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acomo Puccini - Manon Lescaut 피사에서 베르디의 [아이다] 공연을 처음 본 열일곱 살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1924)는 감격해 잠을 설쳐가며, "내 갈 길은 오페라 작곡뿐"이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가난과 싸워가며 밀라노 음악원을 졸업한 뒤 오페라 [빌리](1884)와 [에드가](1888)를 초연했지만 젊은 푸치니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893년 토리노 레조(Regio) 극장에서 초연한 [마농 레스코]로 드디어 ‘베르디를 계승할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라는 극찬을 얻은 푸치니는 마침내 가난을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명성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대체 [마농 레스코]의 어떤 특징이 그처럼 관객을 매혹했을까요? |
1.데 그리외의 아리아 - 한번도 본 적 없는 미인 Donna non vidi mai simile a questa!
Luciano Pavarotti singt "Donna non vidi mai" (Manon Lescant). Live aus Olympiahalle in M?nchen 1987
2.마농의 아리아 - 이 부드러운 레이스 속에서 In quelle trine mo
Angela Gheorghiu - Manon Lescaut: In quelle trine morbide - Puerto Rico 2005
3.마농의 아리아 - 홀로 내버려져서 Sola, perduta, abandonata
Maria Callas - Sola, perduta, abbandonata (Manon Lescaut)
프레보의 성장소설 [기사 데 그리외와 마농 레스코 이야기] 먼저 [마농 레스코]의 토대가 된 프랑스 작가 앙투안 프랑수아 프레보(Antoine Fran?ois Pr?vost, 1697-1763)의 원작소설 [기사 데 그리외와 마농 레스코 이야기L'histoire du chevalier des Grieux et de Manon Lescaut](1731년)에 주목해볼까요? ‘성직자’라는 의미에서 흔히 ‘아베(Abb?) 프레보’로 불리는 이 작가는 군인으로 인생을 출발했다가 베네딕트회 수사(修士)가 되었지만, 20대에 수도원을 떠난 그는 영국과 네덜란드 등지를 떠돌며 자신의 체험을 기록해 8권에 이르는 대작 [어느 귀인(貴人)의 회상]을 펴냈습니다. 그 가운데 7권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기사 데 그리외와 마농 레스코 이야기]죠. 오랜 모험과 편력을 마치고 귀향한 프레보는 다시 사제직으로 복귀해 조용한 여생을 보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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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으로 죄수들을 호송하는 호송선에 붙잡혀 실려가는 마농 레스코
제목의 순서에서 알 수 있듯, 프레보의 소설에서 더 비중이 큰 인물은 데 그리외라는 남자주인공입니다. 몇 년에 걸친 지독한 사랑과 쾌락을 경험한 좋은 집안 청년이 마침내 사회적 의무와 종교적 소명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그린 일종의 ‘성장소설’인 셈이죠. 그러나 푸치니 오페라의 진정한 주인공은 데 그리외가 아니라 여주인공 마농입니다. 푸치니는 사치와 향락의 욕구를 결코 포기하지 못하는 이 부정적인 인물을 관객이 결코 미워할 수 없는, 그래서 동정을 얻는 가련한 여주인공으로 새롭게 창조했습니다. 소설 속에는 두 주인공이 자신들의 향락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일삼는 온갖 범죄와 악덕이 가득하지만, 오페라 속에서는 순수하고 순진한 두 남녀가 마치 한 번의 실수로 불행에 빠지게 되는 듯한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오페라의 주인공은 반드시 관객의 공감과 감정이입이 가능한 인물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푸치니는 완벽한 대본을 위해 마르코 프라가, 루이지 일리카, 주세페 자코사, 작곡가 피에트로 마스카니를 포함해 모두 여덟 사람을 대본작업에 참여시켰고, 자신도 동참했습니다. 자신보다 앞서 오페라 [마농](1884년 파리 초연)을 발표했던 프랑스 작곡가 쥘 마스네를 의식해 푸치니는 1890년에 대본을 완성해놓고도 작곡이 끝난 92년까지 끊임없이 대본을 수정하며 공을 들였습니다. 결말부분에서 미국 유형 장면을 빼버린 것을 제외하면 당시 마스네의 [마농]은 ‘원작소설을 훼손하지 않고 훌륭하게 오페라화한 모범작’으로 꼽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처음으로 푸치니와 함께 일한 일리카와 자코사는 이후 푸치니 최고의 걸작들인 [라 보엠], [토스카], [나비부인]의 리브레토도 썼답니다. 어떤 오페라가 걸작이 되는 데는 대본가의 역할도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푸치니는 마농이라는 흥미로운 여주인공을 반드시 오페라 무대에 세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칭찬을 받으려면 마스네와 비슷한 대본을 만들어야 할 텐데, 그렇게 했다가는 또 모방이나 표절이라는 비난을 받을 우려가 있어 고민이었죠. 결국 푸치니는 극단적인 길을 택했습니다. 마농과 데 그리외가 만나는 필연적인 첫 장면을 제외하고는 마스네가 오페라에서 다룬 모든 장면을 다 빼버렸던 것입니다. 푸치니의 [마농 레스코]에는 파리 센 강변의 대로 풍경도 없고, 트랑실바니아 호텔의 도박장도 없습니다. 원작소설의 절반 이상을 과감히 잘라낸 푸치니는 2부로 나뉜 소설의 2부 후반부에 총력을 집중했습니다. 마스네가 다루지 않았던 르 아브르 항구의 극적인 반전이나 유형지 뉴올리언즈 사막의 죽음이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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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 화성의 모방, 그러나 가장 푸치니다운 선율
1막은 파리 근교 아미앵의 여관 앞 광장에서 시작됩니다. 대학생 레나토 데 그리외는 마차에서 내리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오빠 레스코와 함께 내린 마농을 보고 한눈에 반합니다. 마농에게 다가가 말을 건 데 그리외는 매혹적인 10대 소녀 마농이 부모의 강요로 수녀원에 들어간다는 말에 놀라죠. 사치와 허영, 허황된 꿈으로 가득한 마농이 장차 대체 뭐가 될지 우려한 부모의 결정이라는 것입니다. 어두워진 다음 다시 만나기로 마농과 약속한 그는 마농의 사랑스러운 말투를 되새기며 아리아 ‘한번도 본 적 없는 미인(Donna non vidi mai simile a questa!)'을 노래합니다. 이 아리아는 서정적인 선율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폭발적 효과에 이르는 푸치니 특유의 아리아 스타일을 정립한 곡입니다. 푸치니는 [라 보엠]의 로돌포, [토스카]의 카바라도시, [서부의 아가씨]의 존슨이 부르는 대표 아리아를 모두 이와 같은 스타일로 작곡했지요. 이 아리아 중에 데 그리외가 방금 들은 마농의 대답을 되새기는 ‘제 이름은 마농 레스코예요(Manon Lescaut mi chiamo)’라는 멜로디는 시도동기(Leitmotiv)로 계속 되풀이해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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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를 함께 타고 온 나이든 부자 제론테(제롱트)가 마농을 납치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데 그리외는 저녁에 다시 만난 마농을 마차에 태우고 파리로 도망갑니다. 도망간 두 사람이 파리에서 어떻게 살아갔는가 하는 내용은 보여 주지 않은 채 장면은 갑자기 바뀌죠. 2막은 파리에서 마농이 함께 살고 있는 제론테의 저택입니다. ‘가난을 참지 못하는’(1막 피날레에서 오빠 레스코의 대사) 마농이 데 그리외를 떠났음을 관객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농은 사치스럽고 화려하지만 열정이 없는 이 생활에 다시금 싫증을 낸답니다. 데 그리외가 마농을 다시 찾기 위해 도박판에서 열심히 돈을 벌고 있다는 이야기를 오빠에게 전해 들은 마농은 그리움에 잠긴 채 아리아 ‘이 부드러운 레이스에 감싸여 있어도(In quelle trine morbide)’를 노래합니다. 마농을 찾아온 데 그리외는 그녀의 배신을 맹렬히 비난하는데요, 이때 두 주인공이 노래하는 긴 이중창에는 1889년 바이로이트 극장 [트리스탄과 이졸데] 공연을 본 푸치니가 습득한 바그너 반음계 화성의 영향이 나타납니다. 제론테는 두 사람을 현장에서 적발하지만 마농에게 모욕을 당하고는 매춘죄로 그녀를 경찰에 신고합니다. 이들은 마농의 오빠와 함께 서둘러 도망치려 하지만, 마농이 욕심을 내며 보석을 챙기느라 지체하는 바람에 경찰과 제론테에게 붙잡힙니다. 2막과 3막 사이에는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간주곡만큼이나 아름답고 처연한 간주곡이 연주됩니다. 현악기와 하프가 감미로움과 비장미를 동시에 담아내는 이 곡에는 ‘투옥 - 르 아브르로 가는 여정’이라는 제목이 붙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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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막 미국의 황량한 사막에서 죽어가는 마농과 데 그리외의 비참한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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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막은 대서양을 끼고 있는 프랑스 북부의 르 아브르 항구. 죄수들을 미국으로 추방하는 호송선이 항구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데 그리외는 유형지로 떠날 마농을 필사적으로 탈출시키려 했지만, 구출작전은 발각되어 수포로 돌아갑니다. 매춘여성들은 하나씩 호명되어 배에 오르는데, 데 그리외는 선장의 발 앞에 엎드려 ‘아뇨! 난 미쳤어요!(No! Pazzo son, guardate!..).’라는 아리아로 ‘제발 나도 배를 타고 마농을 따라가게 해 달라’고 애원합니다. 그의 간절함에 마음이 움직인 선장은 배의 일꾼으로 데 그리외를 데려갑니다. [마농 레스코]에서 가장 극적이고 감동이 넘치는 장면이죠. 4막은 뉴올리언스의 사막입니다. 수용소 생활 중 마농을 탐내는 정착촌 촌장 조카 때문에 문제가 생기자, 마농과 데 그리외는 황야로 도망쳐 나옵니다. 그러나 먹을 것도 마실 물도 없는 그들은 기진맥진해지고, 목마른 마농에게 물을 구해다 주려고 데 그리외가 떠난 사이에 마농은 죽음의 공포에 떨며, 회한에 찬 아리아 ‘홀로 내버려져서(Sola, perduta, abandonata)’를 노래합니다. 물을 구하지 못한 채 데 그리외가 돌아오자 마농은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해요’라고 외치며 데 그리외의 품에서 숨을 거둡니다. 추천 음반 및 영상물 (마농-데 그리외-레스코 순)
[음반] 레나타 테발디, 마리오 델 모나코, 마리오 보리엘로 등, 프란체스코 몰리나리 프라델리 지휘, 산타체칠리아 음악원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1954년 녹음. Decca [음반] 미렐라 프레니, 루치아노 파바로티, 드웨인 크로프트 등, 제임스 레바인 지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1992년 녹음. Decca [DVD] 레나타 스코토, 플라시도 도밍고, 파블로 엘비라 등, 제임스 레바인 지휘, 메트로폴리탄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잔카를로 메노티 연출, 1980년 공연 실황(한글자막). DG [DVD] 마리아 굴레기나, 호세 쿠라, 루치오 갈로 등, 리카르토 무티 지휘, 라 스칼라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릴리아나 카바니 연출, 1998년 공연 실황. TD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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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용숙 / 음악평론가, 전문번역가
- 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 졸업하고 독문과 강사를 역임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및 음악학 수학, 서울대 공연예술학 박사과정 수료했다. 연합뉴스 오페라 전문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오페라, 행복한 중독], [사랑과 죽음의 아리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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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농의 아리아 - 홀로 내버려져서 Sola, perduta, abandonata
푸찌니(푸치니, Giacomo Puccini)가 작곡한 세 번째 오페라이며 오페라 작곡가로서 그의 이름을 영원하게 만든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곧 뒤이어 작곡한 3대 걸작에 비하면 작곡기술, 구성능력, 완성도 등이 훨씬 떨어지지만 특히 음악 속에 넘치는 정열과 멜로디 자체의 아름다움이라는 면에서는 그 이상이라고 해도 된다. 이 오페라는 역시 같은 원작에 작곡한 마쓰네(마스네, Jules Emile Fr?d?ric Massenet, 1842~1912)의 [마농]과 비교하여 여러 비평가로부터 원작에 충실하지 않다거나 음악이 지나치게 드라마틱하다는 의견을 듣는다. 그러나 원작은 원작일 뿐 작곡가가 자기 음악을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부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던 푸찌니에게는 그러한 비난은 전혀 아무런 효력이 없었다. 만약 그렇게 함으로써 푸찌니가 보다 우수한 음악을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쪽에서는 그편이 훨씬 고맙다고 할 것이다. 오페라 대본은 쁘레보(Abb? Pr?vost)의 소설을 올리비아(Domenico Oliva)와 일리카(Luigi Illica)가 만들었다. 전4막이다. 불행을 몰고 다니는 여인, 마농의 비극 이야기 타고난 미모와 바람기로 지금까지 숱한 남자를 불행하게 한 마농은 더 이상 희생자를 만들 수는 없다고 결심하고 사촌 오빠를 따라 수녀원을 향해 여행을 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여관들이 많은 거리에서 학생 데 그뤼에게 열렬한 사랑의 호소를 듣고 그가 유혹하는 대로 사촌 오빠 몰래 빠리로 도망가 다시 사랑으로 가득 찬 생활을 즐기게 된다. 그러던 중, 사치스런 생활이 몸에 익은 마농은 분명 사랑은 충만되어 있다 해도 그저 그것뿐인 생활로는 참을 수 없고 또 사촌 오빠까지 돈에 매수되어 돈 많은 부자 노인인 제론트의 여자가 되었다. 마농을 쫓아 데 그뤼는 온 빠리를 찾아다닌 끝에 다시 그녀 앞에 모습을 나타나, 자기와 같이 가서 이전처럼 사랑으로 가득 찬 생활을 보내자고 애원한다. 마침 사치는 하고 있지만 사랑이 조금도 없는 생활에 진력이 나 있던 마농은 다시 도망갈 준비를 한다. 그러나 그냥 도망가면 되었을 것을 욕심을 내서 노인의 보석류를 죄다 싹 쓸어가려다 그만 들키고 만다. 바로 두 사람이 떠나려는 순간 제론트가 경찰을 대동하고 나타난 것이다. 마농은 미국이라는, 살아서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땅으로 유배형(流配刑)을 받는다. 출발하는 날, 배를 탈 죄수들의 이름을 차례대로 부르던 중 마농의 이름이 나오자 절망에 빠진 데 그뤼는 그녀를 구하려고 관리들에게 덤벼들지만 결국 아무 소용이 없음을 깨달은 그는 지휘관에게 청소부건 뭐건 상관없으니까 제발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울면서 부탁하니까, 그 깊은 애정에 감동된 지휘관은 승낙한다. 황량(荒凉)한 낯선 땅에 정처 없이 헤매는 마농과 데 그뤼를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다. 굶주림과 목마름에 시달리며 데 그뤼의 깊은 사랑으로 감싸인 채 죽음과 필사적으로 싸우는 마농이었으나 이미 다가온 운명은 피할 수 없었다. 마농은 사랑하는 사람의 팔에 안겨 잠든 듯이 숨을 거둔다. |

[마농 레스코] 초연 기념우표, 마농 레스코가 죽는 비극의 장면을 담고 있다. Vespasiano Bignami (1941-1929)의 그림
Puccini, [Manon Lescaut] 'Sola, perduta, abbandonata'
Sola, perduta, abbandonata in landa desolata! Orror! Intorno a me s'oscura il ciel, ahim?, son sola! E nel profondo deserto io cando. Strazio crudel! Ah! Sola abbandonata; io la deserta donna! Ah! Non voglio morir, No! Non voglio morir! Tutto ? dunque finito. Terra di pace mi sembrava questa! Ah! Mia belt? funesta, ire novelle accende.... strappar da lui mi si volea; or tutto il mio passato orribile risorge, e vivo innanzi al guardo mio si posa. Ah! Di sangue s'? macchiato. Ah! Tutto ? dunque finito! Asil di pace ora la tomba invoco. Non voglio morir, non voglio morir! No! No, non voglio morir, amore, aita! | 푸찌니, [마농 레스꼬] ‘홀로, 외로이 버려져’
홀로, 외로이 버려져 황야 속에! 두렵다! 내 둘레는 하늘이 캄캄해지고, 아, 나는 혼자다. 이 황무지 안에서 나는 죽는다. 고통스러운 괴로움이여! 아! 홀로 버려져서, 얼마나 불행한 여인인가! 아! 죽고 싶지 않다, 나는 죽고 싶지 않은데, 그럼 모든 것이 끝이야. 이곳은 평화가 있는 땅으로 보였는데! 아! 내가 예쁜 것 때문에 번거로운 일이 차례로 일어나 나를 그에게서 갈라서게 하려 했다. 내 과거의 모든 것이 지금, 몸서리치도록 되살아나, 생생하게 내 바로 눈 앞에 있다. 아! 뜨거운 피 때문에 소문이 나빠졌다. 아! 모든 것이 끝이다! 무덤만이 평화를 주는 장소가 되어 주리라. 죽고 싶지 않다, 죽고 싶지 않아! 싫어! 싫어, 죽고 싶지 않아, 사랑하는 이여, 도와 주세요! |
유배지에 닿은 후 그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느냐 하는 것은 드라마에는 나오지 않고 이 아리아 속에 대강 이야기 되고 있다. 피로와 굶주림으로 꼼짝 못하는 마농을 그대로 두고 데 그뤼가 물을 찾아 떠난 뒤 그녀는 자기의 비참한 꼴을 눈여겨 본다. 지난날 문득 깨달았던 후회는 두려운 절망감이 되지만, 이 아리아가 끝난 후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돌아온 데 그뤼를 나무라지 않고 끝까지 살아 달라고 부탁하고 마농은 오보에와 훌루트(플루트, flute)의 반주 속에 숨을 거둔다. 이 미련(未練)뿐인 죽음에는 조금도 고귀함이나 위대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깊은 감동을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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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농 레스코 공연]의 에피소드 : 그리고 무대에는 지휘자와 주역 둘만 남았다 웰슈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1978년도 브라이톤 축제에서 있었던 일이다. [마농 레스꼬]공연이 순조롭게 공연되어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지휘자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합창단은 물론이고 오케스트라 단원이 모두 없어지고 무대에는 주역인 마농과 데 그뤼만 달랑 남아 있었다. 덕분에 지휘자는 텅 빈 오케스트라 박스를 향해 감사의 인사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입장에 놓이고 말았다. 아마 다른 곳의 정기 연주회(定期演奏會)에서 하루도 쉬지 않고 연속 과로한 끝에 이번 브라이톤의 연주로 단원 전원이 지쳐 뻗은 모양이었다. 아니면 연일 출연으로 피로한 단원들이 오페라가 끝나가니 자기 몫이 끝난 단원은 가도 좋다고 누군가가 낸 헛소문에 속았던가. 추천 음반 및 DVD [CD] 세라휜(세라핀, Serafin) 지휘, 스칼라 극장 관현악단/합창단(1957) 칼라스(S) EMI 모노랄 녹음이지만 잊을 수 없는 연주이다. 칼라스의 마농은 날카롭고 선명하며 상대역인 디 스테화노(디 스테파노, di Stefano)도 더할 나위 없는 명역이다. 세라휜의 이 드라마의 본질을 확고히 파악한 기반 위에서 만들어 내는 드라마틱한 음악의 향연은 듣는 이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CD] 시노폴리 지휘, 휠하모니아 관현악단/합창단(1983) 후레니(프레니, Mirella Freni, S) DG 이 오페라는 전반(前半) 1,2막이 화려하고 후반(後半) 3,4막은 암전(暗轉)된다. 이 갑작스러운 변화가 장점과 단점을 드러낸다. 즉 마농의 실재감(實在感)이 온전하게 노래에 표현되어 있지 않으면 후반이 진지한 비극으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후레니는 그 점에서 여자의 본성을 완벽하게 노래하고 있다. [DVD] 시노폴리 지휘, 코벤트 가든 왕립 가극장 관현악단/합창단(1983) 테 카나와(S) 후리드리히 연출 테 카나와(Kiri Te Kanawa), 도밍고 절정기(絶頂期)의 로이열(로열) 오페라단 공연 실황을 녹화한 것이다. 이 오페라를 어떤 이는 “청춘의 아픈 상처”라고 했지만 그 상처를 연출가 후리드리히(프리드리히, G?tz Friedrich)는 시노폴리(Giuseppe Sinopoli)의 치밀한 음악과 함께 음영(陰影) 깊게 그려나간다. 화려한 무대 모습의 테 카나와가 인상 깊은 연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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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안동림 / 전 교수, [이 한 장의 명반 오페라]의 저자
- 전 청주대 영문학과 교수이며, 다수의 저서를 출간한 작가이자 대표적인 클래식 음악 평론가이다. 저서로는 [이 한 장의 명반 클래식], [안동림의 불멸의 지휘자], [장자], [벽암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