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양고전음악 듣기에 관심이 생기거나 처음 입문하게 되면
비발디 <사계>, 알비노니 <아다지오>, 멘델스죤 <바이올린 협주곡>,
바하 <브란덴부르그 협주곡> 등 반드시 들어야 한다는 곡들의 목록이
이런저런 경로로 손에 들어오는데,
그런 명단에 예외 없이 포함되는 곡들 중의 하나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이다.
라흐마니노프의 최대 히트작으로,
음울하면서도 감미로운 서주가 인상적인 제1악장,
워낙 서정적이고 몽환적이라 로맨티시즘의 극치라 일컬어지는 제2악장,
그리고 역동적이고 화려한 제3악장 등 음반을 한번 올리게 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끝까지 듣게 되는 훌륭한 작품이다.
기본적으로 러시아 특유의 우수가 근저에 가득한 가운데
라흐마니노프 자신이 워낙 뛰어난 피아니스트였기에
피아노의 기능성과 기교를 극대화한 것이 성공 비결이었다는 평들이 많은 것 같다.
청운의 꿈을 품은 라흐마니노프는
불과 24세에 야심적으로 첫 교향곡을 발표하였으나
기대와 달리 혹평을 받자
우울증 또는 신경쇠약에 걸려 작곡 포기까지 고민하며
3~4년 정도 방황한 적이 있었다는데,
달(Nicolai Dahl)이라는 정신과 의사를 만나 병세가 호전되면서
다시 창작에 나서게 되어 이 곡을 완성하게 되었다 한다.
그런 과정을 알고 나면,
이 작품은 젊은 예술가가 자신을 누르고 있던 좌절과 고뇌,
슬럼프라는 어두운 장막을 마침내 뚫어내고
창공으로 비상하게 된 것을 자축하는 자전적 협주곡이라고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라흐마니노프는 우울증 극복 후 28세이던 1901년에 곡을 완성하여
모스크바에서 자신의 피아노 연주로 초연하였으며,
이 성공작은 자신을 최면요법으로 치료해 준 의사 달에게 헌정하여
감사의 표시를 제대로 했다고 한다.
세상에 연인들이 존재하는 한
이 명곡의 생명력은 영원하리라는 말도 있다.
누군가를 가슴에 품은 이는 사랑의 밀어 같은
제2악장에 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므로...
처음 서양고전음악을 듣기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40년을 가까이하여 왔지만 언제 들어도 여전히 좋으니
“많이 듣는다고 식상해지는 명곡은 없다!”는 진부한 말이
진부하지 않게 다가온다.
미국 뉴저지주 북쪽 끝자락의 허드슨강을 넘어
동쪽으로 조금만 달리면 뉴욕주 발할라라는 마을에 닿게 되고
그곳에 라흐마니노프가 잠들어 있다.
라흐마니노프가 미국에 묻힌 이유는
1917년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 때 연주여행 핑계로
러시아를 탈출하여 우여곡절 끝에 미국으로 이주하였기 때문이다...
[옮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