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만상

외교· 안보 파탄낼 수 있는 문 정부의 3가지 착각

여풍2 2017. 12. 31. 14:47

[주간조선] 외교· 안보 파탄낼 수 있는 문 정부의 3가지 착각
지해범 조선일보 동북아시아연구소장  

2017.12.31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1992년 한·중 수교 이래 최악의 '외교 참사'다."


지난 12월 초 있었던 문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 대한 전직 외교관의 평가다.

그는 "문 대통령이 3박4일 방문 기간 내내 중국으로부터 전례없는 홀대를 받아 한국의 국격(國格)이 크게 떨어졌다"고

평가했다. 현직 외교관도 똑같은 말을 했다. "중국인들조차 문 대통령 방중을 홀대라고 말하는데, 우리만 아니라고 변명한다.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나라가 초라해 보인다. 중국을 정확히 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중국인들은 어떻게 평가할까. 한국 문제를 연구하는 한 중국 학자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중국 정부의 태도는 홀대가 맞다. 우리 중국인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 한국인들은 중국이 왜 문 대통령을 홀대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즉 중국은 한국에 '교훈'을 주기 위해 일부러 홀대했는데, 한국 정부는 그것이 홀대인 줄 모르거나 혹은 아닌 척한다는 얘기다.


 
           

현 정부가 문 대통령 방중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논리는 이런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만든 사드 갈등을 문 정부가 나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의 사드 보복이 풀리게 된 점을

가장 큰 성과로 꼽는다. 청와대 관계자는 "100점 만점에 120점짜리 외교"라고 자평했다. 그러나 정상회담 5일 만인 12월

19일, 중국이 다시 한국행 단체관광을 중단하기로 결정해 문 정부의 주장을 무색게 했다. 중국은 또 정상회담 이후에도 일관

되게 "사드 문제를 해소하라"고 문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문 정부의 대중외교가 생각대로 풀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보다 중국에 대한 잘못된 인식 탓이 크다. 중국의 진짜 의도를 읽지 못한 채 단지 사드 갈등만 잘 풀면 한·중 관계가 좋아질 걸로 기대했

지만, 중국은 호락호락 우리 정부 바람대로 행동해주지 않는다.

문 정부의 대중 외교가 통하지 않는 배경에는 중국에 대한 세 가지 착각이 깔려 있다. 첫째는 '중국이 한국을 대등한 주권국가

로 본다'는 착각이다. 둘째는 '중국이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통일에 협력할 것'이라는 착각이다. 셋째는 '중국과 긴밀히 협력하면 북한을 움직일 수 있다'는 착각이다.

먼저 첫 번째 착각과 관련하여, 많은 한국인들은 "과거에는 중국이 한국을 '조공국' 내지 '속국'으로 봤지만, 21세기인 지금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위험한 착각이다. 중국인들은 지위가 높을수록, 또 한국과 접촉이 많을수록, 한국을 대등한 주권국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속국'이란 시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이는 근대에서 최근까지 많은 사료(史料)와 발언이 증명한다.


◆첫 번째 착각
중국이 한국을 대등한 주권국가로 본다


조선시대 중국이 한반도를 어떻게 보았는지는, 청나라 외교관 황준헌(黃遵憲)이 1880년 일본에서 조선의 김홍집에게 건네준 '조선책략'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책에서 황준헌은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우려하면서 조선에 '친중국, 결일본, 연미국' 할 것을 권하면서 다음과 같이 조선-중국 관계를 표현하고 있다. "규모나 물자의 풍부함에서 러시아를 제압할 수 있는 동방의 나라는 중국뿐이고 중국을 사랑하는 나라는 조선만 한 나라가 없기에 두 나라가 연합해야 하며, 중국과 조선은 문자가 같고 정교(政敎)가 같으며 지리적으로도 매우 가까워 중국 내지의 군현(郡縣)과 다름없는 관계다. 조선은 마땅히 중국을 섬겨 한집안과 같음을 저들(러시아)이 알도록 한다면 러시아의 침입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청나라는 조선을 자기네의 한 지방(군현)으로 여겼다는 것이 이 책에 나타난다.

이러한 한국관(觀)은 청의 패망과 함께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후 역사의 단계마다 계승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쑨원(孫文)의 한국관이다. 삼민주의(민족·민권·민생)를 내세우고 신해혁명으로 청 정부를 무너뜨린 그는 현대 중국의 아버지로 추앙받지만, 실은 중국 주변 국가와 민족에 대해서는 차별적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1921년 중국 구이린(桂林)에서 한 연설에서 쑨원은 "중국의 영토로 말하자면 베트남, 한국, 미얀마, 티베트, 대만 등은 중국의 속국이거나 속지였다. 요컨대 이전에 이들은 모두 중국의 영토였는데 현재 외국의 판도로 들어가서 중국의 주권을 잇달아 상실했던 것이다"고 말했다.

조선을 독립된 나라로 보지 않는 역사관은 장제스(蔣介石) 국민당 정부로 이어진다. 1944년 2차대전 종전을 앞두고, 미·영·중 3국이 한국 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한국문제연구강요초안'을 작성했다. 여기에 국민당 정부도 적극 대응하여 중국의 입장을 반영시켰다. 국민당 정부 군령부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혔다.

"종전과 함께 진행될 연합국 측의 한반도 군대 파견 시 중국군도 함께 파견한다. 한강 이남은 영국·미국군이, 한강 이북은 중국군이 진주한다. 군대의 수는 중국군이 4, 영·미군이 각각 1의 비율로 한다. 새로 창설될 한국군은 중국의 지원 아래 만들어진 한국광복군을 중심으로 한다. 소련의 대일 참전 시에도 중국군 중심의 한반도 진공작전은 추진되어야 한다."

당시 영국 주재 중국대사이던 구웨이진(顧維鈞)은 본국 외교부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일본군 항복 후 동맹군이 진공하여 한인단체 영도자를 중심으로 한 임시정부를 구성할 때, 임정의 외교·국방·경찰 부문에는 3년 기한으로 중국인 고문을 두고, 재정·교통 부문에는 미국 고문, 위생 부문에는 소련 고문을 두어, 전후 한국의 외교·국방을 우리(중국)가 주도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 국민당 정부는 조선이 해방되더라도 한반도에 중국군을 보내 '한반도를 통제'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이러한 계획은 6년 뒤 마오쩌둥(毛澤東)의 한국전쟁 참전으로 현실화되었다. 마오쩌둥의 한국 참전 이유 중에는 한반도에 대한 영토적 욕심이 숨어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1950년 10월 13일, 마오쩌둥은 정치국 긴급회의에서 한국전 참전을 확정한 뒤, 당시 모스크바에 가 있던 저우언라이(周恩來)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전보를 보낸다. "펑더화이(彭德懷·북한을 도운 중국 인민지원군 총사령관)의 보고에 따르면, 미군과 한국군이 (중국군 참전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평양~원산 선에서 진격을 멈출 것이다. 이 경우 우리(중국)는 싸우지 않고 국가 방위선을 평양~원산 선으로 확대할 수 있다. (참전은) 우리에게 매우 유리한 것이다." 이 전보는 마오쩌둥이 최소한 한반도의 북부지방에 대한 영토 야욕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인식은 지금의 공산당 지도자에게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 후진타오(胡錦濤)는 국가부주석 시절 한국 기업인에게 고구려 멸망 후 평양에 설치된 '안동도호부'를 자주 언급했다. 그는 "평양 주변에는 중국 유적이 많은데, 이는 중국인들이 살다 남긴 유산이다"란 말을 했다. 이는 평양 지역까지 중국의 영향권이 미쳤고, 훗날 여건이 되면 이 땅에 대한 역사적 연고권을 주장하겠다는 암시나 다름없다. 시진핑 현 주석은 지난 4월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하면서 "한국은 예전에 중국의 일부였다(Korea used to be a part of china)"란 뜻의 말을 한 것으로 미국 언론이 전했다.

이러한 사료와 발언들은, 예나 지금이나 한국을 속국으로 보는 중국 지도자들의 한반도관이 결코 변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이 '한반도관(觀)'은 지금도 한·중관계에 적용되고 있다. 시진핑 정부 들어 노골화되는 중국의 한국 괄시와 압박은 한국을 더 이상 대등한 주권국가로 대우하지 않고 차등적 관계로 만들겠다는 공산당 지도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한다. 영국 언론인 마틴 자크가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에서 지적한 대로, 170년 전 아편전쟁의 굴욕을 겪은 중국은 21세기 초 국력을 회복하면서 주변국과 차등적 관계의 신질서, 즉 '신(新)조공체계'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을 속국으로 보는 관점은 1992년 한·중수교 당시에도 존재했으나, 경제발전이 우선인 중국인들은 한국의 기술과 자본, 경영노하우를 얻기 위해 한동안 이를 숨겨왔다. 그러나 미국을 위협하는 강대국으로 부상한 지금, 중국은 더 이상 한국에서 배울 게 없다고 보고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 속내란, 21세기 전반기에 한반도 전체를 홍콩이나 티베트, 혹은 대만처럼 중국의 영향권에 넣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2월 14일 오후 베이징 인민대회당 서대청에서 열린 MOU 서명식을 마치고 퇴장하고 있다. /연합

중국이 한국을 자국 영향권에 넣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한·미동맹을 깨야 한다. 미군만 떠나면 순식간에

한국을 장악할 수 있다고 본다. 중국이 한·미동맹을 깨려는 것은 시진핑 정부가 추구하는 중국몽(中國夢)과 관련이 있다.

중국몽은 이른바 '두 개의 백년(百年) 목표'를 갖고 있다. 하나는 공산당 창당 100년이 되는 2021년까지 전 국민이 풍요롭게 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부수립 101년이 되는 2050년 미국을 넘는 세계1등 국가가 되겠다는 목표다.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려면, 에너지와 상품의 수송로인 남중국해와 인도양에 대한 미군의 통제력을 넘어서야 한다. 미·중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을 때 미국이 이 항로의 숨통을 죄면 중국은 태평양전쟁 직전의 일본처럼 꼼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은 남중국해 군사시설 건설, 항모건조, 원양작전 확대 등으로 꾸준히 군사능력을 확장하고 이를 통해 아시아에서 미국의 힘, 즉 미군을 밀어내려 한다.

중국이 이 '상위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내건 첫 번째 '하위 목표'가 주한미군 철수이다. 중국 군사력이 남중국해와 말라카해협으로 나아가려면 먼저 서해와 제주 남쪽 해역의 항해안전부터 확보해야 하는데, 주한미군이 그 주된 훼방꾼이기 때문이다. 중국 입장에선 미국의 아시아 동맹 중 결합력이 강한 미·일동맹보다 상대적으로 '약한 고리'(중국 학자의 발언)인 한·미(韓美) 동맹이 가장 만만한 공격 대상이다. 중국은 한국인들 스스로 미군 철수를 결정하도록 유도하려 한다.

한국인들이 한·미동맹으로부터 얻는 이익보다 한·중관계로부터 얻는 이익이 크다고 여길 때 미군을 내보낼 것으로 본다. 중국의 경제적 카드가 한국에 힘을 발휘하려면 한국의 대중국 경제의존도가 높을수록 좋다. 중국은 한·중FTA 체결을 통해 한국의 대중 경제의존도가 30%에 육박하도록 했는데, 이는 대중 무역흑자라는 경제카드가 한·미동맹 약화에 효과를 발휘하리라는 전략적 계산을 했다는 뜻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중국의 사드 시비와 경제보복은 결코 사드가 중국에 위협이 되어서가 아니라, 사드를 핑계로 한·미를 이간질하고 미군 철수를 이끌어내어 끝내는 한국을 속국화하려는 치밀한 외교전략의 하나라는 것이 드러난다.


◆두 번째 착각
중국이 북한 비핵화와 남북통일에 협력할 것


문재인 정부의 중국에 대한 두 번째 착각, 즉 '중국이 북한 비핵화와 남북통일에 협조할 것'이라는 착각은 첫 번째 착각의 연장선에서 나온다. 한반도에서 과거의 영향력을 회복하려는 중국은 한국 주도의 남북한 통일 시나리오를 가장 두려워한다. 현재 중국의 14개 접경국 가운데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미군이 주둔하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 그런데 만약 한국 주도로 통일이 이루어지면, 한국은 중국에 그 첫 번째 위협국이 된다. 국민이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직접 뽑고, 언론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며, 촛불사태 같은 직접민주정치가 거리에서 벌어지는 한국이 중국과 국경을 맞대면, 중국의 수많은 청년·대학생들이 영향을 받아 공산당 독재의 사회주의 체제에 큰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미군의 힘이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미치면, 중국은 군사안보적으로 엄청난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중국은 한국 주도의 통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즉 북한 정권이 무너지지 않도록 한·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지속적으로 원유와 식량, 생필품을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당분간 한반도를 남북한으로 분단된 채 관리하는, 이른바 '디바이드 앤 룰'의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2009년 후진타오 정부 시절, 북한의 2차 핵실험 직후 '외사(外事)영도소조'를 열어, 북한의 비핵화보다 북한의 안정을 중시하기로 결정했다. 유엔 안보리가 대북 제재 강도를 아무리 높여도 중국이 '북한 주민의 민생'을 핑계로 강력한 제재와 개별국가별 제재를 반대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중국 입장에서 한국은 장차 자기들 품으로 끌어들여야 할 대상인데, 만약 한국 주도로 통일되어 '강대한 통일한국'이 탄생하면 한반도 장악이 불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오히려 중국에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입장에선 한국의 통일을 도와주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 비핵화와 통일에 대한 '중국의 협조'를 얻기 위해 아무리 친중(親中) 노선을 걸어도, 중국은 결코 한국의 친구나 지지자가 되지 않는다. 우리 정부가 '중국의 협력'이란 막연한 기대 때문에 사드 갈등에서 저자세를 취하고 중국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해도, 중국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사드 철폐→미군 철수)을 얻기 전까지는 결코 사드 압박을 멈추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지금이라도 '사드 배치는 한국의 안보주권으로서 어떤 나라의 간섭도 배격한다'는 원칙으로 돌아와 '3불(사드 재배치, MD 참여, 한·미·일 군사동맹 불추진)' 입장 같은 것도 폐기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미·중 사이에 끼어 우리의 주권을 훼손당하고 외교안보 위기에 몰리게 될 것이다.


지난 11월 26일 중국 북부전구 38집단군이 북·중 접경 모지역에서 ‘옌한(嚴寒)-2017’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중국 국방부 홈페이지

◆세 번째 착각
중국과 협력하면 북한을 움직일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중국에 대한 세 번째 착각은 '중국과 협력하면 북한을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즉 한국이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여 북한을 대화로 끌어내면 비핵화와 통일 등 한반도 문제가 술술 풀릴 것이라는 계산이다. 북한이 중국 말을 고분고분 잘 듣는다면 이 계산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국에 대한 경계감은 북한이 한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김일성이 한국전쟁 이후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연안파를 대거 숙청한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후계자 김정일 역시 "미국이나 남한보다 실은 더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중국"이라고 말할 정도로 중국을 싫어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안보보좌관을 지낸 라종일 전 주영대사는 저서 '장성택의 길'에서 김정일에 관한 일화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2000년대 후반 북한이 처음 핵무기 개발에 성공했을 때 김정일의 첫 반응 중 하나는 "이제 중국의 간섭을 받지 않아도 되겠다”는 것이었다. 미국보다 중국을 더 의식했던 것이다. (김정일은) '미국놈 열보다 중국놈 하나가 더 위험하다. 중국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중국의 대국주의를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장성택의 길'·255쪽)


라 전 대사는 중국의 고위층으로부터 "김정은의 장성택 숙청은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제거하려는 시도"라는 얘기도 들었다고 전했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지난 12월 19일 김정은 정권이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 가능성이 높아지는 가운데서도 오히려 '중국을 믿지 말라'는 주민 강연을 했다고 보도했다. 함경북도 주민은 "최근 중앙에서 우리들에게 '조선은 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결코 피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내용의 강연을 진행했는데, '주변국을 절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고 말했다. 여기서 주변국은 곧 중국을 뜻한다. 북한 역시 중국의 한반도 영토 야욕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이 보도는 말해준다.

문재인 정부가 중국의 도움을 받아 북한과 대화하여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지만, 북한이 중국의 바람대로 움직일지는 미지수다. 북은 오히려 "미국의 꽁무니만 쫓아간다"며 중국을 비난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이 북한에 어마어마한 경제지원을 약속한다면, 북한은 잠시 대화하는 시늉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에 그랬듯이, 북한은 경제적 실리는 다 얻으면서 비밀리에 핵개발을 지속하여 한국의 '뒤통수'를 칠 가능성이 높다.

親中 노선의 위험
중국에 대한 3가지 잘못된 전제 위에서 추진되는 문재인 정부의 대중외교는, 한국의 대중국 의존도를 더욱 심화시키고 한·미-한·일 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이러한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가 친중 노선을 걷는 데는, 소위 '전대협(전국대학

생대표자협의회)' 세대가 주축인 청와대 자주파 참모들의 중국에 대한 환상과 극도의 반미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고 봐야 한다. 1980년대 말~1990년대 대학을 다닌 이들은 이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 '8억인과의 대화' 등을 통해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환상을 가지게 되었다.

한국 지식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이영희 교수(작고)는 일본 공산당의 중국 문화혁명에 대한 평가를 참고하여 책을 집필했는데, 일본 공산당은 "중국 문화혁명이야말로 인류가 지향해야 할 이상적인 정치사회운동"으로 극찬했었다. 어린 청소년들이 교사를 때려 죽이고, 대학생들이 교수와 총장을 무릎 꿇리고, 지식인과 문화예술인에게 반동(反動)의 딱지를 씌워 자살하게 만든 문화혁명의 실상이 알려지자, 일본 공산당은 국민들로부터 외면받았다. 중국 공산당 스스로 문화혁명에 대해 '중국 사회를 수십 년 후퇴시킨 집단 동란'으로 결론 내렸다. 그럼에도 1980년대 마오쩌둥의 사회주의 혁명과 문화혁명을 긍정 평가한 책들을 읽고 한국 사회에서 반미(反美)자주 NL(민족해방)운동을 전개하던 핵심세력이 바로 전대협이다.

현 청와대 비서진에는 임종석 비서실장을 포함한 상당수가 전대협 출신이다. 만약 이들이 '중국과 손잡고, 북한과 대화하여,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통일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친중(親中)노선을 걷는다면, 우리 국가와 민족의 장래에 엄청난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

친중노선이 초래할 첫 번째 위험성은, 중국의 압박과 간섭으로 한국 사회가 극도로 분열되고 주권이 점진적으로 훼손돼 끝내 명·청(明淸)시대 조선처럼 중국의 속국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중국은 지난 1년 반 동안 사드 보복을 통해 한국을 뒤흔드는 노하우를 쌓았다. 앞으로도 거대한 14억 시장의 한 귀퉁이를 내어주고 경제이익을 미끼로 한국을 겁줬다 달랬다 할 것이다. 한·미동맹이 유지되는 상황에서도 중국의 압박과 간섭이 이렇게 심한데, 만약 한·미동맹이 깨지고 한국 단독으로 중국을 상대할 경우 중국이 어떤 횡포를 부릴지는불을 보듯 뻔하다. 중국이 한국을 압박하면 할수록, 한국 사회는 "중국과 잘 지내자"는 친중파와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한다"는 친미파로 갈라져 싸우고, 좌파진영은 미군 철수론을 더욱 펌프질할 것이다. 이는 바로 중국이 바라는 바다.

두 번째 위험성은, 광복 후 한국민이 피땀으로 이룩한 자유민주주의와 높은 수준의 언론자유, 인권이 송두리째 흔들릴 위험성이다. 1997년 중국에 반환된 홍콩과 양안(兩岸)교류 이후의 대만 현실이 이런 위험성을 잘 보여준다. 베이징의 권력투쟁을 분석한 책을 팔던 홍콩 서점 주인들이 2년 전 가족도 모르게 중국 정보기관에 끌려가 고문받다가 6개월~1년 만에 풀려나는 일이 벌어졌다. 몸은 반쪽이 되었고 정신도 온전하지 못한 채로 돌아왔다. 중국에서 공장을 하는 대만 기업인들은 대만 총통선거 때 '친중국 성향의 후보'를 지지하지 않으면 대만으로 귀국하지 못할 뿐 아니라, 중국에서 사업을 계속하기도 어려워졌다. 중국 당국이 대만 기업인의 정치성향을 모두 감시하여 투표를 저지하고 심지어 공장문도 닫게 하기 때문이다. 만약 한·미동맹이 깨지고 한국이 다시 중국의 영향권에 들어가면, 똑같은 일이 한국인에게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 한가하게 방중 성과를 자화자찬하거나 사드갈등 해소에 매달릴 때가 아니다. 지난 8개월간 자주파 외교팀의 친중외교 노선이 실패한 근본 원인을 분석하고, 우리의 주권과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나갈 방안을 깊이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우리 자신과 자녀들의 미래 삶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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