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과 취미

Bach, Goldberg - Variations / Glenn Gould

여풍2 2017. 12. 22. 21:05


                                                                  



골드베르크 변주곡 

        


바흐의 음악


클래식 음악은 사람들이 편히 즐기는 장르가 아니다. 

클래식 음악중에서도 바흐의 작품들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쉽게 친숙해지지 못한다.

이는 클래식을 잘 듣지 않는 일반 사람들에게만 한정된 사실이 아니었다,.

현재는 바흐가 서양음악사에서  불멸의 위대한 천재라는 사실이 적어도 음악가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만

19세기에 멘델스존이 마태수난곡을 연주하여 그 위대한 가치가 다시 인식되기 전까지는

바흐는 재능있는 건반연주자 혹은 건반악기 작곡가로서만 인식될 뿐이었다.
 바흐의 음악이 인기가 없었던 이유는 역설적으로 바흐의 음악의 구조가 지극히 정교하고 완벽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미국의 물리학자인 더글러스 호프스태더는 바흐의 음악과 에셔의 미술작품, 수학자 괴델의 정리를 관통하는

역설의 논리에 대하여 책을 쓰기도 했다).

감성의 자유로운 표현을 추구하는 낭만주의 작곡가들에게는 이러한 철저한 구조는 어떠한 매력을 주지 못했다.
 낭만주의 사조가 퇴조하고 사람들은 바흐의 위대성을 다시금 재발견하기 시작했다.

20세기는 바흐의 재발견의 역사라고 볼수도 있다

지금 소개하려는 '골드베르크 변주곡(Goldberg Variationen BWV.988)' 역시 20세기에 와서

캐나다 출신의 천재적인 피아니스트인 글렌 굴드 한명에 의해 전혀 새롭게 재발견된 경우에 속한다.

물론 글렌굴드가 연주하기 이전에도 이 곡은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글렌굴드는 이 곡을 완전히 자신만의 스타일로 충격적으로 연주했고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후 글렌굴드는 바흐 스페셜리스트가 되었고 이후의 많은 연주자들은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하게 되었다.


 

 

글렌 굴드가 연주한 '골드베르크 변주곡' 에 대하여 알아보자. 골드베르그 변주곡이 작곡된 1742년은

바이마르, 쾨텐, 그리고 라이프치히를 거친 바흐의 음악생애가 만년에 접어들던 시기였다.

바흐의 오랜 후원자였던 헤르만 카를 카이저링크 백작(드레스덴의 영주)은 불면증에 시달렸고

잠이 잘 오는 음악을 작곡하여 백작의 전속 하프시코드 연주자였던 요한 고트리브 골드베르그에게

연주하게 할 것을 주문했다.

이 곡은 아리아Aria로 시작되어  아리아의 악상을 조금씩 바꾼 30개의 변주곡,

그리고 다시 처음과 같은 아리아로 끝나는 구조를 가진다.  

각각의 곡들은 반복 구절이 있으며 그 변주의 풍성함은 놀랄만할 수준이다(참고로 바흐가 살았던 때와 모차르트. 베토벤이

살았던 시절에는 마치 현대의 재즈 연주가들처럼 작곡가들이 즉석에서 변주곡을 연주하고 경쟁하는 풍조가 있었다),

이 곡은 '수면용'으로 작곡되었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느릿느릿하고 서정적으로 연주했다.

 그런데 글렌굴드는 이 곡을 아주 파격적으로 연주햇다.

글렌굴드는 1955년 이 곡을 녹음하면서 아리아와 각 변주곡의 반복부분을 모두 빼고

연주 속도를 극단적으로  빠르거나 느리게 했다.

즉 굴드는 조용하게 하나의 변주곡을 연주하다가 갑자기 다음 변주곡에서는 엄청나게 빠르게 연주하는 등의 형식으로

연주에 있어서 긴장감을 조성하였다(실제로 굴드의 이러한 연주 때문에 감상자는 지겨움을 느끼지 않고 듣게 된다)

이러한 굴드의 연주를 보고 어떤 평론가는 바흐를 록큰롤처럼 연주한다고까지 말할 정도다.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연주의 또다른 특징은

굴드는 절대로 페달을 쓰지 않고 타건을 끊어치는 듯이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흐가 하프시코드를 위하여 이 곡을 작곡했다는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는데 

하프시코드는 강약의 표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굴드는 아울러 타건을 할때 딱딱 끊어지는 느낌으로 연주했는데

이러한 연주가 바흐의 푸가의 구조를 더욱 잘 드러내게 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영화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삽입된 영화중 가장 유명한 영화 두가지를 든다면 '잉글리시 페이션트' 와 '양들의 침묵'일 것이다.

잉글리시 페이션트에는 아리아의 피아노 연주가 등장하며 양들의 침묵에서는 한니발 렉터가 간수를 살해하고 도주할 때

간수의 시체가 걸려잇는 장면에서 글렌 굴드의 1982년판 연주가 나온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것은 영화 '양들의 침묵'이다. 원작 소설에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끔찍한 장면의 배경음악으로 굴드의 연주가 나오는데 이것이 기괴할 정도로 잘 어울린다.

이것은 바흐의 음악이 가지는 독특한 성격에 기인한다.

바흐의 음악은 서정적인 선율을 가지더라도 쉽게 감정에 호소하지 않는다.

아무리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이라도 철저히 논리적인 구조의 일부로 연주된다.

바흐의 음악은 감성적인(pathological) 요소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칸트의 형식적 윤리학과 유사하다.

헤겔주의자들은 칸트의 윤리학, 즉 모든 감정적, 정념적 요소를 배제한 순수한 양심의 추구는

결국 렉터와 같은 살인마의 내면에 불과한다고 칸트를 공격한다.
 글렌 굴드의 연주는 이런면에서 철저히 바흐적이고 또한  칸트적이다.

그는 건조한 바흐의 곡에 서정성을 부과하기 위하여 페달을 사용하여 음을 채색하거나 완급을 주어서 감정을 싣지 않는다.

그는 철저히 형식적으로 연주하여 역설적으로 그러한 건조한 연주가 그 무엇보다도 서정적이게 만든다.

하지만 세상을 뜬 글렌 굴드와 바흐가 자신의 곡이 살인장면에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

그들에게는 완벽한 곡을 작곡하고 연주한 죄밖에는 없긴 하지만. 

[옮긴글]