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과 취미

오월 / 피천득

여풍2 2017. 4. 17. 14:06
여인-Vladimir Volegov

5월이 오면 / 김용호
무언가 속을 흐르는 게 있다. 
가느다란 여울이 되어 
흐르는 것. 
이윽고 그것은 흐름을 멈추고 모인다. 
이내 호수가 된다. 
아담하고 정답고 부드러운 호수가 된다. 
푸르름의 그늘이 진다. 
잔 무늬가 물살에 아롱거린다. 
드디어 너, 아리따운 
모습이 그 속에 비친다. 
오월이 오면 
호수가 되는 가슴. 
그 속에 언제나 너는 
한 송이 꽃이 되어 방긋 피어난다.



오월 / 피천득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 한 살 나이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는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 득료애정통고 - 얻었도다, 애정의 고통을 
失了愛情痛苦 실료애정통고 - 버렸도다, 애정의 고통을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 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5월 / 오세영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부신 초록으로 두 눈 머는데
진한 향기로 숨막히는데
마약처럼 황홀하게 타오르는
육신을 붙들고
나는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아아, 살아있는 것도 죄스러운
푸르디푸른 이 봄날,
그리움에 지친 장미는
끝내 가시를 품었습니다.
먼 하늘가에 서서 당신은
자꾸만 손짓을 하고......,



오월의 아름다운 산빛이
곱게 드리운 호수가 되어 
설레는 마음으로 왔습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오월을...!
호수에 어린 꽃 그림자가
고요히 물비늘처럼 아른 거리고
파아란 하늘이
가만히 쓰다듬는 오월의 호수
하아얀 구름 한 점
가던 길 멈추고 가만히 꿈을 꿉니다
오월의 여인, 모란
그 짙은 빛을 
속으로만 감추고
겹으로 피어나는 숨은 사랑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오월 속에 살아있는 
이 푸른 마음,
부신 초록으로 두 눈 머는데
진한 향기로 숨막히는데
푸르디푸른 이 봄날,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이렇게 가고 있는데...
정말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피천득
단아한 맑은 영혼의...
수필은 청자연적이다
수필은 난(蘭)이요, 학(鶴)이요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다
수필은 마음의 산책이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정말
나이를 잊었습니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는데....

[옮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