deco/contents/emoticon/things_04.gif?v=2)
오! 당신은 알기를 원하십니까?
권태보다
그리고 슬픔보다도
왜 불행이 더 나쁜지를...
하지만 불행보다
더 나쁜 것은 아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