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라보 다리 >
- 기욤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흐른다
기쁨은 언제나 슬픔 뒤에 왔었지
밤이 와도 종이 울려도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손에 손 잡고 얼굴을 바라보자
우리들의 팔로 엮은 다리 밑으로
끝없는 시선에 지친 물결이야 흐르건 말건
밤이 와도 종이 울려도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사랑은 가 버린다
흐르는 이 물처럼 사랑은 가 버린다
이처럼 삶은 느린 것이며
이처럼 희망은 난폭한 것인가
밤이 와도 종이 울려도
세윌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나날이 흘러가고 달도 흐르고
지나간 세월도 흘러만 간다
우리들 사랑은 돌아오지 않는데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른다
밤이와도 종이 울려도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미라보 다리" 명시가 탄생하게된 배경
이탈리아 출신으로
루브르 박물관에서 도난당했던 페르시아 조각품을 소장했다는 점 때문에
기욤 아폴 리네르는 1911년 "모나리자 도난사건"의 용의자로 몰리게 됩니다.
두 연인은 루브르 박물관 모나리자 도난사건에 기욤 아폴리네르가 관계되면서
파국을 맞게 되었답니다.~~
실연의 아픔을 기욤 아폴리네는 1913년 발행된 "파리의 밤"이라는 잡지의 창간호에
"미라보 다리"라는 시를 통해 드러냈지요.
그것이 바로 우리가 아는 명시 "미라보 다리"의 탄생 배경이랍니다.
기욤 아폴리네르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얻은 상처와 스페인 독감으로
종전 3일을 앞두고 3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기욤 아폴 리네르와 허어진 뒤 독일인 남작 출신 화가지망생이던
오토 크리스티앙 하인리히 폰 뷔체와 결혼한 "마리 로랑생"역시 결혼생활에 실패하고
이혼하게 됩니다.
이렇듯 운명적인 사랑과 그 사랑의 주인공들은 가고 없지만
"미라보 다리"는 여전히 시로 남아 우리의 심금을 울려줍니다.
"미라보 다리"는 1952년 세계적인 샹송 가수이자 음율시인으로 불리는
"레오 페레"가 멜로디를 붙여 1952년 샹송으로 발표했습니다.
"이베뜨 지로" 역시 음악을 남겨 지금도 전 세계인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습니다.
"마리 로랑생"은 미술사는 물론 세계 예술사를 통틀어서
가장 극적인 삶을 산 인물중의 하나였습니다.
사생아로 태어나 스무살이 넘도록 아버지의 이름도 모른 채 성장하고
자신과 같은 처지였던 사생아 출신의 이탈리아인 천재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와 사랑에 빠지게 되지요.~~
하지만 두 연인은 1911년 루브르 박물관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도난당하는 사건에 기욤 아폴리네르가 관계되면서 파국을 맞게 되었답니다.~~
이처럼 파란만장했던 "마리 로랑생"의 생애는
비극뿐만 아니라 화려한 영광도 공존하며
마치 그 인생이 롤러코스를 타듯 변화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영욕이 교차하는 삶 속에서
"마리 로랑생 "의 작품 세계는 더욱 성숙해졌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