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소득 3만달러' 내년엔 무난.. 獨 5년 걸린 길, 우린 12년
2017.12.02.
전통적 제조업 고전.. 성장동력 시급 전문가 "숫자 도취말고 질적 성장을"
[동아일보]
1964년 12월 24일, 동아일보 1면 머리기사로 박정희 대통령의 ‘독일방문 기념 특별기고’가 게재됐다.
독일에서 차관을 받기 위해 광부와 간호사를 보내는 협정을 맺었던 바로 그 국빈 방문이었다.
박 대통령은 서독의 경제부흥 현장을 보고 온 뒤
“전쟁 후 국민들이 피와 땀으로 일궈낸 노력의 결정체”라고 극찬했다.
1964년 한국의 1인당 소득은 107달러에 불과했다. 그해 정부는 수출 1억 달러를 돌파했다고 자축했다.
6·25전쟁의 잿더미를 딛고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달려온 한국이
1인당 소득 3만 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휴전협정을 체결했던 1953년(67달러)과 비교하면 무려 447배로 성장한 규모다.
원-달러 환율 하락, 수출 호조에 따른 성장률 반등으로 올해는 2만9000달러를 넘고 내년에는 3만 달러 진입이 유력하다.
하지만 반도체를 제외한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 주요 기간산업에서
신흥국과의 격차가 계속 좁혀지고 있다는 점이 한계로 꼽힌다.
4차 산업혁명 분야 신성장동력 발굴 역시 각종 규제에 가로막혀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 소득 3만 달러 시대 눈앞에
한국은행이 1일 발표한 국민소득 잠정치에 따르면 올해 1인당 국민소득은 2만9561달러로 추산된다.
3분기(7∼9월) 명목 국민총소득(GNI)이 지난 분기보다 3.4% 늘어났는데,
4분기에 올 1∼3분기 평균 수준의 성장을 거둔다는 전제하에 1∼10월 평균 환율(1134.3원)을 적용해
추계인구(5144만6201명)로 나누면 이 같은 수치가 나온다.
한은 관계자는 “내년에도 3%대 성장을 달성하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 안팎에 이른다면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달성은 무난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도성장 신화를 일궈온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침체기에 들어섰다.
1997년 1만2059달러에서 이듬해 7989달러로 무려 33.8%나 급감했다.
외환시장 혼란에 따른 환율 급등이 주원인이었다.
외환위기가 발생한 지 6년 만인 2003년에 이르러서야
수출 회복세에 힘입어 1인당 소득 1만4151달러를 달성할 수 있었다.
선진국에서 ‘소득 3만 달러’는 소비 패턴과 생활 방식이 달라지는 경계선으로 인식된다.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으면 골프를, 3만 달러를 넘으면 승마를,
4만 달러를 넘으면 요트를 탄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는 나라는 27개국뿐이다.
앞선 나라들이 2만 달러에서 3만 달러로 진입하는 데는 평균 8.2년이 걸렸다.
일본, 독일, 호주는 5년, 미국은 9년이 걸렸다.
한국은 2006년 2만795달러를 거둔 뒤 11년이 지난 올해도 3만 달러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이 ‘중진국의 함정’에 빠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지속적으로 나왔다.
○ 향후 성장동력이 관건
문제는 앞으로다.
이제까지는 선진국을 따라잡는 이른바 ‘캐치 업(catch up) 전략’으로 3만 달러 턱밑까지 왔다.
하지만 잠재 경제성장률이 3% 밑으로 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로
한국 경제의 체질이 약해졌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조선, 철강 등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전통적인 제조업에서 이미 중국, 동남아시아 등이 한국을 무섭게 따라붙고 있다.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11월 수출이 역대 최대(496억7000만 달러) 수준을 나타내며
13개월 연속 증가세가 지속되고 있지만 반도체에 의존하는 취약한 구조는 좀처럼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소득 3만 달러라는 숫자에 집착하지 말고
일자리 창출, 양극화 개선 같은 ‘삶의 질’에 보다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민소득은 환율 상황에 따라 변하는 성격이 강하다.
3만 달러 달성을 눈앞에 뒀다고 도취되지 말고
향후 경기 상황과 일자리 창출 정책 등에 냉정하게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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