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와 평강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고후 6:10)

여풍2 2024. 3. 9. 16:43

 

고린도후서 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창 21:11-12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그 일이 매우 근심이(憂愁) 되었더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憂愁) 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아브라함의 신앙은 창 12,22장을 보면 순종과 헌신과 믿음을 빼놓을 수 없다. 거기에 후손의 약속까지 그는 확실히 믿었지만 인간적인 기다림에 지친다. 사라의 권고로 사라의 여종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낳는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하나님이 허락한 자녀가 아니다. 하나님은 오직 사라의 몸에서 나는 약속의 자녀 이삭을 말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지 못한 아브라함의 성급함은 창세기를 거쳐 오늘날에도 이삭의 후손과 이스마엘의 후손의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삶을 살아간다면 큰 근심이나 걱정거리가 없는데 인간의 기준으로 판단한 어떤 결정들은 그것이 씨앗이 되어 끊임없이 올무에 빠뜨리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브라함의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오늘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약속은 근심이나 어려움이 없지만 사람의 생각에서 벌어진 일들은 근심을 낳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본절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근심하지 말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시고자 하시는 일의 우선을 먼저 떠오르게 하심을 볼 수 있다.

인내하여야 한다. 보통 기다림이란 쉽지가 않다. 하물며 힘듬속의 인내는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같이 네 민족이 많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지만 기다리고 인내하는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들의 시간대에 일을 저지른 것이다. 그가 본토 아비 집을 떠난 것이 75세이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들어가 그 땅에 거한 지 10년 후인 86세에 이스마엘을 낳는다. 그리고 이삭은 100세에 얻는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자녀가 나기까지는 25년이란 세월이 흘러야만 했다. 기다리는 아브라함 편에서는 늙어가는 자신과 사라를 바라보며 조급한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모세가 쓰임 받는 시간은 80세였다. 지금은 백세시대라고 하지만 기다리는 자들에게는 하루가 천년 같은 조급함과 걱정이 우선시될 수밖에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차분하게 당신의 시간 때를 기다리시는 분이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