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만상

미라보 다리

여풍2 2018. 2. 9. 09:30


마리 로랑생의 화가로의 모습

 


여류화가이며 시인이었던

"마리 로랑생"은 미술사는 물론 세계 예술사를 통틀어서
가장 극적인 삶을 산 인물중의 하나였습니다.

사생아로 태어나 스무살이 넘도록 아버지의 이름도 모른 채 성장하고
자신과 같은 처지였던 사생아 출신의 이탈리아인 천재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와 사랑에 빠지게 되지요.~~

마리 로랑생의 작품은

핑크와 푸른빛이 주가 되어 몽환적이며..

많은 남성화가들과 교류가 있고

다양한 장르의 작품활동을 하였다

특유의 황홀한 색채로 표현해 낸 그녀의 그림은

외롭고 쓸쓸하고 또 따뜻하기도..

마리 로랑생, 화가이면서 시를 쓰기도 했던 여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연인으로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았던 두 사람은

헤어지기로 한다
실연을 당하고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다리를 건너다 아폴리네르는 다리에 멈춰서서

지난 사랑의 추억을 떠올리며 시를 쓴다.



  미라보 다리 - 기욤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흐른다
기쁨은 언제나 슬픔 뒤에 왔었지
밤이 와도 종이 울려도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손에 손 잡고 얼굴을 바라보자
우리들의 팔로 엮은 다리 밑으로
끝없는 시선에 지친 물결이야 흐르건 말건

밤이 와도 종이 울려도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사랑은 가 버린다

흐르는 이 물처럼 사랑은 가 버린다
이처럼 삶은 느린 것이며

이처럼 희망은 난폭한 것인가

밤이 와도 종이 울려도

세윌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나날이 흘러가고 달도 흐르
지나간 세월도 흘러만 간다

우리들 사랑은 돌아오지 않는데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른다

밤이와도 종이 울려도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시인이며 미술 평론가로 알려진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1880-1918)는

폴란드 출신의 어머니와 이태리 장교인 아버지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화가 피카소를 알게 되고 몽마르뜨에 있는 가난한 예술가들의
공동 작업실인 '세탁선, Bateau Lavoir''을 드나들며 그들과 교류하게 되었다

여류화가이며 시인이었던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은
빠리의 유력한 인사의 사생아로 태어나 아버지의 인정도 받지 못하고
숨겨진 여자로 살았던 어머니 멜라니-폴린 로랑생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
1905년에 '세탁선'에서 피카소 등 화가와 시인들을 만나게 된다

1907년 그녀의 첫 개인전에서 피카소의 소개로 기욤 아폴리네르를 만났다


                                                그녀는 20세기초 피카소와 장 콕토들의 살롱에서

      가장 환영받는 파리의 뮤즈였으며

                                                로댕으로부터 ‘야수파의 소녀’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던

                                                            예술의 기량이 절정에 달한 화가였다

      태어나면서 사생아라는 불운을 타고 났으나,
          연인이었던 아폴리네르가 사생아라는 출신성분을
끝까지 극구 감추려 한 반면 그녀는 오히려 당당했다고 한다

누구보다도 사랑했으나 서로의 예술세계가 만개할 무렵,
마리 로랑생은 아폴리네르를 떠나서 인생의 굴곡을 겪으면서도
결코 붓을 놓지 않고 자신의 세계를 펼친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이듬해에는
독일사람인 오토 폰 바트겐과 결혼함으로써
그녀 조국에서조차 발붙일 수 없는 처치가 되고 만다.
적대국의 남자와 결혼을 해서 전쟁중에도, 전쟁이 끝난 후에도
조국에 갈수 없는 유랑자와 같은 시간을 보낸 후 조국에 돌아오는 것을 허락받는다
전쟁중 아폴리네르는 사망하고,
           독일인 남편과 이혼 후 많은 변화가 있었으나 그림에 대한 열정은 변함없었다.

         

       
       파리로 돌아온 로랑생은 1920년 로마의 개인전에서

여류화가로서 성공을 거두었고 유명인사로 활약하면서 화풍에도 많은 변화를 보인다.

 양탄자와 벽지의 무늬를 고안하고 책의 삽화, 석판화와 발레의 무대장치를 그리거나

    복식도안도 하며 여류화가로서 다채로운 활동을 했다.  

밝은 회색, 엷은 분홍색, 옅은 청색 등을 조화롭게 사용하여

 우아하고 매혹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눈의 대부분을 검은 눈동자로 채우고 시선을 밑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70세가 넘어 사망하기까지 그녀의 소망은
"나에게 진정한 재능이 있기를…"이었다고 한다.


            

오! 당신은 알기를 원하십니까?
권태보다
그리고 슬픔보다도
왜 불행이 더 나쁜지를...
하지만 불행보다
더 나쁜 것은 아픔입니다
---중략---

그렇지만 죽음보다도 더 불행한 것은
바로 잊혀지는 것입니다
- 마리 로랑생-


Ne me quitte pas-Ilana Avital 
 
Sous le pont Mirabeau - Michel Delpech  

Le Pont Mirabeau Leo Fer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