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상스 / 바이올린 협주곡 제3번 b단조, 작품 61 '제3악장. - 발터 벨러, 김윤희
스케일이 매우 큰 이 협주곡은 1880년에 작곡되어
당시 유명했던 바이올리니스트 사라사테에게 헌정되었습니다.
그는 3개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했는데 이 곡이 가장 유명합니다.
아름다운 선율과 치밀한 구성, 풍부하고 시적인 내용을 가진 때문입니다.
이 곡은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공통된 점이 많다 하여
‘멘델스존’이라 부르는 이도 있습니다.
제1악장 Allegro quasi non troppo
b단조 2/2박자. 소나타 형식.
영웅적이면서도 비장한 성격을 가진 씩씩한 테마가 나타나고
그 뒤에 오케스트라가 이에 응답하는데 곡은
극히 평온하고 서정적인 분위기에서 E장조의 극히 아름다운 제2테마가로 바뀝니다.
마지막은 화려한 코다를 지나 힘차게 끝납니다.
제2악장 Andantino quasi allegretto
Bb장조 6/8박자 소나타 형식.
단순하면서도 조용하며 마치 베니스의 뱃노래 같은 서정적인 맛이 넘쳐흐릅니다.
제3악장 [서주] Molto moderato e maestosoz
4/4박자. B단조. [주부] Allegro non troppo b단조 2/2박자 론도 형식.
처음에 관현악 반주로 나온 후에 독주 바이올린이 웅대하면서도 서정적으로 연주합니다.
다음에 제1테마가 힘차게 연주되고 아름다운 선율로 된 부테마가 전개되며
합창곡 풍의 테마가 여기에 융합합니다.
나중의 코다는 Piu allegro B장조 2/2박자인데
부주제에 의해 화려하게 끝납니다.
[생상스의 생애]
생상스(1835-1921)는 프랑스의 음악 진흥에 힘쓴 위대한 작곡가였습니다.
그는 작곡가로서는 물론 피아니스트, 지휘자, 평론가, 시인, 화가,
나아가서는 문학 방면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사람으로 국내외에서 이름을 떨쳤습니다.
12세 때 파리 음악원의 오르간과에 입학하였으며 16세 때에는 제1교향곡을 발표하였습니다.
17세 때 성마리 교회 오르간 연주자가 되었으며
21세 때의 제2교향곡은 성 세실리아 협회 콩쿠르에서 1등으로 입상했습니다. 2
6세 때부터 4년간 니데르메이르 종교음악학교의 피아노 교수로 있으면서
포레, 메사제 같은 유능한 제자를 육성했습니다.
1879년에 유명한 오페라 <삼손과 델릴라>를 발표한 후
10여 편의 오페라와 8편의 극음악을 작곡했습니다.
한편 그는 국민음악협회를 조직하여 프랑스의 음악진흥에 전력하였으며
젊은 세대의 작곡가들을 많이 세상에 소개하였습니다.
그는 이 때 기악곡을 많이 작곡했는데 지금 널리 알려진 곡은
<파에톤>, <죽음의 무도>, <헤르쿨레스의 청년시절>,
피아노 협주곡 제4, 5번, 바이올린 협주곡 제2, 3번
그 밖에 실내악곡 들을 많이 썼습니다.
바야흐로 그의 명성은 자자했으며 그는 자작의 피아노 협주곡을 가지고
독일, 영국, 러시아, 오스트리아 등지를 순방하였습니다.
1906년에는 아메리카를, 1916년에는 프랑스를 대표하여
파나마 태평양 박람회에 참석했으며 남미 등지도 방문했습니다.
86세 때 알제리를 방문했다가 그 곳에서 애석하게도 객사하였습니다.
프랑스는 그의 공로를 평가하여 파리에서 국장으로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는 독일의 고전과 낭만파를 잘 이해하였으며 풍부한 음악성으로
밝고 아름다운 구성미를 이루는데 크게 성공하였습니다.
생상스의 음악 기법에 있어서는 베를리오즈, 슈만, 멘델스존, 바그너 등의 영향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본다면 오히려 고전주의적인 우아한 균형과 세련미가 있습니다.
로망 롤랑은 “생상스의 예술은 라틴적이어서 명랑하다.
정밀하고 간소하게 표현되어 극히 우아하다.
부드러운 화성, 흐르는 듯한 조바꿈, 넘쳐흐르는 청춘의 희열은 어디까지나
글룩, 모짜르트 등의 고전의 기초 위에 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긍정적인 면과 함께 그의 보수적인 한계도 인정해야 합니다.
이제 프랑스의 새로운 국민음악의 창조는 선구자로서의 프랑크, 생상스를 거쳐
인상주의적 세대의 등장을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작품 번호 169를 헤아리는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